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장애 인권 활동가 이규식 씨
-저서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북토크 올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탈시설 중요성 강조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규식(54세) 씨는 스스로를 ‘투모사(투쟁밖에 모르는 사람)’라 칭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장애인들도 동등하게 보장받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투쟁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천사가 아니라 전사로 살아왔다”는 그는 투모사의 정신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탈시설을 외친다.

 표지 [후마니타스 제공]
표지 [후마니타스 제공]
지난 10월 10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발언 중인 이규식 씨(왼쪽)와 활동보조사 김형진 씨. [최유민 기자]
지난 10월 10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발언 중인 이규식 씨(왼쪽)와 셜록 대표 박상규 씨. [최유민 기자]

지난 10월 10일 이규식 장애 인권 활동가가 최근에 펴낸 활동 저서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를 들고 부산 시민들을 만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주최한 이번 전국 순회 북토크 부산 편은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공개홀에서 열렸다. “장애인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편견을 부수고 중증 뇌병변 장애인도 무대에서 강연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북토크는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김형진 활동 보조사의 자막 서비스를 통해 언어장애를 뛰어넘는 행사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 활동가는 20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는 지하철을 이용하다 리프트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꼈다. 그는 1999년 6월에 서울 혜화역 계단 리프트를 사용하던 중 리프트의 안전판이 고장 나 전동 스쿠터와 함께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그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2001년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 등 장애인의 이동과 안전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반복되는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에 이 활동가는 박경석 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와 함께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만들어 이동권 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이동권 연대의 투쟁국장을 역임하며 △43번의 버스 탑승 투쟁 △39일간의 단식농성 △서울역· 시청역·광화문역 선로점거 △서울시청과 서울역의 천막농성 등을 벌이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확실하게 싸우겠다는 내 자존심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더해지니 더 끝까지 갈 수 있다”며 “앞으로도 자존심을 지키며 계속해서 투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의 탈시설을 위해서도 투쟁한다. 탈시설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더 이상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지역사회로 나가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활동가는 장애인 수용 시설을 '관리’라는 이름으로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장애인을 ‘통제’하기 좋게 만들어 둔 '온실'로 비유했다. 결국 ‘온실 속의 꽃’으로 평생을 보낼 장애인들은 자신만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길거리의 꽃’들과 달리 아무런 생각을 갖지 않은 채 안일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시설에서 자란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오게 됐을 때 과연 살아갈 힘이 있을까요?”라며 역설했다. 실제로 “인생의 전반부를 갇혀 살아왔다”고 밝힌 그는 시설에서 생활할 때 휠체어를 두고 밤에 몰래 나간 뇌성마비 장애인이 도랑에 빠져 숨지는 사고를 접한 후 바깥 사회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시설 안에서 보이는 틀에 갇혀 “아무리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이렇게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게 정답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장애인을 고립시키는 탈시설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는 일상생활을 즐기는 것은 물론, 수급비 지원 사각지대 문제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등 구조적 문제로 장애인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는 미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생을 마감할 즈음엔 세상이 많이 달라져 있으리라 믿는다”며 “저상버스가 지역마다 골목골목까지 누비고 일반 택시도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 장애인을 고려하는 공공 일자리가 생겨나는 세상을 꿈꾼다”고 전했다.

이 활동가는 올해 저서를 출판하며 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동시에 비장애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다음 저서로 ‘투모사’답게 긴 투쟁의 노하우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청중의 관심을 촉구하며 “버스를 세우는 법, 기차를 멈추게 하는 법, 경찰이 나타나면 어떻게 도망쳐야 하는가 등을 주제로 투쟁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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