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막마을

부산의 대표적인 피란민 주거지로는 △비석마을 △소막마을 △감천문화마을(일명 태극도마을) △산복도로 주거지 등이 있다. 그 중 소막마을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를 검역하기 위한 검역소와 축사가 건설된 곳으로, 피란 시절에는 외양간을 개조해 적기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현재에도 골목길 사이에는 소막(축사)의 외형으로 보이는 집들이 남아 있다. 일본인들은 이 곳의 땅이 붉어 ‘적기’ 즉, ‘아카사키’라고 불렀으며, 소막 판잣집 지역에는 피란민 7만여 명의 수용소가 있었다.

 

2. 임시수도정부청사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당시 병원으로 설계되었으나, 공사 중 용도가 경남도청으로 변경되어 1925년에 준공됐다. 피란수도 당시 경남도청의 본관은 정부청사로, 상무관은 국회의사당으로, 뒤편의 경찰국은 군·경 합동 작전사령부로 사용됐다. 이후 경남도청으로 다시 사용하다 1983년 7월부터 2001년 9월까지 부산지방법원 및 검찰청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동아대학교에서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3. 영도다리

영도다리는 6·25전쟁 당시 많은 피란민이 모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던 장소다. 전쟁과 피란 중에 생이별을 하게 될 때 영도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소는 잃어버린 혈육과 상봉하는 약속장소로, 전쟁의 아픔과 만남의 기쁨, 오랜 시간 기다려도 끝내 상봉하지 못한 슬픔과 애환 등을 담고 있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피란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 ‘현인노래비’ 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4. 임시수도기념관

이 건물은 1925년 준공 후 경상남도지사 관사로 사용됐다. 이는 일본식과 서양식 가옥형태가 혼합된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이중 도지사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대현관과 응접실 등은 양식으로, 주거공간은 일본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6·25전쟁 시기에는 임시수도의 대통령관저로 사용되면서 당시 △정치 △경제 △국방 등 국가정책의 수립과 전쟁 수행의 산실 역할을 하여 한국 근·현대헌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건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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