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준 스포츠칼럼니스트

 

“사실 ‘연아 빠’들은 김연아를 건드리는 것 자체가 못마땅한 거야. 글은 읽지도 않고 비판했다는 사실만으로 날 욕하는 거죠” 거침없는 말투. 정희준 칼럼니스트는 인터뷰 내내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조금 센 듯한 그의 발언에도, 선한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 때문인지 결코 거부감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감화되며 설득 아닌 설득에 넘어가고 있었다. 정희준의 칼럼을 읽기 시작했을 때처럼.

  정희준 칼럼니스트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특히 스포츠계에서 쉬쉬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뱉어낸다. 스포츠 혐오증에 걸리지 않았나 의심될 정도다. “대한체육회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나에요”라는 그의 말처럼 스포츠계는 정희준을 꺼려한다. 그렇기에 그의 칼럼은, 우리들에게 더욱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그와의 인터뷰는 귀성길이 뚫리는 것마냥 속 시원하고 즐거웠다.

 

스포츠계의 ‘괴짜’ 정희준

 

△스포츠 칼럼니스트, 동아대학교 생활체육학과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 많은 직책들이 붙어있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당신이 하는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해 달라

  김어준이 저한테 ‘오지랖이 넓다’고 하더라고요. 천상 팔자인가 싶기도 하고. 한 마디로 표현하기 애매한 것 같아요. 처음 칼럼을 쓰게 된 것은 스포츠가 계기였죠. 전공이 스포츠사회학이기도 하고. 그런데 스포츠가 결국 이 사회의 축소·반영이에요. 사회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된 거죠. 최근 활동은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그냥 칼럼니스트? 아니면 지역 활동가 정도. 그런 게 어떤가 싶기도 하고. 음, 그 문제는 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전공 분야도 스포츠,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스포츠. 어릴 적에는 선수로 활동했다고 들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에 얼마나 영향이 있었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검도랑 육상을 했었어요. 그러다가 공부로 넘어갔죠.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무엇을 전공하겠다’는 생각, 별로 안하잖아요? 그런데 계기가 있었죠. 한창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시절, 제 모습을 본 엄마가 밥을 하다가 ‘뭘 그렇게 고민하냐’며 ‘너 미술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미대나 체육과 가면 되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을 딱 듣고 ‘어, 맞다’ 한 거죠. 그때부터 체육과를 생각하게 됐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주욱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빵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소풍갈 때에도 빵을 가져갈 정도로. 그러니까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너 미국 가서 살면 잘 살겠다’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이런 것들이 연결돼 자연스레 미국 가서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단순하면서도 괴짜 같다. 그러고 보니 학과 내에서 동료 교수, 학생들에게 ‘괴짜 교수’ 취급을 받는다던데

  체육계가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운동선수 출신도 많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 국가에 대한 애국심, 이런 게 대단하거든요. 위계질서도 뒤따라오고. 나름의 군기와 조직논리가 존재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 개의치 않고 얘기하다보니 선배 교수님이 대놓고 무어라 하신 적도 있고,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해주시기도 하고. 학생들과도 안 좋죠. 특히 학생회. 집합 자체를 못하게 하니까요. 요즘은 괜찮은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를 제일 싫어했어요. 쫓아내야 한다는 학생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뭐, 이런 것 신경 쓰기 시작하면 뭘 시작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못하지. 그냥 꿋꿋하게 하기로 했죠.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니, 보람을 느껴요.

 

‘검투사 시스템’이 자리 잡은 한국 스포츠계

 

△‘집합’의 존재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사실 체육계의 폭력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일반인들의 인식도 그렇지 않나

  그렇죠. 그런데 그걸 자꾸 덮으려고 해요. 한번은 생방송 토론회에서 체육계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었는데, 함께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한 스포츠 기자가 ‘체육학과 교수라는 분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 안 된다는 뜻이죠. 손해거든요. 협회는 당연하죠. 전횡도 할 수 있고, 돈도 좀 빼먹고. 그걸 유지하려 하는 거죠. 기자들은 편하게 기사거리 얻으려면 취재처랑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되잖아요? 알고도 말 안 해요. 체육계 교수들, 그러니까 학자라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대부분이 보수적일뿐더러 그네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게 이득이에요. 연줄도 생기고, 좋은 밥도 먹고, 입김도 불어넣을 수 있고. 그런데 이들만이 아니에요. 스포츠를 즐기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국민들. 월드컵이나 올림픽 할 때는 열광하다가 끝나면 끝. 끝난 후에는 선수들이 어떻게 뚜들겨 맞는지, 협회에서 어떤 비리가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죠. 그런 일 생겨서 기사화되면 ‘걔네가 원래 그렇지’하며 무식한 집단으로 간주해버리는. 그런 정서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은 어떤가? 생각해보면 연예계 스타들은 사회운동에 참여하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포츠 스타는 유독 그런 경우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국에서는 축구선수 드록바나 지단, 앙리 등이 반전, 인종차별 반대 등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하나?

세상을 모르는 거죠.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하던 애들이 오죽하겠어. 운동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우리나라 스포츠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죠. 시스템의 문제에요. 우리나라 스포츠는요, 그냥 무인도에 아이들을 격리시켜놓고 검투사로 기르는 거예요. 뭐, 이때는 문제가 없는데 이들이 뭍으로 나와 세상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부정적이죠. 착취와 학대의 대표적인 시스템이 대한민국 스포츠 시스템이에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없는 시스템.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도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이들이 세상에 나와 뭘 할 수 있겠어요? 운동하는 애들 보면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선수를 탓할 순 없어요. 그 선수는 그렇게 컸을 뿐이니까.

 

△선수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어쩌다가 한국 스포츠가 이렇게 됐나?

이렇게 요약할 수 있어요. 군사독재 정부와 지나친 입시경쟁이 만들어낸 시스템. 사실 5, 60년대 까지는 선수들도 공부하면서 운동했어요. 국가대표도 대입 시험을 따로 치르러 갔었죠. 제 은사님도 국가대표 유도선수였어요. 근데 박정희 정부 때부터 달라졌죠. 병역특례가 70년대에 만들어졌거든요? 그때는 줄창 운동만 시켜서 국위선양하라 했던 거죠. 군대 면제시켜주면서까지. 그러면서 ‘검투사 시스템’이 돼버린 거예요. 오로지 국가의 도구로만 양성되는. 또 스포츠가 이렇게 돼버리니, 부모들이 운동을 안 시켜요. 너무 위험하거든. 그냥 학원 보내 공부시켜 대학 보내는 게 안정적이잖아요. 그런 부모들이 대다수니, 입시경쟁이 과열되고. 제 아이 학원 안 보내고 운동 시킨다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그 시간에 공부나 시키지 하면서. 운동 시키면 이상한 부모 취급하니까, 스포츠가 제대로 자리 잡기 힘들어요.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여러 가지로 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거죠.

 

△이로 인해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불균형도 초래된 것 같다. 엘리트체육은 지나치게 체육에만 집중돼있고, 생활체육에 대한 기반은 매우 빈약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야구팀이 50개 정도에요. 그런데 일본은 4,000여개. 또 한 팀에 30명을 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 고등학교 야구팀은 최소 50명에서 100명이 넘는 학교도 있어요. 그중에서 프로의 꿈을 키우는 애들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요? 끽해야 다섯 명이에요. 나머지 애들은 다 대학 진학하죠. 걔네는 선수·학생 구분 없이 다 공부하는 애들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불가능하잖아요. 안타까워요. 아이들의 건강, 올바른 성장, 정서 함양,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것이 스포츠인데. 최고의 여가선용 방법이잖아요? 제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바로 이거예요.

 

민족과 스포츠, 근대 한국의 비극

 

△모순적이다. 스포츠를 멀리 하면서도, 스포츠 대회만 열리면 미친 듯이 열광하는 한국 사람들. ‘한국 사람들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민족주의. 일제강점기서부터 시작됐죠. 나라를 뺏겨 근대국가를 만들지 못하니, 근대적인 국민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게 당시 지식인들의 목표였어요. 그런데 그 이후를 쭉 살펴봐요. 해방, 한국전쟁 이후. ‘강한 한국인’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여기서 스포츠가 등장하는 거죠. 세계 타이틀 챔피언이 나타나고, 아시아권에서 공도 잘 다루고. 그러면서 국민들이 ‘이기는 스포츠’에 점점 빠져든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니까 근대에 대한 욕망과 민족적 자부심을 표출할 방법으로 스포츠를 택한 거죠. 또 다른 하나는 민족적 집단 콤플렉스에요. ‘강해야 한다’는 말 아래 왜소한 체구. 볼품 없는 대한민국. 그걸 스포츠에 쏟아낸 거죠. 언론들 봐요. 대회만 열렸다하면 지나치게 과대포장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콤플렉스의 표현이죠. 결국 이것들이 맞물려 나온 행동 같아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모습. 사실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미친 듯이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서울 정도다. 사석에서 ‘왜 우리나라를 응원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답변은 듣지 못했다. 왜 나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했나?

그런 얘기 밖에서 하면 큰일 나요, 하하. 뭐, 국가주의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죠. 파시즘이 왜 생기는지 알아요? 외로운 사람들,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국가에 기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2002년 월드컵부터 한국 사회를 보고 있으면, 전체주의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흔히 말하는 ‘루저’들이 많아지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죠. 이때 찾는 것이 스포츠. 김연아에 환호하고 월드컵 대표팀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을 외칠 때 사람들이 하나가 되잖아요? 그곳에 소속감을 느끼며 같이 열광하고 즐거워하는. 대리만족에 있어서 스포츠만한 게 없죠.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를 응원해야 하냐’는 질문에 답변을 해줄 수 있나?

우리나라 대표팀이라 해서, 김연아라 해서 무조건 응원할 의무도, 책임도, 필요도 없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취향은 길러져요. 어릴 적에 여행 다녀보지 못한 어르신들은 자녀가 돈 쥐어줘도 아깝다며 안 간다 하잖아요?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니까. 한국 국민들은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길들여진 거죠. 아주 자연스럽게. 근데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아요. 제가 어릴 적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복싱이었거든요? 그런데 시합시간이 꼭 교회시간이랑 겹치더라고요. 교회 안 간다 했죠, 전. 엄마는 그 꼴을 못 보는 거야. 방문 잠가놓고 교회를 가신 거예요. 나는 미치는 줄 알았지, 시합도 못보고. 그러고나서 뒤에 시합 결과를 들었어. 졌데.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나는 그걸 안 보면 미치는 줄 알았는데, 나의 일상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던 거지. 그때 느꼈던 게 ‘아, 이게 안 봐도 아무렇지 않은 거구나’라는 거죠. 웃겨요. 어쨌든 응원해야 될 필요, 그런 것 전 없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한국 스포츠계의 병폐, 비리, 의혹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이 일상인 정희준 칼럼니스트. 그런 꼴을 보고도 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결국 인터뷰 막바지에 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스포츠를 좋아하십니까?” 내심 ‘그럼에도 스포츠를 사랑한다!’는 답변을 기대하며.

“스포츠는 관찰의 대상일 뿐이에요”라는 그의 답변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혹시나 스포츠에 학을 떼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이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한국의 이 어처구니없는 스포츠 시스템과 인식들은 바꿔나가야죠” 자신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건강하고 재미있게 뛰놀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정희준 칼럼니스트. “스포츠는 제가 놓을 수 없는, 그런 게 돼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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