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지하철, 다른 대우 “우리는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입니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방침이 나온 지 2년 9개월. 그러나 천여 명의 부산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부대신문이 하루 동안 그들이 되어 차별과 열악한 근무환경에 둘러싸인 그들의 삶을 전하며, 정규직 전환 필요성을 짚어봤다.

역사 바닥을 쓸고있는 기자와 쓰레기통을 비우는 노동자의 모습
역사 바닥을 쓸고있는 기자와 쓰레기통을 비우는 노동자의 모습
일명 호텔이라고 불리는 수안역 청소노동자 휴게실
일명 호텔이라고 불리는 수안역 청소노동자 휴게실

 

많은 이용자에도 불구하고 늘 깔끔한 지하철역. 그 뒤에는 지하철 청소노동자의 노고가 있다. 그러나 정규직인 다른 지역 지하철 청소노동자와 달리 부산 지하철 청소노동자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그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차별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청소한다. 부대신문 기자가 일일 청소노동자가 되어 그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 봤다.

해 뜨기 전 지하로 향하는 그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오전 5시에 기자는 눈을 떴다. 오늘 하루 수안역 오전반 청소노동자가 됐기 때문이다. 수안역 오전반 지하철 청소용역노동자(이하 청소노동자)는 아침 6시부터 근무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버스에 몸을 싣고 근무지로 향했다.

수안역에 도착하자 파란 청소복을 입은 3명의 청소노동자들이 기자를 반겼다. 수안역 오전반 청소노동자인 A(사상구, 64) 씨, B(동래구, 60) 씨, 그리고 기동반 청소노동자 C(부산진구, 60) 씨였다. 기동반은 기계를 이용해 여러 역사(驛舍)를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팀이다. 오늘은 기계 청소를 하지 않는 날이어서 C 씨는 수안역 청소업무를 도우러 왔다.

청소복까지 갖춰 입은 기자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듯했다. 파란 셔츠와 검은 바지,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기자의 모습은 여느 청소노동자와 다를 바 없었다. 화장실을 청소할 때 락스를 사용해 옷이 오염될 수 있어 청소복과 고무장갑은 필수였다. A 씨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면 항상 신발이 더러워져 운동화도 못 신는다”라며 직접 준비한 청소화를 신었다.

운수 좋은 날

출근하자마자 주어진 남자 화장실 청소 업무에 기자는 당황했다. 밤 동안 화장실 이용자가 많기 때문에 가장 먼저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여성미화원이 청소 중입니다’라고 적힌 안내 푯말을 세워두고 남자 화장실을 들어가는 B 씨를 따라갔다. 남자 화장실 입구에서 머뭇거리고 있자 B 씨는 “그냥 일이라고 생각해요”라며 기자의 손에 걸레를 쥐여줬다. 그들에게는 업무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장실 앞에 붙은 남녀 그림은 중요하지 않았다. B 씨가 변기에 락스를 칠하면 기자는 걸레로 닦아야 했는데, 락스 냄새가 독해 숨쉬기 힘들었다. 독한 락스니 조심하라는 주의만 여러 번 들었다.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동안 화장실 이용자가 들어오면 기자는 허둥지둥 나가기도 했다. B 씨는 “가끔 여자가 왜 여기 있냐고 시비 거는 사람도 있고 성희롱하는 사람도 있다”라며 “어제도 남자 이용객에게 불쾌한 말을 들었지만, 그냥 듣고 넘겼다”라며 씁쓸해했다.

 “오늘은 운이 좋네요”. A 씨가 화장실 내부를 둘러보며 기자에게 한 말이다. 청소부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오물이 넘쳐있는 막힌 변기다. 많은 휴지를 한꺼번에 변기에 넣거나 휴지 이외의 물품을 변기에 넣는 경우, 변기가 막혀 오물이 넘친다. 변기 주변이 오물로 오염되는 것은 물론, 가끔 화장실 밖까지 오물로 흥건할 때도 있다. 처리는 모두 청소노동자의 몫이다. 손으로 변기 안을 헤집어 변기를 뚫고, 넘친 오물들을 닦아내야 한다. 어제만 해도 변기 두 개가 막혔다며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가 일하는 날은 막혀있는 변기가 없었지만,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고 변기를 닦는 것만으로도 기자에게는 고역이었다.

지하철에는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손잡이와 계단을 꼼꼼히 닦고, 심지어 긴 밀대로 천장을 닦기도 했다. 천장에 달린 환풍구에 쌓인 먼지를 긴 막대로 털어내니 꽤 많은 먼지가 나왔다. 역사 곳곳에 배치된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수거해 창고에서 분리수거도 해야 했다.

 “이 정도면 호텔”
 
아침 업무를 끝내고 나면 9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B 씨는 “우리는 식대가 천 원뿐이에요”라며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꺼냈다. 한 달 식대로 13만 원을 받는 정규직과 달리 그들의 한 달 식대는 천 원뿐이다. 이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사비로 돈을 모아 쌀을 구매하고 각자 집에서 반찬을 가져와 나눠 먹는다. A 씨는 “이번에 가격이 저렴한 쌀을 구매했는데 별로 맛이 없네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청소부들은 식대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로 고충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배부에도 차별이 있었다. A 씨는 “부산교통공사가 정규직에게 주기적으로 마스크를 주는데, 우리는 두 달 전에 10개 받고 난 후 어제 처음으로 2개 받았다”라며 토로했다. 또한 출퇴근 카드에 제한이 없는 정규직과 달리 청소노동자는 한 달에 60회로 한정돼있다. 출퇴근 카드는 청소를 위해 개표구를 여러 번 드나들어야 하는 청소노동자에게 교통카드처럼 쓰인다. 그러나 기동반에 속한 C 씨의 경우 여러 역사를 다녀야 하므로 출퇴근 카드 횟수가 턱없이 모자라다. C 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임금 차이도 있지만, 복지 차이가 가장 크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청소용품 지원도 적고, 요구사항이 있어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하소연했다.

10시까지 휴게시간이기 때문에 아침 식사 후 청소노동자들은 쪽잠을 잔다. 아침부터 고된 업무를 한 청소부에게 오전 휴게 시간은 꿀 같은 시간이다. 휴게실은 두 명의 기자를 포함해 5명이 누우니 꽉 찰 만큼 좁았다. A 씨는 “우리 역사 휴게실은 다른 곳에 비하면 호텔 수준”이라고 말했다. 청소부 11명이 이용하는 사상역 휴게실은 4명의 청소부가 이용하는 수안역 휴게실보다 더 좁다. 사상역 휴게실에는 에어컨도 없다. 수안역은 좁긴 하지만 싱크대와 샤워실도 갖춰져 있다. A 씨는 “수안역은 최근에 만들어져 다른 역에 비해 휴게실이 잘 갖춰있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고된 청소업무로 땀을 흘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샤워실은 청소노동자에게 필수다. 샤워실이 없어 청소 창고에서 샤워하는 곳이나 싱크대가 없어 화장실에서 쌀을 씻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곳에 비하면 이곳 휴게실이 호텔이라는 비유가 이해됐다.

풀 데 없는 그들의 설움

아침 휴게시간 이후 다시 청소 업무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넓은 역사 바닥을 밀대로 닦아야 했다. 수안역의 청소노동자들은 오전반과 오후반 각각 두 명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두 명이 수안역을 청소한다. 그러나 두 명이 담당하기에 수안역은 너무 넓었다. A 씨는 “700여 평으로 4호선에서 가장 넓은 역사인데 용역 업체가 청소노동자를 더 배정해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비용의 문제로 용역업체에서는 인력을 늘리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한 명이 휴가를 쓰는 날에는 혼자서 넓은 역사를 담당한다. 청소노동자들은 주어진 휴가를 다 써야만 한다. 무급 휴가이기 때문에 용역 업체에서 반드시 휴가를 쓰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너무 넓어 4명이 밀대로 닦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열심히 밀대 청소를 한 탓에  기자의 손목과 어깨가 시큰거렸다.

“어제는 왜 그렇게 미끄러웠어요?”라며 한 아주머니가 밀대 청소를 하는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제 화장실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졌는데 병원비가 많이 들었다며 큰 소리를 냈다. 안절부절하고 있는 기자를 보고 C 씨가 다가와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그랬나 봐요”라며 “조심하지 그랬어요”라고 타이르며 아주머니를 보냈다. 청소노동자들은 잘못이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에게 넘기려는 일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재수 없으면 잘못이 없어도 청소노동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밀대 청소를 하는 기자 옆에서 넘어졌다면 병원비를 책임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이외에도 청소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풀거나, 함부로 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며 청소노동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A 씨는 “우리에게 욕을 하거나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C 씨는 “반려동물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가지 않아 붙잡았더니 그쪽 일이나 열심히 하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라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기분이 나빠도 참아야 한다. 오히려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B 씨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그냥 죄송하다고만 할 뿐이다”라며 “불편해도 불편하다는 소리를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그들은 지하에서

계속되는 청소 업무에 지쳤지만 이제 정오였다. 오전반 청소노동자들은 3시까지가 업무시간이다. 그러나 “이제 똑같은 업무를 반복할 뿐이니 여기까지만 해요”라며 수고했다는 A 씨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기자는 청소노동자로 보내는 하루를 끝냈다. 기자가 지하철을 나서는 순간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청소업무로 바빴다. 기자는 6시간 만에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여전히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에서 청소노동자의 삶은 묵묵히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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