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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사랑하는 거친 남자[인터뷰]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이광영 기자
  • 승인 2014.04.14 16:34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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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문화유산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두들기는’ 사람.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의 첫인상은 언론에서 비춰진 모습과는 달랐다. ‘밥 먹었느냐’며 간식을 챙겨주는 그의 모습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황평우 소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간 기자가 당황할 정도로.

되돌아보고, 돌아오다

황평우 소장은‘ 현대자동차 입사 1년차 영업왕’ 출신이다.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문화유산정책 전문가인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자동차 판매원이었다. 황평우 소장은 대학을 중퇴하고 한 재야단체에서 활동했다. 잠시 인문사회과학 서적상을 하기도 했지만 금방 때려치웠다.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하지만 본성은 감출 수 없는 법.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동이 걸렸다. 결론은 문화정책연구소 소장. 그렇다고 10년이라는 긴 회사생활에서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돈은 물론 영업왕 포상으로 해외여행까지 갔다 온 그다“. 반미주의자의 첫 해외여행이 미국이었어. 웃기지?”

회사를 다닐 때에도 문화유산에 대한 황 소장의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인문학 강좌를 들으며 세부분야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았다. 각종 세미나는 물론 문화유산 현장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그때부터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6개월 전에 왔던 곳인데 망가져있는 거야. 이상하잖아”

황 소장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문화기획’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때다. 중국에서 느꼈던 평면적인 문화재 답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관련 공부를 하던 도중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황 소장에게 조언했다.‘ 회사 다니면서 기획 못해. 문화기획 하든지 회사 다니든지, 하나를 포기해’ 이미 문화유산에 마음이 기운 황평우 소장은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학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공부를 하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문화유산 관련 활동을 하며 학교를 다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문제제기를 하다 보니‘ 네 전공이 뭔데’‘ 네가 뭘 아는데’라는 얘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고려대 고고미술학과에 편입하게 됐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모두 아는 사람인거야. 활동하며 알게 된 교수들” 어쨌든 편입에 성공한 그는 또 다른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이번엔 누구 잡으려고 고고미술학을 전공해?’

황평우 소장은 자신을 교수로 착각하는 동기들과 함께 공부했고, 학부 졸업 후에는 문화유산학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후에는 학력에 얽매이지 않았다. 박사과정은커녕 석사논문도 쓰지 않았다. 혹자들은 그를 향해 질문한다‘. 문화유산 정책 가지고 강의하려면 학위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황 소장은 자신 있게 대답한다“. 학력 없어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어. 난 강의가 목적이 아냐. 문화유산만 잘 보존하면 돼”

공공의 적, 그리고 '문화유산 1인 미디어'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황평우 소장의 얼굴만 보면 화들짝 놀란다‘. 이번에는 무엇을 지적하려고?’ 단순한 지적뿐만 아니라 직설적인 표현과 불같은 성격이 상대를 더욱 놀라게 한다.

△문화유산 관리자들은 황 소장과 마주치는 것을 꺼려할 것 같다

지금은 문화유산 현장에 가면 나를 다 알아봐. 매표소부터 비상이 걸려 무선으로 연락하지‘, 황평우 왔다’고. 천천히 현장에 올라가다 보면 관리사무소 소장들이 나한테 뛰어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무서울 것 같다고? 확실히 관리들은 괴롭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관리를 잘하던가. 그놈들은 혼 좀 나야 해.

△현장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만큼 문화유산 보존 운동을 하는 데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수익원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갑갑했지. 수익 문제도 있고. 여유 있게 쓰다가‘ 어떡하나’ 싶었어. 그래도 어떻게 되더라고. 문화유산 운동이 특수한 일이다보니까 강연이나 기고, 방송 출연, 취재, 토론자,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와. 후원금도 있고. 이 수익으로 먹고 사는 거지. 전문성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거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충분해. 워낙 절약하는 성격이기도 하니까, 내가. 나름 노하우도 있어. 일이 들어와 지방에 갈 때에는 미리 가서 주변을 다 둘러봐. 출장비로 본전을 뽑는 거지. 사실 내가 좀 더 부드러운 사람이면 더 많은 청탁이 왔을 거야. 더 많이 벌었겠지? 그런데 나는 시민운동가야. 그럴 수가 없잖아. 공무원들하고 타협하는 전문가와는 달라.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지. 그렇다고 왜 걔네들하고 타협을 해? 그러지 않아도 잘 살아.

△확실히 타협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아니다’라고 생각되는 곳은 무조건 두들기더라. 언론도 이곳저곳 다 이용하고.‘ 문화유산 1인 미디어’ 수준 아닌가?

솔직해야 돼. 황평우가 하는 활동은 뒷통수 치지 않아. 그래서 기자들은 나를 믿지. 진솔하게 하고 정확한 팩트를 전달해야 돼. 덕분에 난 나만의 미디어가 없어도 모든 언론을 자유롭게, 적절히 사용하잖아. 기자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여러 언론에서 동시취재하기도 해. 대신 끊임없이 공부해야겠지. 내가 알고 있어야 말할 수 있으니까. 나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해.

△그러고 보니 최근 언론에서 ‘문화재 마피아’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문화재 마피아가 무엇인가?

실체가 나왔잖아. 현 국립대 총장,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감리단장 등등. 빙산의 일각이야. 문화재 상태를 진단하려면 전문가가 필요하잖아. 문화재위원들이나 교수들. 이 사람의 제자들이 다 공무원이나 현장 인력으로 투입돼. 거기서 조작이 이뤄지는 거지. 대충 보수하고 몇 년 뒤에 또 보수하고. 하나의 카르텔이지. 이 카르텔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그래서 젊은 마피아들이 계속해서 양산되는 거지. 우리나라 문화재 현실이야. 이게 말이 돼?

△역시 문화유산 사랑이 남다른 것 같다. 황평우가 생각하는 문화유산이란 무엇인가?

나는 단순히 문화재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야. 전반적인 우리나라 문화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지. 단지 문화재를 매개로 해서 보존운동을 할 뿐이야. 유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개념을 확대시킨 거지. 문화유산이란 게 인문학적, 역사학적, 문화적, 경관적 등 모든 것의 집합체야. 그래서 난 도로명주소도 반대하잖아. 그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게 지명이니까. 그 지명을 없애자니까 반대하는 거야.

△활동반경이 광범위하다. 지금도 많은 사안에 대해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앞으로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

사진을 공부하고 있어. 한 마디 말보다 한장의 사진이 의미를 담아내는 데 더 효과적이잖아. 흥례문을 지켜야 한다고 백날 떠들면 뭐해. 흥례문 뒤로 건물이 늘어선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게 더 명확하잖아. 그래서 최근에 사진전도 열었지. 어떻게 해서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욕망을 한 장의 사진으로 대비시키느냐. 계속 공부해야지.

"문화유산은 정치다"

황평우 소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언에서‘ 정치적인 냄새’가 풍겼다. 문화유산이‘ 명분’이 존재하는 만큼 정치에 악용될 소지가 많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문화재와 정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맞는 것 같아. 사람들이 나한테 많이들 얘기해. 왜 당신은 문화재를 진보진영의 논리로 이용하느냐고.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이용했어. 그런데 웃긴다니까. 보수진영에 있는 애들.

개중에 그나마 괜찮다는 사람이 책을 냈는데, 난 안 봐. 문화재를 정치적인 논리에 희생시키지 말라나? 무슨 소리야. 이승만, 전두환, 박정희 때부터 많은 문화재가 정치적으로 희생됐는데. 조계종 문제나 전주이씨 복원문제나 다 마찬가지야. 새마을운동도 마찬가지지. 새벽종 울리면서 우리나라 민속 문화재 대부분이 사라졌어. 그런데 박정희가 문화재를 사랑했다고? 아니야. 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어.

이런 것들을 진보운동가가 보존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어. 지금 내가 보존운동 하는 것도 정치적인 거야. 왜? 나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나쁜 기억이더라도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인거지. 그래서 일본의 잔재든 독재의 잔재든 다 보존하자는 거야.

이미 문화재는 정치와 권력의 산물이야. 문화재를 단순히 문화재로만 본다고? 누가? 세상을 그렇게 바보처럼 못 읽나? 문화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건데, 그런 소리 좀 그만하라 그래. 문화재는 정치야."

두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던 황평우 소장. 인터뷰 후에도 <한겨레신문> 기자와의 동행취재가 예정돼있었다. 기자는 인사동 고고미술품 현장으로 향하는 그들을 뒤따라가 봤다. 취재현장에서조차 작은 문화재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던 황 소장. 인사동을 한참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며 ‘이제는 자리하나 잡고 편하게 살 때도 됐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황평우 소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해맑게 대답했다. “지금이 훨씬 자유롭고 좋아”

 

 

이광영 기자  code0maize@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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