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나는 우리 학교에서 열린 김제동 토크 콘서트에 참가했다. 굉장히 재밌었는데, 이 콘서트에서는 사회적 참여에 관련된 이야기도 했다. 그중 한 가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우리 세대가 도와줘야 한다며 자신의 강연비 절반을 총학생회 모금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에게서 많은 박수가 나왔다.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김제동에게 환호하며 박수를 쳐주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다음 주에 나온 <부대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1면의 제목은 ‘총학 소녀상 건립 모금 이대로 가면 불법’이었다. 1면의 사진도 콘서트 당시 총학생회가 건 현수막에만 포커싱 되어 있는 사진이었다. 기사의 내용은 모금의 불법성을 꼬집은 것이었다. 부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부대신문> 어디에서도 이 위안부 합의의 문제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왜 이번 합의에 반대하고 소녀상 지키기는 왜 하는지의 내용은 없었다. 그리고 모금에 동참하려고 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연대를 표한 학생들의 인터뷰는 단 한 개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번 ‘위안부 합의’는 위험한 것이다. 많은 외신이 보도하듯, 이번 합의에는 미국 정부의 압력이 많이 작용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은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길 바랐고,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과거사 문제가 청산되길 바랐다. 그 일환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고작 10억 엔을 배상(그것도 일본 외무상은 이것이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는 배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하고, 다시는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을 합의했다. 시간이 갈수록 한미일 동맹과 북·중·러 동맹의 대결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위안부 합의는 이런 긴장을 더 고조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합의의 피해자가 된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런 전쟁 중에 강제로 납치당해 성폭행, 강금, 살인 등의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런 폭행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이번 합의에서도 당사자의 목소리는 묻혔다. 할머니들은 전 인생을 치욕에 떨며 지냈다. 그러나 이번 위안부 합의는 우리에게 할머니들의 아픔은 잊고, 다시는 거론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합의에 반대하며 소녀상을 지키거나 추가 건립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일본의 끔찍한 만행을 기억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 억울함과 분함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 문제에 분노하고 김제동에게 박수를 쳤다고 생각한다.
<부대신문>이 신뢰받는 언론이 되려고 한다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어떠한 사건에 대한 맥락을 잘 설명해야 한다. 단순히 그것이 불법인지 아닌지 법 조항을 찾아보는 것, 그리고 자극적 1면 보도로는 진정한 ‘언론’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박준희(사회학 박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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