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술 교류차 일본을 자주 가는 편인데 주로 하천의 생태를 다루는 관계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분들의 안내로 큰 하천변의 수생태관에 들르면 전시되어 있는 눈에 익어 반가운 물고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가물치다.


  한국인에게는 반가운 가물치가 이곳에서는 골칫거리로 취급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우리의 가물치가 토종어류를 위해하는 1급 외래종으로 일본 열도의 수생태계를 초토화하고 있다는 일본인들의 엄살(?)섞인 하천생태교육 현장에 동행한 우리 학자한 분이 과거 천인공노할 일제강점시기를 연상하며 가물치가 우리 대신 한민족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는 우스갯말을 던지기도 하였다. 아! 인간이 지은 업보를 물고기가 대신 당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갑옷을 입고 용맹을 떨치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우리나라 물고기를 찾자면 단연 가물치다. 씩씩하다 못해 무섭게 까지 보이는 이 물고기는 길이 1미터가 넘는 것도 있는 대형 어종이다. 몸은 암갈색 바탕에 흑갈색 반점이 군복무늬처럼 골고루 퍼져 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을 띠고 있으나 어린 치어는 반점 없이 황갈색을 띠고 있다. 주로 저수지, 늪 등 물이 고여 있고 수심이 얕으며 물풀이 무성한 곳에 서식한다.


  우리가 사는 인근 재래시장만 가도 보신용으로 파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가물치. 일본에 가서도 전혀 꿀리지 않고 오히려 기가 살아 펄펄 나는 그 힘의 원천을 알아보자.


  첫째, 상새기관이라고 하는 호흡보조기관이 있어 오염되고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도 잘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 몸에 수분이 마르지 않게 하여 기온 7℃에 물 밖에 나두었더니 일주일이나 피부호흡과 공기호흡만으로 산 기록이 있을 정도이고 수온의 급격한 변화에도 잘 견딘다.


  둘째, 위기관리의 대처능력이 뛰어나다. 가뭄으로 연못의 물이 말라 들어가면 돌처럼 단단한 대가리로 진흙바닥을 뚫고 들어가 물기가 있는 구멍을 만들고 그 속에서 지내다 우기시 물이 불으면 다시 튀어나와 활동을 시작한다.


  셋째, 번식력이 뛰어나다. 수컷과 암컷이 함께 물위에 뜨는 물풀 둥지를 만들고 여기에 알을 낳는다. 가물치 부부는 합심하여 알을 돌보고 깨어난 새끼도 독립할 때 까지 지켜주는 부성애, 모성애가 모두 뛰어난 물고기다.


  넷째, 왕성한 식욕을 가진 육식 어종으로 평소 영양분을 충분히 축척하여 먹이가 없어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천만 년 다른 생물종과 같이 살아오면서 생태계 균형을 이루어왔던 가물치.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간 이들의 후손은 현재 거의 전 수역에 퍼져 서식하고 있다. 이름도 우리말을 그대로 옮긴 ‘가무루치’를 표준말로 사용하고 있다. 가물치가 일본 담수 수계의 고유종을 무차별 포식하자 이를 제거하자는 구호가 각 하천마다 등장하고 있지만 강인한 생활력을 가진 이들이 이미 일본 담수 수계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터줏대감이 되어버린 것을 일본열도에서 과연 쫒아낼 수 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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