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 취약계층은 아파도 입원을 하거나 쉴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 취약계층의 병가와 관련해 부산광역시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고 어떤 대안 마련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치료 대신 아픔을 참는 것을 선택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금전적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6월부터 서울특별시는 노동 취약계층을 위해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광역시는 관련 지원제도가 부족한 상황이다.

부산, 노동 취약계층 비중 높아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e-지방 지표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부산시민이 체감하는 △노동시간 △휴가 △안전위생 등의 고용조건을 의미하는 노동 조건과 소득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는 노동 조건 만족도 22.7%, 소득 만족도 9.8%로 모두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낮았다. 

부산연구원은 경제의 저성장으로 노동자들이 고용의 불안정성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부산의 서비스업 비중이 2016년 기준 76.9%로 높아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의 한계가 있어 근로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또한  부산 연구원에서 발행한 ‘BDI 정책 포커스 제356호’에 따르면 부산시는 서비스업 및 소규모 사업장의 비중이 높아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부산에는 노동 취약계층 비중이 높다. 윤영삼 연구원은 ‘부산지역 노동존중 방안연구’보고서에서 취약노동자를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열악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노동자 △노동조건·임금의 차별, 차등, 배제가 될 대상일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 △노동기본권이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거나 시장의 작동만으로는 질적 개선을 기대하기 힘든 노동자 등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고 나타냈다. 

소득 만족도의 경우, 2017년 기준 근로기준법을 일부만 적용받는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가 부산시에 29.8% 비율을 차지해 임금수준 낮고, 권리구제에 소극적이거나 제약이 있어 소득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원인을 설명했다. 

노동 취약계층의 노동자는 아프더라도 일을 쉴 수 없다. 노동 취약계층에 속한 노동자의 치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일을 쉬더라도 생계가 보장돼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 1조‘근로자의 기본적 생활 보장’을 위해서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생계형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는 아파도 소득이 줄 어들 것을 우려해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지속해서 일하게 되면 생산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신원철(사회학) 교수는 “질병에 걸렸을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질병이 오히려 악화돼 노동자의 생산성이 장기간 저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제대로 치료받지 못 한 채 일하는 것은 질병 악화로 이어져 생산자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원인이 된다. 

찾기 힘든 유급병가제

그럼에도 부산시에서는 유급병가 성격의 정책이 마련돼있지 않다. 부산시 복지 정책중 긴급복지지원제도가 있지만, 이는 노동 취약계층 여부에 상관없이 저소득주민에 대해 위기상황 주 급여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는 중한 질병이나 부상일 경우만 지원 대상에 속하기 때문에 유급병가의 성격과는 다르다. 서울형 유급병가와 같이 비교적 가벼운 질병으로 짧은 기간 동안 입원한 날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산시 복지정책과 신승진 주무관은 “노동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사업의 경우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저소득층에게 긴급복지제도나 병원비를 지원하는 제도만 마련돼있다”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도 병가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다. 신원철(사회학) 교수는 “현행법에는 병에 걸렸을 때 유급으로 병가를 낼 수 있는 제도가 규정돼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2012년 가족 돌봄 휴직제도에 관한 규정은 도입됐으나, 정작 노동자 본인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구체적 병가제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공무원만이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 18조에 따라 연간 최대 60일 유급병가를 쓸 수 있다고 규정돼있는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상 구체적인 병가제도 규정이 없기 때문에 병가제도에 대한 부분은 회사의 재량에 달린 것이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복지마저도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근로자·사용자 관계에 있지 않는 노동자들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사용자 관계에 속한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의 의무를 나타내는 규정이다.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유급휴일·유급휴가 같은 경우, 근로자가 일정 기준을 충족했을 때 유급으로 휴일·휴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를 보장해줄 의무는 사용자, 즉 고용주에게 있다. 보장할 고용주가 없는 자영업자와 특수 고용노동자는 근로기준법에서 예외가 된다.

쉬는 동안 생계비 보장 필요해

아파서 일을 못 하더라도 노동자의 수입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병가와 관련된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 우선 <근로기준법>에 구체적 병가제도를 도입해 노동자의 쉴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신원철 교수는 “공무원에게 보장되는 유급병가제도를 일반 노동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유급병가를 보장해줄 주체가 없는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서울특별시(이하 서울시)에서는 △임시직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특수형태 근로자 △영세자영업자 등 고용주에 의해 유급으로 병가나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 취약계층을 위해 서울형 유급병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입원으로 일을 하지 못할 때, 유급병가를 신청하면 최대 11일까지 매일 서울시 생활임금 81,180원을 지원한다. 고려대학교 정혜주(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아픈 노동자가 몸을 회복하도록 의료비 지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서 버는 생활비가 지원돼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유급병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한 서울시 유급병가 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혜주 교수는 “노동자의 질병에 따른 회복 시간을 고려해 지원하는 일수를 늘리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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