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발행을 끝내고,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은 새벽길을 걸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며 바라본 풍경은 이상하기만 하다. 사람이 없다. 나는 일주일 내내 취재를 하며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건만 사람은 온데간데없다. 사람이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여서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구멍이 생긴 것만 같았다. 가슴팍에 생긴 큰 구멍을 오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 일을 누가 알아주나. 내 두발로 학교 곳곳, 부산 곳곳을 뛰어다니며 시민들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취재해도 대다수의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일주일을 열심히 매달린 끝에 얻는 것이 휑한 구멍이라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구멍이 생겼던 그 새벽길에서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주위 사람들이 “많이 힘들구나”라며 막연하게 건네는 위로로 메우기에는 턱도 없이 큰 구멍이다!
내가 신문사 활동을 계속하는 한 구멍은 작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점점 커지는 구멍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나는 공허함을 메우고자 하는 발걸음을 쉽사리 뗄 수 없었다. 반복적인 신문사 업무에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무기력감 속에서 구멍을 메울 의지를 잃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그렇기에 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구멍이 커져 가던 중 한 취재원을 만났다. 그날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자느라 전공수업을 놓쳐 침울해진 상태였다. 취재원과의 약속이 있었지만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다. 겨우 취재원을 만나게 된 것은 의무감 때문이었다. 취재원은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마을의 주민공동체 대표였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에서 나는 가슴팍에 생긴 큰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삽을 찾았다. 세상에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가 되어야 했다.
‘기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기사를 쓴다고 해서 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기자는 ‘기자’이기 때문에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기사를 쓰기 전에 ‘기자’라는 것이 되어야 했다. 많은 이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자는 기사를 써야만 한다. 나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누군가가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삽을 들어 내 안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
여전히 큰 구멍을 가진 나는 기자가 되려 한다. 남들이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밑 빠진 물 붓기 같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구멍을 메우다 보면 진정으로 ‘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내가 신문사에서 남아서 찾은 이 해답은 올바름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삽을 들고 치열하게 내 안의 구멍을 메운다.

 김지영 <일어일문학 15>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