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친척들은 애가 탄다. 할머니 댁에 오기 꺼리는 사촌 오빠 때문이다. 오빠는 태어나자마자 고열로 시력을 잃었고, 발달장애도 지니게 됐다. 차로 40여 분 거리, 오빠를 할머니 댁에 오게 하려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할머니께서 용돈을 주겠다고 타이르고, 특수학교 담임선생님은 연휴 이후에 재밌는 놀이를 하자고 제안한다. 갖은 방법이 동원된 후에야 오빠는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이동이 힘들다는 사실은 오빠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장애 학생들은 장거리 이동에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저 학교에 가는 것조차 말이다. 특수학교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집 주변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축복이다. 올해 특수교육대상 학생 수는 9만 명을 웃돌지만, 학교는 전국 173개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장애 학생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멀리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작년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특수학교 재학생 중 통학시간이 30분 이상인 학생은 과반에 가까웠다. 특수학교가 적고 분포가 불균형한 점은 장애 학생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 요소다.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동이 불편한 그들에게 긴 통학거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참 가혹하다.

애석하게도 이는 안전과도 직결된다. 그저 학교를 가기 위해서지만, 그들 앞에 놓인 위험한 상황은 많기만 하다. 매년 장애 학생들을 태운 통학버스 사고가 잇따라 보도된다. 작년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트럭과 추돌해 25명이 부상을 입었고, 올해는 부산에서 빗길 사고가 발생했다. 또 특수학교에 다니던 한 아이가 통학버스에서 심정지된 채 발견돼 세간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단지 교육받기 위해 학교에 갈 뿐인데, 그조차 그들에게 쉽지 않다.

‘여러분, 장애 아이들도 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 토론 중 학부모가 한 말이다. 주민들은 이미 강서구 내에 특수학교가 있다며, 왜 이곳에만 특수학교를 설립하냐고 반발했다. 땅값 하락 우려도 내비치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주민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울분이 차올랐다. 장애아 학부모는 급기야 무릎까지 꿇으며 ‘당신들도 부모 아니냐’고 사정했다. 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삽시간에 SNS를 뒤덮었다. 이렇게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이들을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되자 비로소 정치, 교육계가 팔을 걷고 나섰다. 국회는 국가나 지자체가 계획한 특수학교를 차질 없이 신설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했고, 서울시 교육감은 현재 특수학교가 없는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학부모들의 간절한 진심이 일궈낸 움직임이었다.

<교육기본법>에 따라 그 누구도 교육 앞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장애인에게 더 무거운 짐이 얹혀 있으니, 평등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이들은 단지 교육받을 권리 앞에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 혹독한 장벽을 넘어서고 있다. 누구나 보장받을 권리라고 여겼건만, 누군가는 보장받기 위해 싸워야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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