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3세 여대생 이효원. 최근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매일매일이 학원, 도서관, 집을 오가는 일정으로 꽉 채워져 있어 책은커녕 영화 한 편 볼 시간도 없다. 친구와 수다를 떨지도, 멀리 놀러가지도 못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 드라마, 만화, 소설까지 ‘틈틈이’ 챙겨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도서관에 가는 동안에는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본다. 종이책처럼 책장을 넘길 필요가 없어서 이동하면서 가볍게 보기에 딱이다. 지루한 공부 후, 꿀맛 같은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으면서 10분짜리 웹드라마를 본다. 텔레비전이 없어도 되고, 편당 보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짧기 때문에 나 같은 수험생들이 머리를 식히는 데 안성맞춤이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도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최근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웹소설을 보기 위해서다. 휴대폰 소설 속 남주인공과 한바탕 설레는 데이트를 한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든다. 큰 맘 먹고 뮤지컬 티켓을 예매할 경제력이나 영화관에서 여유롭게 영화 한 편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내게 이러한 ‘스낵 컬처’는 참 고마운 존재다.
 
 
와그작와그작, 맛있게 즐기는 문화­­
  ‘스낵 컬처’란 간단한 식사를 의미하는 ‘스낵(Snack)’과 ‘컬처(Culture)’의 합성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스낵처럼 짧은 시간 내에 간편하고 쉽게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최근 트렌드를 일컫는 신조어다. 스낵 컬처는 지난 2007년 잡지 ‘와이어드’에 처음 소개됐다. 음악과 방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입 사이즈’로 구성된 형식이 중요한 문화 코드가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문화·여가 생활에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을 위해 지하철역이나 병원 등에서 이뤄지는 작은 음악회, 직장인의 점심시간과 같은 자투리 시간에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이나 레포츠 등으로 시작됐다. 전미영(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거창한 콘서트나 극장에서 제대로 된 문화공연을 즐기기에는 시간과 경제력이 부담스러운 현실을 고려했을 때, 현대인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수단인 셈”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4년 문화예술 트렌드 분석 및 전망’을 통해 올해에는 스낵컬처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과자만큼 종류도 다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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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낵 컬처는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문화생활을 즐기고자 하는 대중들의 성향이 두드러지면서 갈수록 각광받고 있다. 특히 2010년을 전후로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이용해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이 등장했다. 
  스낵 컬처에서 가장 큰 ‘먹거리’로 부상한 것은 ‘웹툰’이다. 네이버, 다음, 올레 등 다양한 플랫폼이 독창적인 형식과 이야기를 짤막하게 즐길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 웹툰의 1일 평균 이용자 수가 620만 명에 이를 만큼 많은 사람이 웹툰에 빠져 있다. 정소현(식품영양 13) 씨는 “평소 웹툰을 좋아해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플랫폼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보는 편”이라며 “참신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웹소설 역시 스낵 컬처에 가장 최적화된 콘텐츠 중 하나다. 일반 소설과 달리 흐름이 짧고 전개가 빨라 이동 중에도 편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네이버, 문피아, 조아라 등 웹소설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웹소설 사이트 ‘조아라’의 고객센터 김민희 팀장은 “로맨스나 판타지 등 가벼운 소재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독자 유입이 쉬운 편”이라며 “해가 지날수록 성장해 올해는 웹소설 전체 시장 규모가 200억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최근 인기 아이돌들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웹드라마는 출퇴근길에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10분 이내의 분량에 평균 5~6회 정도의 짧은 드라마이다. 주요 시청층인 20대의 사랑과 취업, 일상을 다룬 것부터 SF 장르까지 기존의 TV 드라마와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현아(경영 15) 씨는 “1시간짜리 긴 드라마에 비해 시간에 대한 부담감이 적고 많은 회차를 다 봐야 한다는 압박도 없어 웹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동네 산책로를 활용해 단기 마라톤과 유사한 경험을 하는 ‘트레일 러닝’이나 긴 휴일 없이도 반나절 캠핑을 즐기는 ‘데이 캠핑’ 등의 확산도 스낵컬처로 볼 수 있다.
 
일회성 소비 아닌 
꾸준한 문화로 자리잡아야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스낵 컬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현대인의 달라진 생활 습관을 이유로 꼽았다. 한상덕 대중문화 평론가는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대중이 정보를 얻는 속도는 빨라졌으나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싶어 한다”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하나를 깊게 알기보다는 다양한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  이러한 스낵 컬처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행이 아니라 꾸준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할 전망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스낵 컬처는 제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적은 자본으로 큰 위험 부담없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장소에 제한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낵 컬처가 점차 주류화되고 있는 데 반해 콘텐츠의 질이 그 확산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상덕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술의 발달로 콘텐츠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폭력물이나 음란물, 남의 것을 짜깁기한 자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질적인 측면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문화마저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역시 많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영은 연구원은 “간편하고 손쉽게 즐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문화’가 갖는 고유의 영역은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성 오락거리만 소비하다 보면 사회에서 문화가 담당하는 역할이 옅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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