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냥 기자가 아닌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알리고자 하는 바를 당당하게 말하는 언론인들의 용기가 멋져보였다. 나도 그들을 본받고 싶었다. 세상이 아무리 내 입을 막는다고 해도 모두 떨쳐내고 당당히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리라. 그렇게 내 기사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리라. 하지만 직접 기사를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

 

  내 기사 때문에 편집국으로 전화가 걸려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정정 보도를 요청하거나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실렸다는 내용의 전화. 그럴 때마다 ‘왜 내 기사만 문제가 일어나는 거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항상 뒤처리를 맡아주는 데스크에게 미안했고, 꼼꼼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이렇게 써도 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러 일을 겪고 나는 최대한 문제가 되지 않는 기사를 쓰고 싶어졌다. 기사 한 줄 한 줄이 어려웠고 또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바이라인에 적힌 내 이름을 지우고 싶던 적도 있었다. 처음 꿈을 가졌을 때부터 말해왔던 ‘할 말은 하는 구은지 기자’는 숨어버리고, 겁먹은 구은지 기자가 나타났다.
 
  “제가 그 기사 맡을게요”. 이번 주 보도회의 중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그 한마디 말이 내 가슴을 이렇게 답답하게 만들지 몰랐다. 내가 맡게 된 보도는 학교에서 발생한 실험사고 피해보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취재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무게가 있는 기사였다. 취재원은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또 두려웠다.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낙수가 하루 남은 시점에서 내가 낙수를 쓸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수습이 되기 전보다 나약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취재원과 얘기를 나누던 중, 잃어버렸던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취재원은 기사가 나간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겁먹은 구은지 기자는 사라지고 ‘할 말은 하는 구은지 기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대답했다. “이 기사를 통해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또 다른 피해자가 이 일을 통해 올바르게 대처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변화”라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발견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강한 신념은 겁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을. 여태 나를 이끌어온 것들이 비겁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던 것이다.
 
  나는 다짐했다. 같은 자리에서 계속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내 신념과 다시 당당히 마주하기 위해 변할 것이라고. 처음으로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가졌던 열정을 다시 되찾을 것이라고. 어쩌면 정기자가 되어서도 겁먹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큰 사건을 맡은 부담감이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말은 하자는 내 신념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만 생각한다면 아무리 두려워도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할 말은 하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겁을 떨쳐내고.
구은지 (정치외교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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