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역차별 논란 끝에
-소수인종 우대 정책 폐지
-레거시 제도 등 논란 여전
-"과거와 다른 접근법 요해"

1961년부터 60여 년간 이어지던 미국의 소수인종 우대 정책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 위헌으로 판결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두고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다양성 확보를 위한 정책이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처: Adobe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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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 6월 29일(현지 시각) 미국 대법원은 노스캐롤라이나대(UNC)와 하버드대가 백인과 아시아계 입학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한 ‘공평한 학생 입학 단체(SFFA)’의 손을 들었다. 아프리카계·히스패닉계 우대 조치의 배경인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헌법에 위배된단 것이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미국 내에서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불리한 입지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1961년 진보 성향을 가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이 법안은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노예 제도로 빼앗긴 흑인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학 교육의 영역까지 확대됐고 인종 역시 △인디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까지 확장됐다. 후대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5년 연방정부 전체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 새 명령을 내렸고, 미국 내 각 대학은 잇달아 이 정책을 도입했다.

■미 통합 불구 역차별 논란

이 정책은 미국 내의 소수 인종의 고등교육을 통한 지위 상승을 가능케 했다. 이번 헌법소원 과정에서 하버드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미국 내 40%가 넘는 대학과 60%의 초·중등 교육기관이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인종을 고려하고 있었다. 이 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으로 파악된다. 하버드대는 1965년 행정명령에 따라 이 정책을 도입한 후 첫해 흑인 신입생 수가 전년 대비 51%p만큼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백인 학생과 아시아계 학생들이 비교적 성적이 낮은 소수 인종 경쟁자에게 밀려나게 되면서 역차별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과거 몇 차례 소송이 제기됐으나, 1978년 미연방 대법원은 어퍼머티브 액션을 합헌이라 판단했고 2003년 진행된 소원 심판에서도 그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 내 어퍼머티브 액션은 끊임없이 화두에 올라 1996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주 헌법 차원에서 대학 입시의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하는 주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플로리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9개 주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을 금지한 상태다.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버클리대의 경우, 1996년 어퍼머티브 액션 금지 2년 만에 흑인과 히스패닉 신입생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지난 7월 1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를 중심으로 항의 시위가 확산됐다. 같은 소수 인종 내에서도 어퍼머티브 액션의 혜택 범위가 달랐기에 이번 위헌 판결에 대한 의견은 더욱 첨예하게 갈렸다. 미국 ABC 방송이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법원의 위헌 결정에 대해 전체 52%가 지지한다고 답했고, 32%가 반대했다. 인종별로는 백인 60%와 아시아계 58%가 대법원 결정에 찬성한 반면 흑인은 25%만 찬성 입장을 보였다. 대표적인 수혜 인종을 제외하고는 절반 이상이 위헌 판결에 찬성했다.

미 법원 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대학들은 너무 오랫동안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왔다”며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이와 반대로 소수 의견을 낸 진보적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평등한 교육 기회는 미국에서 인종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이번 판결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선례와 중대한 진전을 후퇴시킨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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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 당사자인 학생들의 의견은 좁혀지지 않는 실정이다. 미국 유학생인 이예빈(경제학, 미네소타대) 씨는 “이 법안이 수십 년 전에 나온 만큼 지금 시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신이 이용한 대학 컨설팅업체에서 스펙도 좋고 시험 점수도 아주 높아 아이비리그에 들어갈 만한 백인 학생이 인종 쿼터제로 인해 합격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단 것이다. 

반면 우리 대학 언어교육원 프로그램 참여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A 씨는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소수 인종 학생들이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대학에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덧붙여 사립대에서 입학 사정시 동문 자녀들에게 혜택을 주는 레거시 제도를 언급하며 “레거시 제도를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한 어퍼머티브 액션도 합법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거센 후폭풍 속 변화 시작

이번 위헌 판결에 따라 미국 내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 입학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브라운대 크리스티나 팍슨 총장은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학교 홈페이지에서 "이번 여름방학 중 연방 대법원 판결에 대한 철저한 법률 검토를 거쳐 입학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하버드대 학보 더 하버드 크림슨(The Harvard Crimson)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에 따라 신입생 자기소개서 질문을 대폭 수정했다"며 "자신의 정체성과 성장 배경에 관한 질문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교내 인종 다양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 대안으로 해석된다.

학자들은 세계적으로 논란이 큰 어퍼머티브 액션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시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강조한다. 우리 대학 신지은(사회학) 교수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비판했던 사람 중 소수 인종의 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최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노력으로 승부해 좋은 보상을 얻는 것을 공정이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사회의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는 유지하되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소수자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소수자 우대 정책은 비단 미국만의 특별한 정책은 아니다. △영국과 인도의 ‘적극적 차별 시정 조치’ △스리랑카의 ‘표준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땅의 아들’ △나이지리아의 ‘국가의 연방적 특징 반영’ 등 국가별로 다양한 소수자 우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수자 우대 정책으로는 △여성 채용할당제 △장애인 의무 고용제 △국가유공자 자녀 우대 △대학입시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 할당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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