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약물 중독자 모임, NA
-약물 투여 경험 공유하며
-중독 이겨내려 함께 노력
-"질병이란 인식 확산돼야"

부산 모처에 10명 남짓한 마약 중독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인 건 마약 중독으로 겪은 끔찍한 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지난 2월 26일 <채널PNU> 취재진은 부산에서 진행된 ‘약물 중독 자조 모임(NA, Narcotics Anonymous)’을 찾았다. 익명성을 전제로 약물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벗어나고자 애쓰는 약물 중독자들의 모임이다.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이들은 처음 약물에 손을 댄 순간부터, 교정 시설이나 병원에서 겪은 일과 현재의 삶까지를 가감 없이 공유한다. 이들이 숨기는 것은 딱 하나, 자신의 이름뿐이다. 이러한 모임의 특성을 고려하여 개최지를 기사에 밝히지 않았다.

익명의 중독자들(NA)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중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유승현 기자]
익명의 중독자들(NA)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중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한다. [유승현 기자]

■"지인 권유로 시작했어요"

취재진은 이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약 중독의 과정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순간의 선택 실수로 마약에 깊이 빠졌다고 답했다. 마약에 빠지게 된 경로도 똑같았다. ‘주변인의 권유’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었어요. 그렇게 친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저에게

‘그냥 재미있는 거다. 한 번 해보지 않겠냐’면서 권유했어요. -A 씨

 

A(30대 남성) 씨는 30대에 처음 마약에 손을 댔다.  지인의 권유가 약물 중독의 시작이었다. 지인이 약물을 건넨 이유는 '재미'였고, 순간의 호기심으로 약물 중독에 빠졌다.

경찰 5명이 갑자기 쳐들어왔어요. 그렇게 구속이 됐는데,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이게 뭐지 하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하늘이 회색빛으로 새까매졌어요. -B 씨

 

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B(40대 여성) 씨는 10대에 마약을 처음 접했다. 지인이 권한 술에 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먹는 것이 마약인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냥 기분이 이상하고 붕 뜨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다. 몇 달 후 그 지인은 주사기를 건넸고, 순간의 선택 이후 약물에 대한 중독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얼마 있지 않아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20대에 처음 수감 생활을 시작한 뒤로,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A 씨는 마약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마약을 권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B 씨는 "정말 나를 생각하고, 내 인생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마약을 권하지 않는다"며 "누군가 마약을 권유한다면 용기를 내서 화를 내야 한다"고 얘기했다.

‘주변인의 권유’로 시작된 약물 중독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또 다른 주변인의 지지’다. 이날 NA는 약물 중독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도 함께 참석할 수 있는 공개모임으로 진행됐다. 전 세계 자조 모임 단체인 ‘Narcotics Anonymous World Services’에서 2016년 발간한 NA 참석자 통계에 따르면, 참석자의 31%가 ‘가족의 권유’로 NA에 나왔다. 중독자 중 꽤 많은 이들에게 주변인의 지지는 단약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Narcotics Anonymous World Services'의 NA 가이드가 적혀있는 인쇄물. NA 활동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나, 마음가짐 등이 적혀있다. [유승현 기자]
'Narcotics Anonymous World Services'의 NA 가이드가 적혀있는 인쇄물. NA 활동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나, 마음가짐 등이 적혀있다. [유승현 기자]

■비밀 유지와 신뢰로 형성된 버팀목

NA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건 비밀과 신뢰다. 구성원들은 NA의 시작과 끝에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밖으로 들고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한다. 이 약속은 중독자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한다. 모임에서의 솔직한 토로가 각자의 삶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며 중독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이날 출퇴근 시간에 꽤 먼 거리를 운전해서 왔다는 B 씨는 “NA에 나가면 다들 힘든데도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야기를 나누며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회복하기 위해 독려하다 보면, 나에게 좋은 에너지가 쌓이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신앙생활을 하며 약물 중독을 끊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A 씨도 “NA 말고는 약물에 관련된 경험을 이렇게 말로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약물에 관한 어려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함께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혼자서는 버거운 일에도 힘이 생긴다”고 전했다.

1시간 남짓 진행되는 NA에서 가장 큰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중독 상태가 계속되면, 끝에는 파멸된 삶이 기다린다’는 이야기다. 마치 식사를 하기 전에 외우는 주기도문처럼, 모임에 참여한 이들이 “약물 사용의 결말은 교도소, 정신병원 혹은 죽음을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가거나 살기 위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인 일련의 문구들을 읊으며 NA가 시작된다.

약물 중독을 끊기 위한 방법과 NA의 규칙들에 대한 낭송이 끝나면 참여자들은 그날의 주제를 정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제는 자유롭게 정해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도 자유롭게 구성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준비가 되었다면 언제든 해도 되고,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면 다른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된다. 익명성과 자유 이외의 것들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마약 접근부터 치료까지’ 인식 변화 필요

‘청년 마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터뷰 참여자들은 모두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마약으로 인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청년들이 마약에 따른 결과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들은 “마약에 대한 경험이 생각보다 쉽게 말하기 힘든,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약은 분명한 ‘질병’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미 한 번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단약 이후에도 언제든지 중독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질병으로서 지속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와 동시에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치료나 상담을 통해 마약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절대 마약과 멀어질 수 없어요. 약을 안 한 지 얼마나 지났든 간에, 환경이 갖춰지기만 하면 그 사람이 다시 약을 할 거란 걸 저는 장담할 수 있어요. -B 씨

 

결국 마약을 이겨내는 건 개인이 바뀌어야 해요. 누구도 그걸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가족과 지인의 지지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러면서도, 자신을 너무 탓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A 씨

 

심각한 약물 중독을 경험한 이들은 이제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기도 한다. B 씨는 이제 회복상담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을 돕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이것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 일이 있겠냐는 말을 많이들 해요. 그런데, 아니요. 바닥엔 끝이 없어요. 끝도 없이 추락하는 거예요. 약을 했던 순간부터 제 인생은 부표 없이 떠도는 게 되어 버렸어요. 지금은 제가 20년 인생을 버려가며 배웠던 '마약이 얼마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 명이라도 마약을 그만둘 수 있다면, 그것만큼 저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은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B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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