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개를 구경하러 온 사람으로 붐비는 유라리 광장. 영도대교가 갈라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한편 구석에 위치한 ‘점바치골목 기록관’.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한다. 외면받는 기록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옛 점바치들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피난 온 사람들의 가족을 찾아주러 전국 곳곳에서 모인 점쟁이들의 발자취다. 그러나 기록관에도 기록되지 못한 역사가 있다. 유라리 광장 개발로 내쫓겨야 했던 점바치들의 서러운 신세. 쫓겨난 이들의 억울함은 기록관이 아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기록됐다.


영도대교 밑에 사는 임간난 씨와 그의 강아지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가끔 찾아오는 딸과 근황을 얘기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업고 영도대교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집에 있는 것은 고물 TV뿐이지만 세상을 엿보기에 충분하며, 좁고 낡은 집이지만 강아지와 함께하기에 알맞다. 임간난 씨의 아랫집에 사는 점바치 배남식 씨는 자신의 집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 한평생 점바치 일을 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손님이 드나드는 신발장을 광이 나도록 닦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방구석에 진열해놓기도 했다. 느지막한 오후에는 함께 골목을 지켜 온 점바치 김순덕 씨와 만나 서로의 수명을 점쳐준다. 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여기서 끝까지 살다 그냥 죽게 해 주소”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두 점바치의 눈에는 인생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즐거운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부산시가 강제퇴거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배남식 씨는 영도대교를 랜드마크로 조성하기 위해 건물을 허물어야 한다는 부산시의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다. 도개를 구경하러 온 부산시장에게 부당함을 호소하지만, 부산시장은 관심이 없다. 공무원들은 집을 비우라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는 인생 전부를 함께한 영도대교를 떠나고 싶지 않다. 임간난 씨 역시 집을 떠나야 한다. 낡은 달력에 적힌 ‘이사 가는 날’이라는 글자를 보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이날 떠나야 한다는데, 나는 가기가 싫고 그렇다”라며 딸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고백한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소중한 터전은 전부 허물어진다. 겨우 터만 남은 그곳에는 점쟁이 일을 하기 위해 배남식 씨가 돗자리를 펴고 있다. 두 사람이 앉으면 꽉 차던 방들 대신 쾌적한 광장이 들어섰지만, 배남식 씨의 눈에는 여전히 자신의 집이 더 좋아 보인다. 그는 자신의 집이 왜 없어져야 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돗자리마저 접고 내쫓기게 된다.


관객의 눈에는 넓고 쾌적한 유라리 광장이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낡고 좁았던 일상이 훨씬 더 의미 있으며 소중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해온 재개발의 민낯이다. 불필요한 가치를 위해 희생된 것은 누군가의 소중한 일상이었다. 그렇다면 재개발 문제는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까?<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던진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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