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 이면에는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일하는 방송작가가 있다.

방송작가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필요한 대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나 출연진을 골라 작품의 줄거리를 구상한다. 방송작가유니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의 <2016년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는 작년 기준으로 1만 명이 넘는 방송작가가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상황 따라 변하는 근로조건

열악한 방송작가의 업무환경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했다. 방송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문제는 표준근로계약서의 부재였다. 이는 방송작가들의 노동이 상황에 따라 처리되는 주원인이었다. 방송작가 624명을 대상으로 시행된 <2016년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 중 6.6%만이 서면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심지어 24.6%는 노동조건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KBS> 부산방송에서 라디오 작가로 일했던 C 씨는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 근로계약서가 없다”며 “대부분 근로계약조건이 구두로 전달된다”고 말했다. 

한편 방송작가들의 표준근로계약서 마련은 어려운 실정이다. <근로기준법> 상 근로계약은 서면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을 적용받으려면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에 방송작가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근로자성 인정은 출퇴근 시간을 정하거나 특정 장소에서 일하도록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시하는 ‘사용종속성’이 중요지표다. 하지만 방송작가 전체에 ‘사용종속성’을 적용할 수가 없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근로계약서는 없지만 2014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마련한 표준안은 있다”며 “하지만 이조차 권고사항일 뿐이라 방송작가들이 법적으로 구제를 받기 매우 힘든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긴 시간의 노동은 낮은 임금으로 보상된다  

장시간 이어지는 노동과 낮은 보수도 방송작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방송작가들의 노동시간에 제한은 없다. 방송작가유니온 이향림 사무국장은 “신입작가는 아침 9시쯤 출근을 하지만 퇴근시간은 정해진 게 없다”며 “방송을 앞두고는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한다”고 전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일반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는 실태조사에 참여한 서브작가와 막내작가 중 각 126명(47.6%)과 141명(51.6%)에 달했다. 

노동시간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급여는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위협하고 있었다. 위 자료에 조사된바 방송작가 중 막내작가의 평균연봉은 1,125만 2,435원이었다. 이는 2015년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파악한 임금근로자 소득분위 중 3분위(7~80%)에 해당했다. <MBC>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3년 경력의 작가 D 씨는 “보통 막내작가들은 월 120만 원을 받고 시작한다”라며 “이는 또래 직장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급여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국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보다 외주제작사가 프로그램을 제작해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방송국은 낮은 가격에 프로그램을 구입하려하고, 때문에 외주제작사는 방송국이 원하는 가격을 맞추려 프로그램 제작비를 삭감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최유리 정책차장은 “일반 공장의 하청구조와 비슷하다”며 “외주제작사들은 싼 값에 프로그램을 판매하려고 제작비에 포함된 방송작가의 원고료를 낮춘다”고 밝혔다.

보험 가입률 ‘바닥’ 기댈 곳 없는 방송작가들

방송작가의 복지제도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서 사업장이 노동자가 입은 피해의 일부를 보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 중 2%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었고, 1.5%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방송작가들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은 다른 프리랜서들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방송작가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상황임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노동조합, 문제 해결 실마리 찾을까

지난 11일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방송작가지부(이하 방송작가노조)가 출범했다. 방송작가노조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동사각지대에 놓인 방송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만들어졌다. 방송작가노조 임시집행부에 있는 이향림 사무국장은 “방송작가들이 본업에 자부심을 갖고 부당한 대우는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돈 의원도 “방송제작의 핵심인력인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노동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며 “특히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막내작가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방치돼온 문제 넘쳐나는 과제

방송작가의 근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먼저 보수나 근로시간을 표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C 씨는 “늘 상황에 따라, 방송사에 따라 여건이 바뀐다”며 “업무에 표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표준근로계약서 마련의 중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향림 사무국장은 “방송 관계자들과 방송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서로가 합의한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다만 그들이 만든 표준근로계약서에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일괄적으로 근로계약서를 만들기에는 방송작가의 근로여건이 너무 다양하다”라며 “노조에서 근로계약서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계약서 적용에 고용자와 의견대립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정확한 실태조사로 프리랜서인 방송작가 중 근로자성이 있는 작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가장 시급한 건 정확한 실태조사”라며 “조사를 통해 근로자로 인정되는 방송작가들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나 기관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는 외주제작사나 방송사들을 철저히 단속해야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특례업종을 축소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59조 상 노동시간에 제약을 두지 않는 업종이 규정돼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방송업종이다.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방송업계 특성 상 방송작가의 근로여건 악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상돈 의원은 “방송업종이 특례업종이다보니 방송작가에게 장시간 노동환경 등 열악한 환경이 조성된다”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특례업종에 관한 점검 및 축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