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홍희철(한국음악학 86, 졸업) 을숙도문화회관장 인터뷰
-가야금 연주자·국악 지휘자 이어 기관장
-공공기관 보신주의로 '비싼 사람'만 불러
-관객에겐 학벌보다 공연 횟수·다양성 중요

그는 이방인이다. 홍희철(한국음악학 86, 졸업) 을숙도문화회관장은 연주자와 지휘자를 거쳐 예술계 출신 최초로 부산 소재 기관장에 부임했다. 업(業)은 거문고 연주요, 낙(㦡)은 숭어 훌치기낚시인 자유로운 예술가가 ‘공무원 세계’에 떨어진 것이다. 그간 거문 현을 튕기며 정간보와 씨름하던 그는 이제 공공기관 보신주의, 예술계 학벌 카르텔과 싸우고 있다. 기관장이면 주변 눈치를 보며 체면을 차릴 법한데, 행정도 자유롭게 하는 그는 ‘저격’도 서슴지 않았다.

홍 관장은 그 자신이 임명직 공무원임에도, 공공기관식 일 처리가 싫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리모델링을 했다는 을숙도문화회관 로비조차 “동사무소 민원대기실이나 병원 같은 공공기관 분위기가 딱 싫어서 카페나 호텔처럼 했다”고 말했다. 예술인과 공무원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를 <채널PNU>가 지난 10월 21일 을숙도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10월 21일 을숙도문화회관 로비에서 만난 홍희철 관장. [전형서 전문기자]
지난 10월 21일 을숙도문화회관 로비에서 만난 홍희철 관장. [전형서 전문기자]

△전공은 거문고, 대학원은 지휘로 여러 경력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살아온 걸 돌아보니까 좀 특이하더라고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죠. 막히면 다른 길로 가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다시 개척하면서 흘러온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찾다 흘러온 인생이죠. 사람 인생은 계속 바뀌어요. 목표대로 쭉 갈 수도 있지만, 산전수전 겪다 보면 어떤 길이 있을지 모르죠.

사실 제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학 졸업이 상당히 늦었습니다. 한국음악학과, 예술대학 학생회장도 했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색깔론으로 인해 ‘몹쓸 인간’이 되기도 했고요. 그렇게 늦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제 동기들은 다 졸업해서 시립 악단 같은 곳에 취직하는데 나만 도태되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근데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교수가 되겠다는 고집이 생겼습니다. 발상이 좀 웃기는데, 내가 힘든 일을 겪은 곳에 교수가 되어 돌아가고 싶은 거죠. 그래서 대구에서 대학원에 갔고, 지휘자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악단에도 들어갔지요.

△교수가 하고 싶으셨다는 거죠.

-그렇죠. 그러려면 대학 강의를 해야 하는데, 보통 대학 강의는 교수님이 추천해서 하잖아요? 교수님께 잘 보인 제자 중 한 명한테 추천하는 식이죠. 전 그런 게 한 번도 없었어요. 난 열심히 하고 싶은데, 색깔론으로 몹쓸 인간이 되었으니까 직접 찾아가는 거죠. 명함, 논문, 지역 언론에 보도된 논문상 기사를 확대 인쇄해서 학교를 찾아갔어요. ‘내가 이런 전공인데, 모자라지만 기회 주시면 공부하는 자세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면서요.

△기회가 오지 않으니 ‘창출’하신 거네요.

-그렇죠. 남이 안 도와주면 내가 해야죠. 말하자면 영업을 한 건데, 사실 창피하고 부끄럽잖아요. 근데 그게 먹혀요. ‘저 친구 참신하네’ 하면서요. 한 곳을 뚫으면 계속 추천받아서 여기저기 갔습니다. 나는 지금도 말하고 싶어요. 그게 먹히는 세상이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일 걸요. 그렇게 동아대, 부산교대, 고신대, 경성대, 부산대, 부경대, 부산예고⋯ 내가 졸업한 학과 빼고 다 갔습니다. 옛날에 출학당하고 참 쓸쓸하고 슬펐는데. ‘그래도, 어쨌든⋯⋯.’

△어떻게 하면 되긴 된다, 이거네요.

-(파안대소하며) 하하하! 그렇네요. 좋은 말이네. 어떻게든 하면 되기는 된다. 우리 부산 사람들 그런 거 잘하잖아요. 그랬지만 교수 공채는 또 떨어지니까 중앙대로 지휘 공부를 하러 가고, 오케스트라 만들어서 활동하고, 그러다 지금까지 온 거죠. 떨어지면 또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어쨌든 실패했다는 건 도전을 많이 한 거잖아요. 지휘자를 하다가 거기서 나오게 되었을 때 새로운 자리가 나면 자존심을 굽히고 부지휘자로도 들어간 적도 있어요. 삼국지에서 한신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간 것처럼.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보이지 않은 힘이 알아주고 밀어주더라고요.

△처음에 거문고, 그다음은 지휘, 지금은 기관장. 한 가지 경력으로 끝났을 수도 있는 건데 왜 계속 바뀌었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마음 한쪽에 리더가 되고 싶은 게 있었나 봐요. 거문고 연주자를 하다 보니 한계를 느꼈어요. ‘지휘자 선생님이 왜 음악을 이렇게 해석하지? 이거 참 이상한데’ 하는 답답함. 그러다 보니 내가 지휘자에 도전하고, 지휘자를 해보니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만, 행정보단 못한 거라. 음악이 행정 앞에 힘들어지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행정의 힘을 깨달은 거죠. 그러다 보니 행정에 도전하고. 항상 답답함을 넘어서고 싶은 거죠.

△그럼 아직 답답함을 느끼는 게 있을까요.

-지휘자는 단원만 신경 쓰면 되는데, 말도 못 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신경 써야 할 영역이 넓어집니다. 요즘 ‘지역 예술인’이라는 단어를 요즘 많이 쓰죠. 왜 그럴까요. 지역 사람들이 느끼는 게, 교수든 뭐든 뭐라도 하려고 하면 중요한 자리는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서울에 있는 자기 동문들을 낙하산으로 불러 모으고. 사실 좀 피해 심리가 있어요. 나도, 선배들도 다 있더라고요.

부산대 ‘간판’이 여기 부산에서도 밀리는 현실인 겁니다. 출신 대학을 떠나서 부산 사람들은 바다가 좋고 부산이 좋아서 이렇게 사는데, 우리 부모님도, 형제도, 나도 모두 부산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고. 그런 부산 사람들이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한테 밀린다는 거죠. 지역 차별하는 ‘장난거리’에 휩쓸리기 싫어서, 부산문화회관 지휘자 경선에서 사퇴한 적도 있어요. 부산이라는 곳이 이것밖에 안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지난 2019년 부산시립예술단(무용단·국악관현악단·합창단)은 예술감독(수석지휘자) 선임 방식을 공모제에서 추천제로 바꿨다. 하지만 세 예술단에서 각각 3명씩 선발한 9명의 후보 중 지역 예술인은 홍 관장 한 명뿐이었다. 추천 위원과 후보자가 수도권 출신 학맥으로 이어져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지역 차별 문제가 대두됐다. 유일한 지역 출신 후보였던 홍 관장은 이에 항의하며 후보에서 사퇴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인재가 숨어있는데, 숨어있는 인재들 찾을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서울 사람 툭툭 데리고 오면 우리가 열심히 노력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내가 을숙도문화회관장에 3년 전에 부임하고 한 말이 그겁니다. ‘지역 예술인 찾겠다, 나도 지역 예술인이지만 이런 꼴을 보려 부산에 있었나 싶더라. 차라리 부산을 떠날 걸 하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 억울한 사람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 고요.

지금 하는 오페라 축제도 부산 출신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조금 전에 미팅하고 왔는데, 정말 고맙다는 거예요. 부산에 문화회관이 많지만, 을숙도문화회관만 지역 예술인을 찾고 있다고요.

△오히려 수도권에 대한 지나친 역차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수도권에 대해 배타적인 게 아니라, 지역에 인재가 너무 많은데 놀고 있으니 지역 출신부터 쓰자는 겁니다. 공무원들은 서울대 나온 사람을 비싼 값을 불러 데려오면 안정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서울 사람 불러놓고, (돈을) 달라는 대로 줍니다. 이름 있는 사람을 불러 성과를 낸 것처럼 인정받으니까요. 지역 출신은 안 부르거나 지나치게 싸게 부르고요.

근데 주민들이 굳이 서울대 나온 성악가를 바라는 건 아니잖아요. 학벌이 좋은 사람으로 공연 한 번 할 걸 지역 출신으로 두세 번 하는 게 낫죠. 가성비 높게 하다 보니 공연 횟수가 늘어나고 선택의 폭도 넓어지는 거라.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저 시계 2만 원짜린데 20만 원 주고 살 필요 없잖아요. 공연장들이 다 그러고 있어요. 어느 구가 1억 주고 네 번 공연한다는 데 진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이렇게밖에 못 하나. 다들 공무원 출신들이 운영하거든.

동아대 나와서 유학 다녀온 사람도 있고, 경성대 나와서 열심히 하는 실력파도 있는데. 부산 최고의 성악가도 경성대 출신인 거 아세요? 예술인들끼리도 하는 말이지만, 오페라하우스 짓는 데 서울 사람들이 우르르 부산에 ‘투하’되는 데 돈이 막 쓰이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게 조금 이상한 거죠. ‘왜 저러노?’ 그럴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주민들은 훨씬 만족한다는 거죠.

-그렇죠! 누가 그러대요, (우리만) 예산을 더 받았냐고. 근데 안 받았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비법이 뭐냐고 그럽디다. 비법은 ‘억수로’ 단순하다니까. 지역 예술인 발굴하면 되는 거야. 물론 대중성이 높은 예술인은 지역에 없죠. 장사익 씨나 유진박 씨 같은 연예인은 서울에서 모시더라도, 소프라노·테너 같은 일반 예술인들은 부산에 수준급이 많거든요. 유학파에, 부산대도 실력 있는 학교고. 지역 출신을 부르다 보니까 오히려 성과가 훨씬 많이 나서 이제 공무원 사회에서도 인정합니다. 우리가 구 단위 문화회관 중에선 공연이 제일 많고 질도 높습니다.

△인재가 있는데도 쓰지 않는 건 옳지 않다, 그 말씀이죠.

-불법이죠! 인재가 있는데도 쓰지 않는 건 불법이죠! 지금까지 지역 분들과 공연하면서 다 대박이었어요. 나는 부산 예술인들을 믿는다니까요. 직원들이 처음에 ‘관장님 좀 서울에 실력파를 데려오는 게 어떠냐’ 이런 말을 할 때, 제가 ‘지역 예술인들이 같이 했을 때 부족한 거 있으면 나한테 얼마든지 얘기해달라’며 설득했어요. 관객이 부족하건, 쇼맨십이 없건, 연주가 별로건 다 고쳐나가겠다고요. 나는 이 시장을 알다 보니까 구조적으로 지원해 지역 예술인을 살리려는 겁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게다가, 이제 갓 대학 나온 사람들은 설 자리도 없어요. 그래서 '청년 예술 공감'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니까, 갓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실적이 없잖아요. '그럼 실적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실적을 쌓노?' 내가 그런 걸 경험했으니까요. 청년을 나이별로 지원받고, 거기서 뽑아서 또 무대에 올려주고.

물론 좀 어설플 수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서 내가 그 공연 사회를 보면서, ‘을숙도 문화회관장입니다. 오늘 보실 공연은 사과로 치면 풋사과일 겁니다. 하지만 오늘 음악회는 이 젊은이들이 앞으로 큰 물로 가기 위한 음악회입니다. 조금 서툴고 어설플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합니다. 그럼 주민들도 좋아한다니까요.

 

홍희철 을숙도문회화관장 이력

▷現 을숙도문화회관장

▷부산MBC라디오 <가정음악실-홍희철의 재미있는 우리음악이야기>해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역임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역임

▷효원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역임

▷부산국악오케스트라BKO 지휘자 역임

▷경북도립국악관현악단 단원 역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졸업(관현악지휘 전공)

▷영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졸업(음악교육학 전공)

▷이태리밀라노 G.Donizetti시립음악원 오케스트라 지휘 Diploma

▷부산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부산대학교 대학원 예술경영 박사과정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예술대학 학생회장

▷부산대학교 한국음악학과 졸업 (거문고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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