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138억 년 전, 빅뱅과 함께 공간과 시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을 우주라고 부른다. 오늘날 핵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생겨난 지 대략 0.000000001초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연구한다. 그러려면 오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그 타임머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LHC)다. LHC는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에 걸쳐 있다. 지하 100여 미터 아래에 설치된 원형 고리 모양의 터널은 둘레가 27km나 될 만큼 웅장하다. 그 터널 속에 놓인 가속관에서는 양성자나 원자핵이 거의 광속으로 돌고 있다. 양성자나 원자핵은 두 개의 가속관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두 개의 가속관이 겹치는 네 군데에서 서로 충돌한다. 검출기는 그곳에 설치돼 있다.

네 대의 검출기 중 하나의 이름은 ALICE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 맞다. 수학자이자 소설가였던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과 같다. 우주 초기에 물질을 탐구하는 검출기인 만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름의 뜻은 거대 이온 충돌 실험(ALICE: A Large Ion Collider Experiment)이다. 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마흔여섯 개나 되고, 206개의 대학과 연구소가 이 실험에 속해 있고, 약 2,000명의 학생,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실험에 관여하고 있다. 그야말로 거대한 실험인 셈이다. 부산대 물리학과에서도 두 명의 교수와 10여 명의 학생들, 연구원들이 ALICE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ALICE에서는 광속에 가까운 속력으로 서로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무거운 원자핵이 충돌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여기서 순간이라고 하는 시간은 초 정도다. 그러니까 소수점 밑으로 0이 23개나 되는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이 순간 동안 충돌한 원자핵은 수조 도가 넘는 온도에 도달해 모두 녹아버린다. 그 안에 들어있던 양성자도 중성자도 모두 녹아버려 이 핵자들 안에 영원히 갇혀있던 쿼크와 글루온이 풀려나온다. 물리학자들은 이 상태를 쿼크 수프(quark soup)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 수프는 워낙 온도가 높아서 물리학자들이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온도만 해도 수조 도에 달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그야말로 초 정도만 유지되었다가 식으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입자들로 바뀐다. 이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물리학자들은 서둘러 데이터를 받고 분석한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생겨난 우주 초기의 물질은 유체였다. 그것도 물처럼 평범한 유체가 아니라 점성이 전혀 없는 초유체(superfluid)에 가까웠다. 점성이 전혀 없으므로 유리잔 안에서 돌기 시작한 유체는 영원히 돈다. 한번 돌기 시작한 초유체는 멈추는 일이 없다. 이건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주가 막 생겨났을 때 물질은 초유체 상태로 존재했던 것이었다. 이런 물질을 이해하면, 우주 초기에 물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저 우주에 산재해 있는 중성자별의 내부와 그 진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 납이나 우라늄처럼 매우 무거운 원소는 중성자별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 엄청난 밀도의 중성자별이 서로 충돌할 때 증거를 찾아내기도 했다. 블랙홀과 중성자별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된다.

ALICE 검출기에서 양성자와 납 원자핵이 충돌한 후 생겨난 입자들의 궤적
ALICE 검출기에서 양성자와 납 원자핵이 충돌한 후 생겨난 입자들의 궤적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김현철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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