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모두 보내고 나니 ‘그 날’이 왔다. 그 날로부터 35년이 지나 2015년이 왔지만 오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4일, 국가보훈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18일) 열리는 제35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곡이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돼 이 노래를 제창할 경우 국민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 이후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까지 기념식에서 제창 방식으로 불렀다. 하지만 일부 단체의 문제 제기로 2009년부터는 합창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 단체 등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와 국가보훈처의 거부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쯤 되면 제창 요구를 트집 잡아 그 핑계로 5·18 기념식 자체를 파행시키는 것이 국가보훈처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3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광주 시민들은 여전히 1980년의 오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80년 5월을 직접 경험했거나 목격한 광주시민 533명’을 대상으로 한 시민인식 조사결과 93.5%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5월이 되면 5·18에 대한 생각이 난다’고 답했다. 62.9%는 현재까지도 5·18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고, 절반 가까이는 공포와 불안을 떨치지 못해 정상적인 생활까지 어려움을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에 속했다. 트라우마의 ‘기념일 반응’이다. 5·18 민주화 운동이나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세월호 참사와 같이 충격적인 상황을 겪은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를 입은 날짜나 계기를 맞으면 그 때의 기억이 활성화되고,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이러한 기념일 반응은 애도나 위로가 충분치 못했을 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종이 된 것은 자연계 구성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인간을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라 명명한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인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희생한 영혼을 추모하는 노래를 거부하는 국가보훈처와 희생자들을 ‘홍어 택배’라 희화화하는 일간베스트.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키우기만 하고 있다. 미국의 평론가 캐시 캐루스에 의하면 트라우마란 ‘소화되지 못한 기억의 파편들’이다. 그 날의 기억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소화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광주의 트라우마가 극복될 수 있다.
  잔인한 5월, 트라우마의 시절이 또다시 흘러 가고 있다. 기억의 공유와 공감이 절실한 때다. 국가보훈처는 올해의 5·18 기념식 주제를 ‘갈등과 분열을 넘어 미래로’로 정했다. 언제쯤 갈등과 분열을 넘어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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