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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낙수
  • 신우소 편집국장
  • 승인 2017.11.21 13:47
  • 호수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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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 것이 기자의 덕목이라 여겼다. 생계를 걱정하며 함께 눈물 흘렸던 효원문화회관 상인 아주머니도, 커피가 식는 줄도 모른 채 사적인 이야기를 떠들어댔던 본부의 취재원과도. 더 듣지 못한 그들의 속사정이 궁금해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여태껏 모든 기사에서 그랬듯, 늘 듣는 사람이었다. 그게 내 역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 한림원을 앞두고서는 조금 달랐다. 여느 때처럼 <썰전>을 시청하는데도 끄적이고 싶은 말이 맴돌았을 평소와 달리 어느 사안에도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전직 대학부 기자가 어디 가랴, 무심코 뒤적인 총학생회 선본 책자에는 하고픈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어쩐 일인지 썩 내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기자’라는 무게에 익숙해지기도 전, ‘편집국장’이라는 버거운 직책을 맡았다. 길을 헤매기도, 그 서투름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개강호를 발행한 월요일에는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놀라 부랴부랴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취재원이 털어놓는 수화기 너머로의 불만에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선 자책하기도 했더랬다. 버거운 직책이 주는 무게에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발행일에는 항상 신문을 손에 쥐고 강의실로 향했다. 보이는 바이라인에 마냥 기뻤던 기자 때와 달리, 올해는 신문들에서 하나같이 잘못된 부분만 뚜렷이 보였다.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변명했으면서, 왜 더 하지 못했을까하고 책망하는 나도 참 우스웠다. 그런 탓에 모두에게 인색해져 갔다. 스스로는 좌절의 절벽 끝으로 몰아세웠고, 구성원들을 다그치기만 했다. 그저 무던히 하루를 보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건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매번 다가오는 발행은 나를 넘어져도 또 일어서고, 땅을 짚고서라도 일어서게 했다. 눈 뜨면 발행이라는 말이 그토록 야속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읽는 이에게 진심을 전달하겠다는 욕심이 참 많은 것을 바꿔 놨다. 잠이 많은 터라 밤을 새우는 것도 익숙지 않았는데, 이제는 마감날엔 벤티 사이즈 커피 한 잔을 챙기는 습관이 몸에 뱄다. 발행일마다 반복되는 취재원들의 투정에는 괜스레 웃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끄덕이기까지 한다.

어느새 마지막 한림원을 써내고 있으니, 몇 달 뒤면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갈 테다. 입사 전 내게 총학생회는 정문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던 이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선본 공약 책자를 펼쳐 실현가능성까지 논하고 있으니 점잖아지기는 그른 듯하다. 펜을 놓더라도 꽤나 큰 공허함에 방황할 것도 분명하다. 밤을 새면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일상에서 헤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도 확실하다. 두 번 남은 발행에도 독자들에게 우리 신문은 어떤 의미였을까하는 생각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부대신문>이 나를 채우고 있었던 큰 조각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조각이 빠져나간 자리에 아직 채울 것도 마땅찮아 섭섭함을 쉽게 지우긴 더욱 힘들 테다. 그냥 여느 때처럼 등굣길에 발행된 신문을 집고 내 이름이 없는 신문에 낯설어할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신우소 편집국장  danbi@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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