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대학 대학
부마항쟁 35년 후, 시월의 목소리의 귀향-부마민주항쟁의 주역 정광민(경제78, 졸업) 동문과의 동행 인터뷰
  • 오나연 기자
  • 승인 2014.10.14 18:16
  • 호수 1490
  • 댓글 0
   
 

   ‘유신철폐’와 ‘독재타도’의 외침이 시작된 자연과학관(당시 상과대학) 앞. 지난 9일 오후, 부마민주항쟁의 첫 발자국을 새겼던 정광민(경제 78, 졸업) 씨가 35년 만에 다시 학교에 발을 디뎠다. 공휴일을 맞은 캠퍼스는 고요했지만, 그날의 움림은 정광민 씨에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진짜 가슴이 뛴다, 뛰어”

 
  자연과학관 앞에서 35년 전을 회상하던 정광민 씨는 학생회 게시판을 가리켰다. 당시에는 벤치가 자리 잡고 있던 곳. 그날, 항쟁을 함께 하기로 했던 친구는 끝내 오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하지. 얼마나 갈등이 됐겠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 그였지만, 한동안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광민 씨의 발걸음이 제1사범관(당시 인문사회관)으로 향했다. 정 씨가 선언물을 배부한 곳이다. 복도를 서성이다 마침내 들어갔던 강의실. ‘때가 왔다, 나가서 피 흘려 싸우자’ 정도의 말을 외쳤다. 투박한 말이 오히려 학생들을 자극한 것일까. 학생들은 하나 둘 일어섰다. 호응은 커녕 학교 측의 연행이 겁나던 상황, 하지만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되돌아온 자연과학관 앞에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여기로 집결하던 과정. 그게 바로 부마항쟁의 원형이었어”
 
  정씨는 학생들이 잔영이 남아있는 자연과학관 앞을 뒤로한 채 항쟁의 물결을 따라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학생들의 파도는 건설관(당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구호 소리를 듣고 따라 붙은 학생들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꼬리를 물며 따라왔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지, 재료관 앞 다리를 건너는 정 씨의 모습은 당당했다. 이윽고 다다른 건설관 앞, 정광민 씨는 잔디밭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회상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분출이랄까” 수백 명이 잔디밭에 모여들었다. 선언문을 낭독하고 구호를 외쳤던 그곳. 이를 기점으로 항쟁의 행진이 시작됐다. “운동장을 도는 모습은 마치 큰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어마어마했지”
 
  “진짜로, 각본 없는 역사 드라마였어” 당시의 향수를 느끼며 두리번거리던 정광민 씨. 어느덧 거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춰 섰다. 바로 10.16기념관. 당시 대학극장이었던 장소가 지금은 부마민주항재을 기념하는 건물로 변모해 있었다. 입구 옆 비석에는 당시의 설명과 함께 ‘큰 뱀’을 이뤘던 운동장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정광민 씨는 비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규명이 안 되놓으니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어. 정말로” 무지개문 아래, 제2도서관 앞 조경. 저항의 흔적을 품은 장소들을 거닐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던 부마항쟁의 주역은 다시 학교를 떠났다. 항쟁의 행진이 운동장을 돌아 정문으로 나간 것처럼.
 
  그때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시월의 그날, 캠퍼스에는 씁쓸한 미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오나연 기자  ab2927@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나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