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과의 동행

“늙었다고 집에서 가만히 있다간 굶어 죽어, 폐지 줍는 게 더럽고, 창피해도 어쩔 수 있나? 죽지 못해 사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3일 동안 기자가 만난 폐지 수거 노인들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나라 전체 노인의 절반이 빈곤에 허덕이는 사회에서 폐지는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기자가 3일간 동행한 전씨 할머니(77) 역시 폐지가 유일한 수입원이다. 할머니가 폐지를 줍게 된 건 아들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부터다. 부도로 인해 아들의 가정은 해체됐고, 그때부터 손자를 도맡아 키웠다. 반찬값을 벌기 위해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는 할머니. “나이 먹기 전에는 부업으로 폐지를 주웠는데, 이제는 폐지 수거가 아니면 생계 수단이 없다”고 전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 6시 20분, 등이 굽은 전씨 할머니가 수레에 폐지를 차곡차곡 쌓는다. 전날 자정까지 모은 폐지가 할머니의 키를 훌쩍 넘는다.“ 빨리 고물상에 갖다 줘야 한다”라며 발길을 재촉한다. 수레를 비워야 또다시 폐지를 수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물상 문이 열리기 30분 전, 벌써 대여섯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레를 앞세워 모여들기 시작한다. 고물상 문이 열리자 고물상 주인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할매, 수레 퍼뜩 올리소” 전씨 할머니 수레가 저울 위에 올라간다. 폐지로 가득 찬 수레의 무게는 97kg. 할머니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저울 잘못된 거 아이가? 다시 한 번 재달라”며 은근슬쩍 수레를 손으로 누른다. 그러자 고물상 주인은“ 제발 그만 좀 하이소. 좀 더 쳐줄 테니까 뒤로 나와요”라며 할머니를 달랜다.

▲ 고물상 한켠에 놓인 냉장고. 폐지 값이 떨어진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저울 뒤로 공고문 하나가 보였다‘. 3월 7일부로 폐지 가격이 하락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현재 폐지 가격은 1kg에 80원, 신문은 100원. 이날 전씨 할머니가 끌고 온 수레의 무게는 50kg. 수레 무게를 빼고 나면 폐지는 50kg도 채 안 된다. 결국 전씨 할머니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고작 천 원짜리 4장뿐 이었다“. 기대한 만큼 돈을 번 것 같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머니는 곧바로“ 말도 하지마라”고 답했다“. 이래 가꼬는 절대 묵고 몬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살만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씨 할머니는 수레를 비우고 재빨리 고물상을 나섰다.“ 지금 빨리 가서 기다려야 한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가 향한 곳은 NC백화점 앞이었다. 할머니는 곧장 매장 직원에게 달려가‘ 폐지 생기면 챙겨달라’고 말했다. 그 시간이 10시 반이었다. 할머니는“ 자리 비운 사이에 누가 주워가면 우짤끼고, 기다려야지”라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할머니가 수레에 폐지를 실은 건 7시간이 지난 오후 5시께였다. 수레에 차근차근 폐지를 쌓아 올렸다.

폐지가 나온다는 소식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수레를 끌고 백화점 앞으로 모였다. 한 할아버지는 폐지를 줍던 전씨 할머니에게 다짜고짜 욕을 했다“. 시발년아. 니가 이걸 왜 줍노. 빨리 안 끄지나” 이에 할머니도 “이게 니끼가”라며 덩달아 언성이 커진다. 할아버지의 위협적인 말투와 행동에 전씨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괜찮으시냐”라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살면서 이렇게 쌍욕을 듣는 건 처음이다. 내가 그깟 몇십 원짜리 박스 주을라고 이리 욕을 먹나”라며“ 그냥 확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자, 또다시 고물상 앞이 붐비기 시작했다. 40여 명의 노인들이 하루 동안 모은 폐지를 수레에 담아 왔다. 차례대로 저울에 폐지를 올린다. 저울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단돈 천 원이라도 더 받기 위한 실랑이가 이어진다“. 오늘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폐지를 많이 못 주웠다”고 하소연하는 전씨 할머니.

집을 나선 지 12시간이 지나서야 빈 수레를 끌고 귀가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또다시 집을 나서야 한다. 대학가는 주로 밤에 폐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젊어서 공부 열심히 안하면 내처럼 늙어서 이런 일 한다”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는 할머니.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고갯길은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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