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부대콘텐츠상 (웹)소설 부문 '장려상'

- 작품명 : 등대마을

- 출품자: 조민선(독어독문학, 16)

1)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혀끝에 남은 짠맛이다. 깔끔한 맛 뒤에 남는 약간의 쓴 향, 이를테면 바닷물 맛이 난다. 그러고 보니 아직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떠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다가, 눈꺼풀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눈꺼풀 너머가 차갑고 묵직하다. 그리고 이따금 흔들려오는 흐름들. 눈을 뜨지 않는다.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로 한다.

눈꺼풀 너머의 감각을 온몸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주먹을 쥐어도 무언가 이물감이 남고, 발을 휘저으면 무언가가 발가락 사이를 지나간다. 팔다리가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가슴팍 위에서 무게감이 느껴져, 심장이 박동하는 데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촉감이 신체의 말초에서부터 서서히 회복되어간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급격히 늘어난다. 혼란스럽다. 이곳이 물 안이라도 되는 걸까. 내가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 걸까?

그때, 하얀색 빛이 눈꺼풀 위를 살짝 훑고 지나갔다. 어렴풋이 나타난 빛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는 한 번, 그리고 두 번 계속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광시증인 줄 알았지만, 곧 속으로 머리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망막의 착각으로 발생하는 눈앞의 허상과는 다르다. ‘이 빛은 무언가를 뚫고서야 나에게 도달했다’는 강한 직감.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는 광원이 이 빛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었다. 계속해서 눈두덩이를 두드리는 빛이 방향성을 지닌 것임을 알게 된 순간, 눈앞이 점점 밝아오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광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와 광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게, 그에 따라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압력이 살며시 가벼워지는 게 느껴진다. 내 몸이 떠오르고 있었다.

 

몸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작은 점이었던 빛은 하늘에 뜬 태양만 한 크기가 되더니, 결국 눈가의 어둠을 모두 잡아먹어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몸이 수면에 닿았다.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경계의 감촉. 찬물에 발끝을 담가 볼 때처럼 조심스럽게 피부를 내밀어본다.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는다. 물 안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다니,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잠겨있었던 걸까. 얼굴부터 시작해 상반신을 물속에서 꺼낸다. 그제야 깊은 날숨이 토해져 나온다. 들이쉬는 숨에선 짠 내가 난다. 윗몸을 둘러싸고 있던 물들이 수면으로 도로 굴러가는 감촉을 뒤로하고, 눈 주위를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훔친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뜬다.

바다다. 내 예상대로 나는 바다에 있었다. 그것도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물들이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어둠을 품고는 출렁인다. 마치 거칠게 호흡하는 지구의 본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리고 등대. 나의 정면에는 등대 하나가 서 있다. 그 꼭대기를 중심점 삼아 돌아가는 빛줄기, 지금의 나에게는 등대가 세상을 양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색깔의 구분 없이 새까만 바다와 하늘, 그 사이의 경계면을 가로질러 비로소 구분 짓는 것이 등대 빛이었다. 갯바위에 몸을 부딪치는 검은 파도 속에서도 포말들의 하얀색만을 흡수한 듯, 등대가 여지없이 드러낸 몸은 너무나도 희었다.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심장 박동이 등대의 회전 주기에 맞아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순간 함께 박동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등대의 눈이 나를 향한 채 멈췄다.

엄청난 빛이 나에게로 쇄도했다. 빛을 막아주기에 내 눈꺼풀은 너무도 얄팍하기 그지없다. 곧 내 몸을 둘러싼 빛들 사이에선 방향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림자마저 날려버릴 강한 백색이 나를 에워싸고는 사방에서 눌러왔다. 어느새 등대는 없었다. 차라리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즈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이제껏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던 친숙한 존재가 느닷없이 사라진 느낌. 몸에서 두근거림이 결여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장이 꺼졌다. 박동이 멈췄다.

허억- 하는 소리와 함께 꿈에선 깬 내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거친 숨을 바로 하는 것도 아닌 가슴팍을 부여잡는 일이었다. 심장이 혈액을 분출하는 주기의 간격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손을 얹고는 다음 박동을 기다리고, 쿵- 하고 전해오는 진동에 마음이 놓였다. 박동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사방은 떠다니는 수증기로 가득하고, 밝은 형광등 빛이 그들에게 부딪히면서 욕실이 온통 뿌옇게 탈색되어 있었다. 수증기 속에 숨은 산소를 갈구하는 허파의 목소리만이 잠시 욕실을 메웠다. 적절한 호흡의 템포를 찾느라 헐떡이는 상반신, 욕조의 수면이 거칠게 출렁였다. 수면 아래에는 곤두선 털들이 보였다. 닭살 때문이 아니었다. 털 가락들 사이에 작은 공기 방울들이 가득 맺혀있는 것으로 보아, 욕조에 앉고는 곧바로 잠이 들은 모양이다. 다리를 쓸어내리니 이제껏 갇혀있던 기포들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제자리를 찾아간 털들과는 반대로 심장은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요즘 잠을 통 자지 못했나. 아니면 나도 모를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거나…. 지난 몇 주일을 조금 돌아보지만 뚜렷이 잡히는 일은 없다. 답답하다. 여러 달 동안의 내 일상은 따분할 정도로 일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손으로 물을 떠 담아 얼굴을 닦는다. 물이 아직 뜨거워 얼굴이 화끈하다. 다시 수면을 바라본다.

일렁이는 파문들 사이로 한 친숙한 노인의 얼굴이 얼핏 스쳤다 사라졌다. 흠칫 놀라 눈을 똑바로 뜨니 보이는 것은 수염을 깎지 않은 내 얼굴뿐. 흰머리를 골라내지 않은 노인의 얼굴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운 노인. 이장님.

회상의 욕조가 채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등대의 꿈이라는 기억 줄기, 그 흐름이 새어나갈 구멍을 이장님의 이름을 한 마개가 메워준 것이다. 상념이 차오르고 차올라 쇄골선을 건드렸다. 그 불명확한 형태 속에서 내가 불현듯 발견한 것은 1년 전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도 작은 등대가 하나 있었다. 내가 잠시나마 온전히 호흡할 수 있었던 곳, 등대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등대마을 이야기는 이렇듯 갑작스럽게 나에게 돌아왔다. 마치 동전을 찾기 위해 장롱 아래를 휘저은 빗자루에 결혼반지가 쓸려 나온 것처럼.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책상 서랍을 뒤진다. 찾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곧 두꺼운 노트 한 권이 손에 집힌다. 종이 재질의 표지에 인조 가죽을 잘라 덧댄 모습이다. 바래지도, 그렇다고 새하얗지도 않은 종이, 그 첫 장을 펴기로 한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던 회상의 방향을 반대로 한다. 노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2)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짠 내였다. 차에서 내리자 바다의 비린내가 성큼 다가왔다. 낯선 곳으로 떠난 한 달 살기, 그 첫날의 기억은 이렇듯 짭짤함에서 출발했다.

배낭을 짊어지고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등대마을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그 옆에 서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두 머리의 장승이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 떡갈나무로 보이는 진한 빛깔의 몸통에 소금기가 밴 것이, 꼭 곰팡이가 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에서 장승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어색하다거나 하는 느낌을 풍기는 것은 아니다. 명목상 세워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학교 안의 석상들이 밤새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초등학생의 직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두 대장군 장승들은 이곳에 있고,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어디엔가 솟대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리지만, 꼭대기에 갈매기 장식이 된 가로등들이 여럿 보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은 텅 빈 시간을 접어내기에 탁월하다는 걸 증명하듯, 금세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이다. 현관 오른편의 화분을 들춰 열쇠를 꺼낸 뒤 안으로 들어간다. 방은 사진으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섯 평 남짓의 작은 공간. 장롱 안에는 솜이불이 차근히 개어져 있고, 손때 묻은 보일러는 전원을 누르자마자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따뜻한 물을 뿜어낸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사실 오는 동안 조금 걱정을 하지 않았나. 비어있는 집을 마을 차원에서 잠시 빌려주는 형식이었는데 생각보다 관리가 깔끔하게 잘 되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비어있음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 사람의 손이 완전히 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다.

가져온 짐 가방만 두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는 환했던 날이 더 이상 밝지 않다. 시간이 그렇게 늦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겨울엔 역시 해가 짧다.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다.

바다를 보기 위해 나왔다. 어촌에서 바닷가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짠 내를 따라 걷다 보면 파도 소리가 들리고, 파도 소리를 더듬어가면 파도가 보인다. 그뿐이다.

부두의 감상은 ‘정말이지 정직한 곳’이다. 만의 끝자락에서 조금 더 파여 들어가 있고, 바다가 육지와 만나는 모양이 면 하나가 날아간 직사각형이다. 세 면으로 이뤄진 직사각형, 그중에서 가장 안쪽 면에는 낡은 어선들이 메어져 있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은 듯, 조타를 잡은 선장이 밖을 내다보아야 할 유리창엔 뿌연 먼지가 앉아있다. 그리고 바다와 접한 꼭짓점에는 흰 등대 하나가 서 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았을까, 해가 이불을 덮어쓰기 시작했다. 바다 위에 석양이 눕는다. 그 색 대비가 워낙 강렬해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본다. 물위에 그려진 유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만나 보라색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기도 할 테지. 파란 바다 위의 석양은 여전히 빨갛기만 하다. 그런 내 생각에 동의라도 하듯, 작은 포구에 메어진 통통배들이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곧 등대의 꼭대기가 밝아지더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정한 주기에 따라 하얀빛이 사방에 뿌려지는 광경. 발끝은 자연스럽게 그 주기를 따라 까딱이고 있었다. 운동화의 고무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연한 밤하늘이 찾아왔고, 등대의 빛이 돌아가는 경로 위에 내 몸이 있었다. 빛이 다시 한번 나를 훑고 지나가려는 찰나, 내 몸 안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 치수 작게 맞물려 있던 톱니가 올바른 크기의 것으로 교체된 것 같기도, 또 지퍼에 끼어 내려가지 않던 옷이 한순간에 탈출한 것 같기도 하다. 나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항상 따라붙었던 어지러운 이미지들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르는 고함들, 그 사이사이를 메웠던 훌쩍임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존재가 바로 등대의 빛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인데,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답답했다. 마치 화장실에 가기 위해 새벽에 깨서는 머리맡의 안경이 잡히지 않을 때처럼. 나는 그 해답을 갈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어떤 것을 얻어서 돌아올지에 대해서 전혀 정하지 않고 떠나온 여행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느끼는 이 갈증을 충족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등대를 계속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항구로 나갔다. 숙소를 나설 때의 기분과 하루하루의 날씨는 매번 달랐지만, 결국 매일 밤마다 신발을 신는 목적은 같았다. 등대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서고, 아침 해가 떠올라 등대 빛이 꺼지면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런 생활이 여러날 이어졌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아예 숙소 마당에 있던 낡은 철제 의자를 들고 가 앉았다. 그야말로 평이한 나날. 타지까지 와서 이런 짓만을 반복하는 것에 누군가는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스스로 쳇바퀴 달리기를 선택한 햄스터는 불행하지 않은 법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등대마을 어귀에서 장승을 본 것이 저번 주 월요일이고, 여느 날과 같이 의자를 끌고 와 항구에 앉아있는 오늘도 월요일이다. 온 세상에 안개가 꼈다. 등대 마을에 온 후 가장 심한 해무다. 덕분에 날이 어두워지는 것이 평소보다 늦다. 안개 방울 속에 갇힌 햇빛 조각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인가. 패딩 위로 삐져나온 얼굴이 사뭇 촉촉해졌다고 느낄 무렵, 쭉 뻗어 꼰 다리 옆으로 낯선 그림자가 보였다.

“오늘도 나왔구만.”

고개를 돌려보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항구와 숙소를 오가며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노인이다. 뻗치는 머리칼 곳곳에는 흰색 가닥들이 보이고, 얼굴은 짙게 그을렸다. 특히 이마의 피부색이 진한데, 이마 라인의 뒤편에는 색이 조금 연하다. 이마를 태울 때와 머리가 벗겨질 때 사이에 시간차가 있었던 모양이라며 혼자만의 추측을 한다.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는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내가 어색하게 구부린 허리에 노인이 고개를 마주 끄덕인다. 노인은 누가 봐도 바다 사람이었다. 등산 브랜드의 패딩 상하의와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옷 전체에 얕게 배어있는 소금기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에게 앉으라는 듯이 손짓을 하고는, 노인도 접이식 의자를 하나 펴고 앉는다. 낚시꾼들 많이 들고 다닐 법한 등받이 없는 의자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여기서 뭘 그렇게 보고 있는가? 보아하니 날마다 나오는 것 같던데.”

“아 저….”

등대를 보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요즘 내가 보내고 있는 일상이 그리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입술을 오물오물하고 있는 와중에, 채 발화되지 못한 말 사이로 노인의 목소리가 선수를 쳤다.

“등대지? 그렇지? 등대를 보고 있었지 자네.”

흠칫 놀라 돌아본다. 그러나 노인의 시선은 나를 향해있지 않았다. 노인은 허리를 숙여 양 팔꿈치를 자신의 허벅다리 위에 괸 채, 등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지난 일주일간 저 안에 있었거든.”

“등대 안에요?”

그렇지-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 등대는 유인 등대야. 그러니까 사람이 상주하는 등대라는 말이야. 자 보라고, 등대 색이 하얗지? 그래, 하얀 등대는 사람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인 게지.”

노인의 목소리는 특이했다. 힘이 있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 알게 모르게 끊어지는 것처럼 힘이 빠졌다. 그 오락 가락의 틈이 뭔가 안정감 있게 느껴졌다. 꼭 등대 빛같이 말이다. 노인은 그런 목소리로 등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덕택에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선 이 마을에는 없지만 다른 항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빨간 등대는 무인등대라는 것. 그리고 각 등대마다 고유 발광 주기가 존재한다는 것. 뱃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빛의 깜박임, 그리고 해도에 기록된 각 등대의 발광 주기를 대조하여 길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손목시계를 한번 바라본 노인은 가래 끓는 목을 다듬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플라스틱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뿜어낸다. 정면의 안개 덩어리 속에 연기가 끼어들어 갔다. 공기가 묘하게 변했다. 독한 담배 연기를 몇 차례 들이쉰 뒤, 노인의 목소리는 오히려 맑아졌다.

“그리고 우리가 저 등대를 관리하지. 마을 사람들이 일주일씩 교대로 들어간다네. 바로 어제까지가 내 순번이었고, 등대 안에 있는 내내 자네와 눈이 마주치더구만.”

눈이 마주쳤다라. 무언가 시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을 찰나, 나를 돌아본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문득 노인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딱딱해졌던 지점이 떠올랐다.

“저 그런데, 어….”

“그냥 이장님이라고 부르시게나. 뭐 지금은 이장이 아니긴 하네만.”

“네 이장님, 궁금한 게 있어서요.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거로는 등대는 공무원들이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등대지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등대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건- 하고 노인이 대답하려는데, 이제까지 침묵하던 등대의 꼭대기가 대뜸 밝아졌다. 함께 그 광경을 바라본 노인이 손목시계 위로 다시 시선을 돌리더니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 그렇게 시간 좀 지키라고 말을 해도 참. 총무가 돼서는….”

그 뒤로도 별안간 몇 가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뱉어내는 노인의 호흡이 조금 거칠어진 것이 보인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자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는 라이터 소리가 그 불편한 불규칙에 힘을 더한다. 그 와중에도 등대는 돌아가고 있었다. 등대마다 주기가 있다는 말이 기억나, 과연 저 등대는 1회전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세어보기로 한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기다렸다. 세 바퀴를 도는 데 걸린 시간이 12초니까 등대의 주기는 4초다. 빛줄기가 하늘에 새긴 문양은 매 4초마다 똑같은 형태를 하면서도 그 흔적이 남지 않았다. 되려 불러일으킨 것은 노인의 민망한 듯한 헛기침 소리였다.

“초면에 미안하게 됐네. 날이 추우니 자네도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지.”

일어서는 노인을 배웅하기 위해 엉덩이를 뗀다. 내미는 손을 마주 잡는다. 힘 있는 악수에 마디마다 굳은살들이 고여있는 것이 느껴진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라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 그대로 의자를 챙겨 떠난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눈으로 좇다가 다시 앉는다. 자, 오늘은 언제 숙소로 돌아갈까.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하다. 아직 충분히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 오래 바라본다고 해답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등대와의 눈 맞춤을 이어나가는 것. 그것뿐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새벽녘에 들어와 쓰러지듯 잠든 나는, 얼마 안 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덮어쓴 이불 안이 온통 후끈거렸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게 분명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꼼짝없이 방에 있어야 할 신세가 되었다. 벌러덩 하고 누워서는 코를 들이켠다. 어제 노인에게 들은 등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안 등대와 빨간 등대. 등대마다의 리듬. 그리고 등대지기. 이제껏 등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을지도 모른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던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고는 노트북을 켠다. 흰 포털사이트 배경에 ‘등대’를 검색한다. 그리고는 스크롤을 내린다. 오늘 밤도 길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다음 날은 하늘이 깔끔하게 개었다. 그렇게나 짙던 그저께의 해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날씨와 마찬가지로, 목욕탕 같이 뿌옇기만 했던 머리도 많이 개운해진 것이 느껴졌다. 머릿속을 뭉게뭉게 돌아다니던 잡념들은 어디로 갔을까. 해무들이 바다로 돌아갔듯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인 마음속으로 가라앉았을 것이었다.

의자를 끌고 항구에 도착하자 노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돌아보는 노인의 얼굴은 지난 만남 때 보다 훨씬 선명해져 있었다. 나와 노인, 두 사람의 얼굴 사이에 떠다니던 안개 알갱이들이 주름들을 효과적으로 가려줬던 듯하다. 노인은 내가 건넨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슬쩍 쳐다보고는 양손을 모아 뒷짐을 진다. 그 상태로 등대를 바라본다. 그 일련의 행동들이 매우 자연스러워, 마치 등대를 보기 위해서 마땅히 취해야 하는 동작들처럼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노인을 따라 뒷짐을 진다.

그리고는 침묵. 파도 소리와 바닷새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항구 끝자락을 노려보고 있는 노인의 옆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미간이 조금 구겨진다. 그걸 신호로 삼기라도 하듯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노인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고, 입가 너머로 몇 마디의 웅얼거림이 들려온다.

“그래도 늦는군.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

“네?”

잘 알아듣지 못해 반문하는 나. 노인은 그런 나를 흘긋 바라본다. 시선을 다시 등대로 돌리면서, 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등대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켜져야 하지, 그냥 얼핏 보고 날이 좀 어두워졌다고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자 생각해보게, 해가 떠오르고 지는 시간은 매일 바뀌지? 그럼 등대 점등 시간도 마찬가지야. 시간에 맞춰서 등대를 켠다. 이 얼마나 간단한 원칙인가?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보다 어려울 게 없단 말이야.”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과 똑같다는 말, 꽤나 타당한 비유다.

“그런데, 지금 점등은 5분이나 늦었어. 이런 것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무슨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건지… 쯧.”

노골적으로 악의를 드러내며 혀를 찬다. 그리고 들려오는 라이터 소리. 익숙한 담배 냄새가 옆에서 날려온다. 노인이 말하는 ‘놈’은 누구일까? 등대에 들어가는 주기가 일주일이라는 노인의 말에 따르면, 저번 만남 때와 방금의 등대 점등이 같은 사람에 의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놈’은 총무를 일컫는다는 것인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입술이 살짝 달싹거리는 것을 붙잡는다. 그 전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저 이장님, 저번에 하시던 말씀 있잖아요.”

담배를 꼬나문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노인. 폴더폰이다. 노인은 인상을 쓰고 화면을 노려보더니, 이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을 닫고는 고개를 들었다. 손으로 담배를 옮겨 쥐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말하는 건가?”

“저번에 등대 이야기를 좀 해주셨잖아요, 기억하시나요?”

노인이 잠시 생각하는 듯 흰자위를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마른 침이 난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그때 말씀을 되게 재밌게 듣고 있다가 끊겨서 좀 아쉬웠거든요. 등대지기 이야기를 하고 계셨었는데.”

“…그랬었지.”

“혹시 이어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등대를 관리하게 됐는지요.”

잠시 뒷짐을 지고 있던 노인이 의자를 편다. 나도 마찬가지로 가져온 의자를 자리에 놓는다. 저번의 만남 때와는 반대의 위치다. 나의 오른편에 있었던 노인은 지금 내 왼편에서 담배 연기를 뿜고 있다. 위에서 갈매기가 운다. 나와 노인 사이에서는 짠 바닷내가 난다. 그리고 정면에는 바다가 있다. 파도가 밤빛을 품고는 검게 출렁이더니 방파제에 몸을 부딪힌다. 물살의 흔적을 남기고는 물러서고, 조금 이따가 다시 부딪혀온다. 흰 시멘트가 파도의 색으로 젖어간다. 그 무모한 모습이, 꼭 파도가 자살이라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등대 빛이 10바퀴 정도 원을 그었을까, 노인이 입을 열었다.

“명태 때문이지.”

그 아리송한 단어를 뱉고 노인은 다시 침묵의 바다로 가라앉았다. 노인의 입이 다시 열리기까지 등대 빛은 5바퀴 정도를 더 돌았다.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명태가 떠났기 때문이야. 우리 마을, 그러니까 등대 마을은 본래 명태를 잡던 곳이었다네. 나의 증조부 때부터 쭉 그래왔어. 청년들이 명태잡이를 떠나고, 그 청년들이 늙어서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경험을 물려줬지.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곳에도 명태를 말리고 분류하는 판이 꽤나 크게 벌려졌었다네.”

항구를 주욱 훑어가는 노인의 손길을 따라가 보니, 과연 바닥에 큰 나사들이 여럿 박혀 있었다. 그들을 꼭짓점 삼아 선을 긋자 직사각형 평상 모양이 그려졌다.

“그렇게 몇 세대를 살아왔네.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마을 같아 보이지만 예전에는 그 규모도 훨씬 컸다네. 적어도 지금보다는 말이지. 난로 기름을 산답시고 차를 타고 나갈 필요는 없었단 걸세. 그리고 우리의 그런 공동체는 명태로 이루고 쌓아왔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그놈들이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게 됐어.”

고개를 위로 꺾고는 한숨을 터트리는 노인. 담배 연기 섞인 입김이 밤하늘로 퍼져나갔다. 그 위로 등대 빛이 한번 지나갔다. 노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바닷물이 뜨거워졌다나 뭐라나. 명태잡이로 생계를 꾸려오던 마을에서 더 이상 명태를 잡을 수 없게 됐다니. 그 뒤로는 어떻게 됐을지 뭐 뻔하지 않나. 줄기가 끊어진 귤처럼 그렇게 떨어져 내린 게지. 잡을 물고기가 사라진 어부들은 배를 놔두고 마을을 떠났네. 남은 건 나 같이 미련한 늙은이들 몇 명이 끝이야. 할 줄 아는 거라곤 명태잡이밖에 없는데 마을 밖으로 나가서 뭘 하겠나.”

노인의 얼굴에 쓴 웃음이 떠올랐다. 잡을 물고기가 사라진 어촌이라. 등대를 관리할 공무원조차 떠난 것일까.

“이야기가 조금 샜구만. 다시 돌아와서, 왜 우리가 등대를 관리하느냐고 물었지?”

“네.”

“불필요한 행정력 소요라고 판단했다더군. 어부들이 떠난 항구에선 배가 출항하지 않는 법이거든. 자네도 보았겠지만 여기 떠 있는 배들은 더 이상 바다에 나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네. 사실 배라고 부르기도 뭣 허지. 띄워놓고 떠났으니 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런 곳에 등대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하지만 유인 등대를 하루아침에 무인으로 바꿀 수도 없는 법이지 않은가. 그냥 빨갛게 색칠하면 되는 거지 않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더구먼. 통상적인 관리는 우리에게 맡기고 자기네들은 달에 한번 점검을 나와. 공무원들 사이에선 나름 가장 손을 덜 쓰고 처리한 거지.”

그 말을 듣고, 빨간 등대가 항구 끝에 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저 등대는 하얀 등대로 존재해야 한다. 빨갛게 물들어서는 안 된다. 그때 노인이 나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빛에 놀라 들숨의 흐름이 한번 끊긴다. 강렬했고, 또 이글거렸다. 과연 평생토록 바다를 쏘아본 이의 눈다웠다. 노인이 그런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물결 위에 반짝이는 햇볕의 파편들, 그 속에서 물고기의 발자국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지.”

“네 여쭤보세요.”

“자네는 저 등대 어디가 좋다고 매일 밤마다 이러는 건가?”

“(…)”

나는 여기서 왜 등대를 보고 앉아있는가. 내가 저 등대에 대해서, 또 그 등대가 몸담고 있는 이 마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매우 적지 않나.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다고나 할까. 첫눈에 반한 상대를 떠올리는 앳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마주치고 싶다는 생각. 눈을 마주쳤을 때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

“글쎄요, 정말 설명드리기가 어렵긴 한데… 그냥 보고 있으면 좋네요.”

허허-. 내 말을 들은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한 이유구만. 나도 그렇다네. 보고 있으면 좋거든. 사실 내가 여태껏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저놈 때문이라네. 자꾸 미련이 남아. 나를 부르는 것 같다고.”

등대가 부른다라. 어쩌면 나도 어떤 부름에 이끌려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가 떠나온 곳과의 거리가 객관적으로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등대 빛의 도달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까닭일까.

“명태는 돌아올 거야.”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장님께서는 명태가 돌아오실 거라고 믿으시나요?”

노인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 잠시 틈을 두더니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 터져 나온 문장은 이전보다 훨씬 강하고 간결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꺼낸 말이 곧 스스로의 근거라는 듯이. 노인의 얼굴이 강경한 빛을 띠었다.

“명태는 돌아올 걸세. 그리고 그놈들을 불러올 것이 바로 저 등대지. 아무리 생선눈깔이라고 하더라도 저 빛은 절대 지나칠 수 없거든. 저 빛은 특별해. 자네도 보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등대 빛을 따라온 명태가 마을을 다시 일으켜 줄 거야.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된단 말일세. 암 그렇고 말고.”

그 말의 여운은 노인이 떠난 후에도 항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한 확신이 지니는 힘이라고나 할까. 웅웅거리는 듯한 울림이 파도 소리 사이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고개 위로는 여지없이 등대의 빛줄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등대야 등대야. 네가 지금 부르고 있는 것이 무엇이니. 대화를 나눠볼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걸어본 말에 등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질문은 그대로 공기 중에 흩뿌려지고, 등대는 여전히 4초 주기로 박동하고 있을 뿐이다.

일상이 반복되었다. 반복되는 성질을 띠기에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이지만, 내가 요즘 살고 있는 나날은 그 반복성이 유독 강했다. 내가 이제껏 이토록 규칙적인 생활을 했던 것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항구로 나간다. 항구에 앉아있자면 마을 안 편에서 알아듣지 못할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을의 일이다. 나의 일상과 마을의 일상은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가끔 마주치는 노인과는 여전히 대화를 나눈다. 다만 등대와 명태는 대화 속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주로 노인이 옛이야기를 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한번은 항구에 메인 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용석, 성규, 성재…. 보이나? 배들에 이름이 적혀있지? 예전엔, 그러니까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 이름들이 외쳐지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 어부들이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배 이름으로 새겨놓은 걸세.”

그럼 저 배들 사이에 이장님의 이름도 있는 것이냐고. 질문을 꺼내다가 말고 목 안으로 삼켰던 기억이 난다. 왠지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본래 노인의 이름 위에 다른 이름이 덧칠되었거나, 혹은 노인이 직접 끌어내어 해체 해버렸다거나…. 배들은 떠난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절을 하기 전에 봉분 앞에 손을 모으고 묘비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을에 남은 몇몇 사람들은 배의 이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할 터였다.

그렇게 오늘도 항구에 앉았다. 어느덧 한번 더 지나가 버린 일주일을 되새기면서, 발 앞에서 위아래로 울렁이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그림자를 찾았다. 작은 그림자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늘도 노인과 대화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반가움이 일었다.

“(…)”

“안녕하세요?”

하지만 뒤를 돌아본 내가 눈을 마주한 이는 노인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이는 나와 노인 사이 정도 될까. 40대 초반처럼 보이기도 하다가도, 웃음이 서서히 사그라들자 50대의 표정이 나타났다. 머리가 새까만 것이 노인의 흰 머리와는 사뭇 대비 됐다. 하지만 인위적인 검정이라는 것이 티가 났다. 얼굴의 나이와 머리의 나이가 지나치게 엇갈려 어색함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가르마가 6대 4라는 것도 거기에 한몫했다. 어쩐지 종 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때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내가 여태껏 앉은 채 올려다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손을 맞잡는다.

“죄송합니다. 조금 당황을 해서요.”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 예의 그 웃음이 다시 나타났다. 어딘가 도회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눈은 가만히 둔 채 입꼬리만 올리는 데에 익숙한 사람의 웃음이다. 형식적인 악수를 마치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김총무입니다.”

총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노인의 입에서 나온 ‘놈’이었다. 등대 점등에 늦는 사람, 그런 주제에 청사진을 제시하려는 사람. 여러모로 노인에게 미운털이 박힌 듯싶은 인물이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생각을 품는 것은 옳지 않다. 노인에게 전달받은 총무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그 안개를 날려버리려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총무가 잠시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바람에. 갑자기 일어나 조금 어지러웠다고 얼버무린다.

“이런, 제가 너무 갑자기 일으켜 세운 모양이에요. 괜찮으십니까?”

“이제 좀 괜찮습니다.”

“네에. 저, 마을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매일 여기를 찾으신다고요. 얼마 전에 숙소 잡고 오신 분 맞죠?”

내가 매일 여길 나온다는 게 아무래도 마을 안에서 소문이 난 모양이다. 맞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다는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지요. 이해합니다. 저도 이 광경에 끌려서 여기로 터를 옮겼으니까요.”

나의 짐작이 맞았다. 총무가 풍기는 냄새는 이런 어촌의 것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시멘트의 색감이라고나 할까. 총무가 앞으로 조금 나와 나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는, 항구 너머로 보이는 작은 바다를 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몇 차례 큰 호흡을 내쉬었다. 얼굴을 볼 수 없지만, 필시 눈을 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순히 바다를 감상하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용할 줄 알아야죠. 보세요. 이 마을에서 바다가 가지는 의미가 뭡니까? 예전에 명태가 살았던 곳? 과거에 마을 사람들이 몸담았던 삶의 터전? 아 물론 좋죠. 명태도 좋고, 삶의 터전도 좋다 이 말이에요. 제가 궁금한 건, 지금의 의미에 왜 예전과 과거의 모습을 들이미냐는 거에요.”

총무의 등이 크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큰 호흡이 더욱 거칠어졌다. 바닷바람에 총무가 흘리는 흥분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날아왔다. 총무가 돌연 뒤를 돌아보더니 씨익 하고는 웃었다.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그 번들거리는 눈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총무가 허리를 굽혀 골프화의 끈을 매만진다. 몸을 크게 숙이자 향수 냄새가 떠오른다. 총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주말에 마을 회관에서 회의가 있습니다. 오시면 제 계획을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한번 오시겠습니까? 오셔서 외지인의 감상을 말씀해주시지요.”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총무는 작별 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뜸 들이미는 악수를 거절하지 못한 채, 할 말만 하고 떠나는 총무의 뒷모습을 좇았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총무가 남기고 간 흥분의 페로몬이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등대를 바라본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바라본 등대의 꼭대기에는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등대도 물론 회전하지 않는다. 갈비뼈를 박차기 시작한 심장만 그 박동에 가속도를 붙여나갈 뿐이었다.

주말까지 얼마간 남아있던 날들은 철부지 아이에게 맡긴 카라멜의 행방처럼 묘연하게 사라졌다. 하나씩 하나씩 착실하게 지나가더니 일요일이 되었고, 나는 어느샌가 마을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은 숙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한 작은 건물을 향해 걸음을 조금 빨리 하고, 이내 회관의 미닫이문 앞에 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와 있었던 이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이들이 다섯 명. 그보다 머리가 검은 사람들이 네 명. 내가 늦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바라본 시계에는 아직 5분의 여유가 있다. 실내의 중앙에는 원통형 전기난로가 있고, 식당 대기 손님을 위해 내어놓을 것 같이 생긴 접이식 의자들이 난로를 빙 둘러싸고 있다. 난로를 켠 지는 꽤 되었는지, 난로 열이 의자에 앉아있는 이들의 무릎에 주황빛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고, 게 중에서 노인의 것을 발견한다. 언제나 그랬듯 강렬한 눈빛. 노인은 늘상 입던 차림을 한 채 접이식 의자에 구겨 앉아있었다. 반가움의 표시를 하려는 찰나, 나를 향하던 강렬함은 얼른 본래 위치를 찾아 돌아갔다. 그 덕에 무안함을 품고 빈자리를 찾아 앉는다.

정돈되어 있던 공기 속에 낯선 이가 들여온 어수선함이 점차 사그라든다. 그리고 다시금 찾아온 침묵. 누군가가 구두 끝을 맞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거기에 응하듯 패딩 바지가 사부작댄다. 그런 산발적인 백색소음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마치 냉전 중인 남녀 사이에 앉아 밥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10분 남짓이 흐른 뒤, 회관 문이 열리고 김총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구 다들 와 계셨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전한 6대 4 가르마와 골프화 차림으로, 그는 입구에 서서 잠시간 실내를 눈으로 훑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총무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동공이 기묘한 빛을 띠었다. 전에 본 적이 있던 눈빛이다. 흥분에 젖은 번들거림…. 그가 하나 남은 의자에 앉자, 나와 총무는 난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모양새가 됐다.

“(…)”

웃고 있는 총무의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실내에는 점차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돌아본 노인의 옆얼굴이 딱딱했다. 주황색 난로 빛이 노인의 얼굴을, 동공을 가득 메운다. 총무는 그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고는 큰 호흡을 한번 내쉰다.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하는 공기 속에 총무의 향수 냄새가 섞여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

짝-.

총무가 양손을 한번 맞부딪히고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회의를 시작해볼까요?”

노인의 눈이 점점 더 주황색으로 변해가고, 총무의 웃음은 더욱 진해진다. 벽시계에서는 초침의 달리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좋지 않은 예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선 불안한 감정이 치민다. 나와 총무의 눈이 마주치고, 난로에서 아지렁이가 피어올라 둘 사이의 공기를 일렁인다. 그리고 아지랑이를 따라 흔들리는 총무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순간, 나는 헉-하는 숨을 들이켤 수 밖에 없었다.

3)

주위가 시끄럽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있고, 누군가는 곧 흘릴 눈물을 모으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마구 일그러진 감정들이 공기를 울리는 탓에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힘들다. 격랑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가 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소각로 안으로 들어간 관이 곧 주황색 불꽃으로 가득 휩싸인다. 그 불빛은 나로 하여금 한 노인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마을 회관에서 보았던 주황빛의 시선. 그때 마을 회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며칠 전 나는 마을 회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을 권유 받았더랬다. 등대의 처분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는데,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리에 얼굴을 비쳤던 것은 다름 아니라 총무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등대마을이 어떠한 세력들로 인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보다 자세하게 눈치 챌 수 있었다. 등대를 지키고자 하는 노인들, 등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자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곳에 눈치 없이 낑겨 앉은 외지인 한 명. 나.

회의는 줄곧 험악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내 눈에는 적어도, 그 회의가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고민하는 곳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총무는 계속해서 등대를 철거하자고 주장했고, 노인은 ‘철거’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강한 헛기침을 내뱉으며 담뱃갑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차마 밀폐된 곳에서까지 피워대기에는 뭣한 듯했다. 총무가 구체적인 철거안을 제시하고 노인이 거부한다. 그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파도와 갯바위의 싸움 같았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각각이 파도 뒤의 바다와 갯바위 너머의 모래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자리만 지키고 앉아서는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지나가는 갈매기 정도였을까?

의미 없는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을 무렵, 언뜻 총무가 답답한 듯한 목소리로 노인을 불렀다.

“…이장님.”

노인이 담담하게 고개를 들어 총무를 바라본다. 하지만 총무가 바랐던 것은 눈길이 아닌 대답이었던 듯하다.

“이장님!”

“듣고 있네.”

“저 정말 궁금한 것이 있는데 말이지요.”

총무가 잠시 뜸을 들이는 듯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노인과의 시선 교환이 얼마간 이뤄진 뒤,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말 궁금하기라도 한 듯, 고개까지 갸웃거리면서.

“저 등대가 마을에 꼭 있어야 할 별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질문이 대화의 결을 깨고는 갑작스럽게 원론적인 부분을 찌르는 바람에, 마을 회관에 좁게 들어찬 공기가 다시금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따라 노인의 눈가 또한 일그러졌다. 그 불편함이 모두에게 닿았는지, 노인이 입을 열기까지의 공백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우리들 사이의 전기난로만이 조용함을 메우려는 듯 웅웅거리며 작은 소리를 내었을 뿐이다. 노인의 대답이 이어졌다.

“…이 마을이 등대마을이기 때문이지.”

“그럼 이름을 바꾸면 되겠군요?”

노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총무가 되물었다. 그 틈이 워낙 짧아서, 마치 그가 노인의 말꼬리를 잡아먹기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네. 사람 이름도 그렇게 쉽게는….”

“사람 이름도 요즘에는 얼마나 쉽게 바꾸는데요 이장님.”

이번에는 확실히 말꼬리를 삼켰다. 노인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지금 총무의 태도에는 깊은 무례가 배어있었다. 노인의 심기가 어떨지 조금 살피는 와중에, 옆얼굴로 총무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장님, 조금 더 인과적으로, 음… 그러니까 선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전에, 요즘 누가 그렇게 이름에 의미를 둔단 말입니까? 다 쓸데없는 거예요. 그걸 아니까 요즘 사람들도 이름 바꾸는데 거부감이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이 알맹이라구요. 알맹이.”

총무가 자신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다시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등대가 있어서 등대마을. 그건 좋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네,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그게 등대를 철거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구요. 등대가 있어서 등대마을이라고 이름 붙였으면, 등대가 없어진 마을은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면 그만 아닐는지…?”

총무와 노인 사이의 시선이 점차 날카로워져 간다. 전기난로가 피워올리는 아지랑이가 조금 더 커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렇게 잠시, 총무가 먼저 눈을 떼고는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일단 한발 물러서는 건가.

뒤이어 총무는 자신이 구상한 등대 철거 계획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우리 마을에는 낭비되고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많고, 그중에서도 등대가 있는 방파제의 끝부분이 가장 그렇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만약’ 등대를 철거할 수 있다면, 그 부분 바깥으로 뻗어있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생태 탐방 코스와 같은 관광지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도를 통해 반등을 이룬 어촌 마을들에 대한 예시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지금 등대를 관리하는데 지나친 시간과 인력을 허비하고 있다는 점도 빼먹지 않았다.

확실히 준비를 많이 해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논리는 논리대로 꽤 완성되어있었거니와, 총무 자신도 말을 해가면서 점점 스스로에 심취해가는 듯했다. 그 증거로는 그 특유의 눈빛이 점차 기묘해졌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 반면에 노인은… 어딘가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총무가 연이어 내뱉는 ‘철거’라는 단어에도 더 이상 반응을 내보이지 않는다. 쥐고 있는 담뱃갑 위에 손가락을 얹고는 주기적으로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꼭 바다 아래에 가라앉아 등딱지 속으로 몸을 움츠린 거북이 같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노인처럼 생각에 잠긴 거북이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노인 측, 그러니까 이장님과 다른 노인들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내가 회의의 흐름을 완전히 놓쳤다고 생각이 될 무렵, 그제야 총무가 내뱉는 단어가 들려왔다.

“…반대는 이장님 포함한 다섯 명이군요. 그렇다면 이번엔 찬성하시는 분들이 손을 들어주시죠.”

이번에는 총무 자신을 포함한 다섯 젊은이들이 손을 들었다. 찬성과 반대가 5대 5로 나뉘었다. 이들의 수적 균형에 따라 등대가 남아있을 수 있었구나- 하는 찰나,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 순간 총무가 나를 이 회의에 부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내가 참석한 회차에 장황한 브리핑을 진행한 이유도. 아마 그간 굳어져 왔던 찬반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균열을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광적인 총무의 눈빛, 그리고 뜨거운 노인의 시선. 나는 그들 누구에게도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가운데에 놓인 전기난로를 선택했다.

“저는… 기권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나.

나의 대답과 함께,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던 회의는 이내 마무리되었다. 젊은이와 노인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몇몇 사이에서는 악수가 오갔다. 하지만 물론, 총무와 이장님은 서로 간에 아무런 겉치레를 치르지 않았다. 노인은 회의가 끝났다는 총무의 말에 흘끗하고 쳐다보는 것을 끝으로, 가장 먼저 회관을 빠져나갔다. 내가 그 뒤를 이어 빠르게 발을 옮겼다.

밖으로 나오니 주위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꺼져있던 가로등에는 환한 불이 들어와 있었다. 공기도 오늘따라 몹시 찼다. 따뜻한 전기난로를 쬐고 있던 얼굴이 찬 공기를 맞고는 땡땡하게 펴지는 바람에 약간의 팽창감이 느껴진다. 먼저 나간 노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와중에, 익숙한 담배 향이 코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마을회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심겨진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를 향해 걸어가며 길을 건너는 중, 문득 그의 뒷모습이 유난히 작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노인이 지금 작게 느껴지는 것이 실제로 그가 거북이처럼 쪼그라들어서인지, 아니면 회관에서의 일 때문에 내가 그를 다르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노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마을의 전경이 발아래에 계단식으로 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을 회관이 마을의 꼭대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밑의 계층에는 곽씨 성을 지닌 노인이, 그 아래 칸에는 김씨 성의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며칠간 파악할 수 있었다. 검게 물든 골목들에 양초처럼 불을 내뿜는 가로등들, 저 멀리서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등대 빛과 그 궤적에 따라 언뜻 비치는 작은 만의 형태도 보인다. 여기서 바라보는 등대마을도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노인의 옆에 엉덩이를 깐다.

“여기 계셨어요.”

“(…)”

노인은 나를 흘긋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린다. 허벅다리에 양 팔꿈치를 괸 채,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푸흐-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뱉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모금. 지금의 노인은 마치 담배에 모든 집중을 기하고 있는 듯했다. 담배 연기를 속 안에다가 들이부어서는, 안에서 끓어오르는 물이든 불이든 간에를 가려버리는 것 일지도. 그의 발밑에는 이미 두어 개의 꽁초가 짓이겨져 있었다. 노인이 가래 끓는 목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못난 꼴을 보여줬구먼.”

“예? 아, 아니에요 이장님.”

잠시간의 침묵. 멀리 보이는 등대가 4초 주기로 두 바퀴를 돌았다.

“…마을의 상황이 이렇다네. 회의가 열리면 매번 이런 식이야.”

노인의 가라앉음에 나는 아무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옆에서 바라본 노인의 눈에서 주홍빛이 꺼졌다는 사실이 유독 슬프게 느껴졌다. 노인의 눈동자 안에서는 등대 빛이 몽롱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 몽롱함을 조금 품은 목소리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봤나?”

“아뇨, 그런 기억은 없네요.”

“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웃길 수는 있겠네만, 난 꽤 많이 나가봤다고 자신할 수 있다네. 뱃사람으로 살아왔으니 당연한 말이지.”

노인이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몸속에 욱여넣은 니코틴이 벌써 용해되기라도 한 듯.

“뱃사람이라면 아무렴 밤바다의 무서움을 가슴 속에 품게 되기 마련이네. 명태를 잡느라 정신이 팔리다 보면 가끔씩 시간을 놓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순식간에 주위가 어두워지곤 하는 거야.”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부딪힐 곳이 없어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물의 위압감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노인의 옆얼굴이 잠깐 화색을 띠었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짐작건대, 명태에 대해 떠올린 탓인 듯했다. 그러다 깜빡. 노인의 상상에 따라 잠겨 들어가는 나를 마을 아래의 등대 빛이 끌어 올린다. 노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럴 때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거멓기만 하지, 고약한 이무기가 나를 검은 몸으로 칭칭 감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나는 이미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게 아닐까. 시커먼 바닷물이 나를 삼켜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네. 그때 깜박이는 등대 빛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끓어오르는 감정을 살피려는 듯 노인이 한숨을 한차례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놈이 나를 두어 번은 더 구해줬을 거야. 침몰하는 나를 끌어올려준 것이겠지. 그런데 요즘은 참 이상해졌어.”

“어떤 게 말인가요?”

노인이 얼마간 너털웃음을 털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요새는 저놈이 우리를, 마을 사람들을 갈라놓는 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뭐 그렇다고 저 등대가 못된 놈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노인은 못된 놈은 따로 있지- 하고는 말을 얼버무렸다. 총무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옆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져, 함께 허리를 펴고는 작게 기지개를 켠다. 노인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한다. 언제나와 같이 굳센 악력이 전해져온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월요일이다. 월요일에는 등대의 순번이 바뀐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내일이면 다시 등대에 들어갈 차례구만. 내 그동안 생각 정리를 조금 더 하고 있겠네. 다녀와서 마저 이야기 나누지.”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대로 돌아 걸어가는 노인을 뒤로하고 다시금 벤치에 앉는다. 멀리서는 등대가 깜박인다. 가로등의 주홍 불빛들 속에 앉아 흰색 빛을 바라본다. 저기서는 내가 보일까 싶어 괜스레 팔을 들어 보이지만, 흔들고 싶은 마음은 참는다. 오늘은 바람이 꽤나 거칠다. 밤이 되며 바람의 방향이 바뀐 듯, 바람이 머리 뒤편에서 불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즐겨 태우는 담배 향은 여전히 내 주위를 떠돈다. 그가 남기고 떠난 꽁초들에서 피어오르는 걸까. 그 담배 향은 얼마 후 내가 숙소로 향했을 때까지 무겁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향냄새 가득한 곳에서 노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있다. 

노인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고 난 바로 다음 날,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미 마을 바깥에서 장례식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내가 여길 가도 되나?’였으니,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항구로 향하는 길에 가끔 마주치던, 회의 때도 뵈었던 마을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사인은 익사라고 했다. 나와의 대화 이후에 댁으로 바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르신이 향을 올리고 나오는 길에 나를 붙잡고는 입을 열었다.

“항구에서 술 한잔을 하신 모양일세, 아무래도 회의 이후에 마음이 심란하셨던 게지.”

“…술을 많이 드셨던 건가요?”

“그런 것 같다더군. 항구 어귀에 붙어있는 CCTV에 이장님이 잡혔어. 의자를 펴고 앉아서 술을 마시는 모습 말이지. 그렇게 두어 병을 비우다가….”

우리 사이로 한 검은 정장 무리가 지나가는 바람에, 나와 어르신은 잠시 서로에게서 물러섰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리 안에는 김총무도 있었다. 마을 어르신도 그를 발견한 듯했다. 정장 무리가 향을 올리는 것을 확인한 어르신께서는 조금 망설이시는 것 같더니, 이내 체념한 듯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자네의 짐작과 같이, 이 일은 이장님이 항구에서 발을 헛디뎌서 일어난 일일세. 그런데 CCTV에 잡힌 이장님 모습이 조금… 이상해. 그래서 마을 분위기도 이상하게 돌아가는 중이고.”

“이상하다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이장님께서 꼭 등대 불빛에 홀린 것 같았단 말일세.”

당시 상황에 대한 어르신의 설명을 들으며, 머리 한 구석에서 마치 장면 하나가 몽롱하게 재생되는 듯 했다. 

항구에 자리를 펴고 앉은 이장님과 맞은편의 등대가 함께 놓여있는 구도 속에서, 노인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등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등대가 돌아가며 하얀 빛을 뿌려대는 동안, 노인의 발치에 놓인 술병들은 자꾸만 비워져 갔다. 어쩌면 그 속에 든 것은 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노인은 마치 ‘어떠한 감정’들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추억 한 병을 들이키고는 고개를 젖혀 웃었고, 허벅지 사이로 상반신을 숙인 채 한참을 있었을 때에는 아마 슬픔 한 병을 비웠을 것이었다. 그러다 멈칫, 등산복 차림의 노인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멈춰선 노인, 그를 움직인 것은 등대 빛이었다. 하얀빛이 그의 머리 위의 공간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노인이 걷는다. 언젠가 노인이 말해준 뱃사람의 기억처럼, 그는 바다 한 가운데 남겨진 통통배의 선장이 된 듯 등대 빛에 의존해 걸음을 내디딘다. 등대를 향해서 한 발짝. 그리고 다시 한 발짝. 그렇게 마지막 걸음을 향해 내딛다가, 노인이 방파제 아래로 사라졌다. 언제 끼었는지 모를 해무 속에서, 노인은 방파제에 부딪혀오는 파도소리가 되어 모습을 감췄다. 

“그러게 안주라도 같이 잡수셨어야 했는데. 허… 술도 얼마 못하는 양반이.”

“(…)”

눈시울을 붉히는 어르신과 목례를 하고, 나는 다시 혼자 남게 되었다. 발인까지의 3일 동안에도 나는 혼자였다. 영정사진 속의 노인만이 굳은 표정을 한 채 나와 눈을 마주쳐주었다. 다만 노인의 눈동자는 자신 앞에서 절을 올리는 모두의 눈을 초점 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거기서 본래의 뜨거운 열기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불꽃이 마지막으로 식은 곳이 차가운 바다속이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마음에 밟히는 것은 왜일까.

입관까지를 지켜본 뒤, 어둑한 시간이 되어서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등대도 회전을 시작했다. 오늘은 원래라면 노인이 등대 안을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항구 안에 묶인 배들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흔들린다. 언젠가 떠난 자들을 위한 존재들이라고 여겼던 통통배들. 뱃머리에 적힌 이름들을 다시 한번 주욱 읽어본다. 그러나 그사이에 노인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노인 역시 다른 의미로 ‘떠난 사람’이 되었지만, 그를 떠올릴 수 있는 물체는 어디에도 없다. 그의 영혼은 겨울 바다 밑에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눈에서 볼까지의 일직선에 어떠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손으로 훔치려 들지만, 언젠가 흘렀던 눈물 줄기는 어느새 바닷바람에 날려가 버린 뒤였다. 문득 등대의 박동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 나는 왜 이토록 등대 빛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조언해줄 사람마저 떠나갔지만, 등대는 여전히 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마을 회의가 다음 날에 재차 열렸고, 그 결과는 등대를 철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찬성 쪽으로 많은 표가 움직였다는 것으로 보아, 노인의 죽음이 반대 측에게 큰 타격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등대 철거 반대에 손을 들던 다른 노인들 또한 등대보다는 이장님에게 찬성표를 던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지금, 노인이 떠났다. 구심점을 잃은 원반은 한순간에 손을 떠나기 마련이지 않나.

그리고 뒷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총무 일행이 지자체로 나가 등대 철거 인가를 받아냈다. 그래도 등대 같은 공용 건축물, 그러니까 나라가 지은 건물에 쉽게 철거 인가가 내려지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헛된 것이었다. 느지막한 오후에 마을을 나선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허가증 몇 장을 들고는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전부터 착실하게 연줄을 이어왔던 것 같다는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철거는 한 주가 끝나기 전에, 그러니까 본래 노인이 등대 안에서 보냈어야 했을 시간이 다 지나기도 전에 시작되었다. 먼저 등대를 둘러보기 위한 사람들이 왔다. 노을이 지고 있을 무렵 도착한 그들은 점프슈트 형태의 작업복을 입은 채 차에서 내렸는데, 등대 곁에 닿기 전에 노란색 안전모를 꺼내쓰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단순한 ‘작업’을 하러 온 것이다. 등대를 허물어뜨리기 위한 작업. 하나의 박동을 꺼뜨리려는 작업 말이다. 여러 장비들로 온갖 치수를 재는 안전모들. 그들의 얼굴에서는 일체의 감정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의 상징물을 걷어 없애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라든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슬픔이라든지…. 그들은 피곤함에 찌든 의사의 얼굴로 등대의 사망 일시를 기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무표정은 언젠가부터 그들 곁에 서 있던 총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왜 기뻐하고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바라왔던 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실행되고 있지 않았나. 평소에 보아왔던 그의 성격에는 조금 더 눈에 띄는 감정 변화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나도 이상한 장면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등대의 모든 마지막 박동들을 기억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으므로, 이물감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등대가 꺼졌다.

물론 등대는 매일매일 꺼진다.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 켜지고 밤이 물러갈 때 꺼진다. 해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아 있을 때 바다를 밝히는 게 등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의 꺼짐은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밤 동안의 피로를 몰아내기 위한 휴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기 시작하는 노을에 맞추어 막 돌아가던 등대 빛은, 4초 주기를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멈췄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멈춘 것처럼, 혹은 병든 이가 뱉은 마지막 숨결처럼, 등대의 마지막에는 죽음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오늘 밤이 물러가고 내일의 노을이 찾아오더라도, 등대가 다시 박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늘상 앉던 방파제 위에서 등대의 마지막을 똑똑히 지켜보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는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때면 의자를 들고 해변을 찾았다. 좁아터진 방 안에서 낡은 보일러 소리만 듣고 있으니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답답함을 피해 바깥에 나선 나를 해변으로 이끈 건 역시 등대에 대한 미련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지금까지 머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껏 머물면서 해 온 것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등대를 바라보다 불현듯 느꼈던 따뜻한 감정, 그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철제 의자의 촉감을 등받이를 통해 느끼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역시나. 하늘이 까만 별 이불을 목 끝까지 덮었는데도 등대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 주위를 밝혀주는 것은 등 뒤로 어렴풋이 느껴지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뿐이었다. 문득 몸을 돌리고는 가로등과 사랑에 빠진 날벌레가 몇 마리나 될까 세어보던 참이었는데, 해안가에 산책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내 귀에도 들릴 만큼 격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서는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총무가 돌연 모습을 감췄다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제가 들은 게 모두 정말인가요?”

“누구….”

그들은 중장년 남녀였는데, 여성분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한다. 나도 내가 지금 무례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질문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남자 쪽은 나와 오다가다 안면을 튼 적이 있다. 그분께서 ‘그 있잖아, 매일 여기 나와서 앉아있는 도시 청년’이라며 나를 소개한다. 아직 인상이 모두 펴지지 않은 아주머니는 잠시 뒤로 물러나고, 아저씨가 대신 입을 연다.

“어떤 질문을 하시는 건가요?”

“총무 이야기하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김총무 말이에요.”

“아 맞아요. 김총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총무를 언급하자 아주머니의 미간에 골이 세로로 깊어진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서로 마주 보고는 한숨을 쉰다.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총무가 사라졌다. 하루종일 전화를 받지 않기에 한 마을 사람이 집으로 찾아갔는데, 총무가 머물던 방은 언제 사람이 살기라도 했냐는 듯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장 내일이면 등대가 철거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의 행방은 묘연해진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이 저녁이어서 아직 마을에 소문이 퍼지진 않았지만… 중년 부부는 내일, 총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마을 분위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등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저 등대도 사라져요. 그런데 그 뒷일을 계획한 사람이 없어졌네요.”

“(…)”

“이럴 거면 왜 굳이 없애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댔을까요?”

고개를 고깝게 흔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다시금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난 그대로 발을 뗄 수 없었다. 총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나에게 주는 충격이 꽤나 강했던 모양이다. 부둣가에 멍하게 서서는 주위를 둘러본다. 중년 부부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만 가더니 어느새 두 개의 점이 아닌 하나의 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고개 돌려 바라본 등대는 자신의 하얀 몸을 침침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 쓸쓸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다음 날. 마을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등대 철거를 위한 중장비들이 끼릭끼릭 이상한 소리를 내며 하나둘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에 발맞추어 항구에 머리를 비춘 사람들 중, 그 중장비들 각각의 쓰임새가 어떤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기계들이 등대 곁에 들어섰다. 곧 차량에서 내린 이들이 노란 안전모를 쓰고는 등대에 달라붙고,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는 검은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작업을 지켜봤다. 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등대 주변이 아닌 항구 근처에 띄엄띄엄 서 있었다. 근처에 보이는 노인들은 오다가다 꽤나 여러 번 마주쳤던 분들인데, 나는 그들 중 어느 하나와도 인사를 나눌 수 없었다. 나 또한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로에게 떼어줄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이윽고 해가 하늘 정중앙에 자리 잡았다. 등대의 사형식이 거행되려 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포장도로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하는 뿔 모양 포크레인이 그 진동하는 코를 등대에 가져다 댔다.

쿵-. 첫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등대의 옆면에 나 있던 작은 창문이 깨어져 나갔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쿵-. 두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옆면의 구멍이 조금 더 넓어졌다. 그 사이의 조그마한 공간 속으로, 등대 내벽에 붙어있는 시멘트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아랫단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피던 담배를 쥔 채 자리를 떠났다.

쿵-. 세 번째 조각이 떨어졌다. 등대 안의 층을 나눠주던 지붕이 내려앉았다. 녹슨 철근에 콘크리트 조각이 안쓰럽게 붙어있다. 배가 많이 고픈 쥐가 갉아 먹은 빵처럼, 그 형태가 많이 불균형하다. 중년 부부가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껴안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쿵. 등대의 램프가 급격하게 한쪽으로 쏠리더니 이내 무너졌다. 무너진 등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폐병 환자가 내뱉은 힘겨운 기침처럼, 자신의 색이었던 흰 먼지들을 조금 흩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등대 조각들은 덤프트럭에 실렸다. 서 있을 땐 5미터 남짓 되어 보였던 등대가,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져서는 자그마한 용기에 담겨 나간다. 그 광경이 꼭 화장터에서 나온 유골함을, 다른 친족들의 눈물 냄새를 거쳐 나에게 전달된 슬픔의 무게를 연상케 했다.

등대가 무너지며 남긴 마지막 울림에, 내 몸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들어갔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멈춤이었다. 혈액이 멈춘 팔다리는 굳어 움직이지 않았고, 폐는 더 이상 신선한 공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나를 박동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심장을 잃은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선 채 등대의 마지막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질 무렵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항구에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몸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풀린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방파제 끝으로 걸어 나와 등대가 묘비처럼 남긴 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이 마을에 남아있도록 했던 단 하나의 동기가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밤사이에 고생한 낡은 보일러에게 휴식을 주는 것. 끼니를 챙겨 먹는 것. 미리 날씨를 확인하고는 걸맞은 옷가지를 챙기는 것. 철제 의자를 끌고 가느라 마주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눈빛을 감내하는 것. 내가 이제까지 행해왔던 그 모든 것들은 항구에 앉아 등대를 바라보기 위한 절차였음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사라진 이상, 나는 매일 아침 출발선에 설 필요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이 트랙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마음을 먹은 이후, 며칠간은 날씨가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마치 내가 결심을 재고하기를 누군가가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우연히 찾아온 거센 바람에 메여서라도 이 마을을 떠나기 싫은 일말의 미련일지도. 어느 쪽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날이 개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악천후는 찾아왔을 때처럼 느닷없이 마을을 떠나갔다. 나도 그간 싸 온 짐들을 제대로 꾸리고는 숙소를 나섰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같이 화분 밑에 열쇠를 놓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친 날씨가 지나갔다고는 하나, 아직 공기 중에 흔들림의 흔적들이 남아있음을 얼굴로 느낄 수 있었다. 간간이 들이닥치는 돌풍이 뒤끝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하늘도 아직 반쯤은 구름에 가려졌다. 덕분에 마을의 색이 조금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는 마지막으로 항구를 향해 발을 옮겼다. 볼일이 하나 남았기 때문이다.

방파제에 다다라, 나는 가방을 뒤져 작은 장난감 배 하나를 꺼내 든다. 언젠가 마을의 문방구에서 구입했던 것이다. 그 모양새가 작은 항구의 만에 메여있는 통통배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굳이 분류하자면 크루즈 선이라고 할까. 하지만 아무렴 어때. 희고 파란 장난감 배를 조심스럽게 수면 위에 내려놓는다.

며칠간 좋지 않았던 날씨 탓에 물색이 뒤집혀 있었다. 장난감 배의 뚜렷한 색채와 그 아래의 황토색 바닷물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배는 파도에 딸려 얼마큼 바다로 밀려 나갔다가, 다시 방파제로 다가오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꼭, 이곳을 떠나기 싫다고 떼를 쓰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온갖 악을 쓰면서까지. 배의 앞코가 방파제에 부딪혀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여기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몸체 안에 남몰래 새겨둔 노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주위의 통통배들이 떠난 사람들을 위한 존재인 것처럼, 장난감 배는 노인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잠시 묵례를 취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사실은 도저히 숨겨지지 않았다. 거리에 나오지 않은 존재는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가로등 위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갈매기들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마을은 그들을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여기에 붙잡아 매어두었던 ‘무언가’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으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동감이, 쿵쾅거리는 박동감이 여기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언덕을 넘어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마을의 현판에 적힌 ‘등대마을’이라는 단어와 걸맞지 않게, 무심코 돌아본 항구의 정경에 등대는 없었다. 주시할 곳을 잃은 눈동자가 이내 의미 없이 마을의 뒷모습만을 훑을 뿐이다. 나는 누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하나. 하얗게 소금꽃이 핀 장승? 아니면… 바다?

등대마을에 대한 기록은 여기서 끝이 난다.

4)

길었던 회상이 끝났다. 여태껏 노트를 내려다보느라 목이 뻐근했다. 목뒤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창가를 바라본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가 새벽을 향해 가는 한밤 중이었는데,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파릇한 아침 햇빛이었다. 밤을 새워버린 것이 분명했다. 읽던 노트를 일으켜 세운다. 표지를 만지고 있는 손가락을 통해, 종이 노트 위에 덧대어진 인조 가죽의 질감이 느껴진다. 문득 냄새가 궁금해져 코를 대어보지만, 내심 기대했던 바다 냄새는커녕 가죽 냄새도 나지 않는다. 대신 노트를 박아두었던 책상 서랍의 냄새가 난다. 그 쿰쿰한 먼지 냄새가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은 아니라 짧게 기침을 하며 목을 긁는다.

등대마을에서 보낸 나날들의 기록은 노트에 적힌 것이 전부다. 마을을 떠난 나는 그 길로 집으로 향했고, 지금까지 그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평이한 날을 보내고 있다.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고, 다시 다음 출근 시간을 생각하며 잠에 드는 식이다. 어느새부터인가 나의 일상 속에서는 출발점과 결승점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달까. 하염없이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 같이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가 벌써 1년 전이네.”

1년 전에 가졌던 한 달간의 일탈. 등대마을에서의 날들은 딱 그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보는 지난 1년보다,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의 한 달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꿈에서 본 등대의 모습이 머릿속에 꽉 박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무슨 꿈이든 깨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하지만 그 하얀 등대빛은 점점 커져서는 곧 내 머리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불현듯, 이제껏 당연스레 생각했던 인과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등대 꿈을 꾸었기 때문에 등대마을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를 떠올려야 했기 때문에 꿈을 꾼 것이었다.

이곳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는 직감이 쇄도했다. 등대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 그것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그 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등대 빛을 발견한 한밤중의 뱃사람이 된 것처럼, 그 깜박임을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기로 했다. 곧 짐을 꾸렸다. 이번 밀물은 꽤나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등대마을까지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시내에서 나와 고속도로를,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한참 달려야 했다. 물론 운전을 하는 데에 반나절 모두를 쓴 것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준비하고 나와 차에 올라탔는데, 막상 내비게이션에 등대마을을 검색하니 ‘찾을 수 없는 지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마을이 지도상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기억해야 했고, 운전도 알음알음 더듬어가야 했다. 그 때문에, 마을 어귀에 들어선 시점은 해가 빨갛게 물들기 시작할 즈음이 되어서였다.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쯤 등대마을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다.

하지만 나를 맞는 풍경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우선 두 장승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다. 관리의 시점을 조금 벗어나 방치되다 싶었던 장승들은 어디로 가고 없고, 막 옻칠을 마친 듯 반질반질한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키고 있는 마을 대문에는 번듯한 현판 하나가 걸려있었는데, 거기 적힌 단어가 나에게 너무도 낯선 것이었기에 일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마을’

마을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리라. 어떠한 연유에서 개명을 했을까- 하는 감상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등대가 없는 마을의 이름에 등대가 들어가는 것도 조금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 대문을 넘어서자마자, 나는 또다시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등대였다. 등대가 마지막 박동을 행했던 자리. 그곳에는 그보다는 조금 작은 등대가 솟아있었다. 색깔이 짙은 빨간색인 것으로 보아 무인 등대일 테다. 그 외에도 마을은 많은 변화를 겪은 듯했다. 일전에 노인이 알려주었던 바에 따르면, 과거 등대마을에서 명태가 잡혔을 때에는 항구에도 좌판이 크게 열렸었더랬다. 명태가 떠나면서 터만 남았던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그곳에 좌판이 열려있었고, 그 위에 널려있는 무언가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예전의 등대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항구에 도착했다. 좌판 위에 놓여있던 것들은 다름 아닌 오징어였다. 가만, 오징어? 본래 등대마을은 명태를 잡는 곳이었지 않은가.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 명태, 그리고 따뜻한 물에 살기로 유명한 오징어. 둘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등대마을에 다시 등대가 들어섰다. 반면, 마을의 이름은 남부마을로 바뀌었다. 버려진 어촌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좌판 위에는 오징어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너무도 많은 정보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욱여 들어왔다. 그 덕에 그들 사이의 우열을 나누지 못하는, 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때 좌판 근처에 몰려있던 얼굴들 중,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는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노인의 장례식장에서 그의 사인에 대해 말을 해주었던 어르신이다.

“이게 누군가.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 게야?”

“그간 잘 지내셨어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잠시 들르게 됐습니다.”

낯설게 변해버린 공간에서 낯익은 이를 마주친다는 것이 이렇게나 큰 행운으로 느껴질 줄이야. 설령 이 어르신과 나의 관계가 그리 여물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마을의 변화에 대해서 물어볼 이가 있다는 것이 나를 적잖이 안심시켜주었다.

짧은 인사가 오가고 난 후, 질문을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어르신이 먼저 화두를 던졌다.

“그래, 궁금한 것들이 많겠구먼.” 

“네.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에요.”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 이 마을이 이렇게 바뀐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으니.”

어르신이 감회에 젖은 듯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좌판 근처의 소음이 생각보다 커서, 우리는 보다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르신이 말을 이었다.

“작년쯤에 등대가 철거되었을 때, 자네도 그 자리에 있었지 아마?”

“네.”

“그 상태로 반년이 지났지. 반년 말일세. 말로 하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네만. 한 번 상상해보게,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네.”

방치된 어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머리 위로는 해의 색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목을 가다듬은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떠났지…. 나 같은 노인네들도 하나둘씩 짐을 싸더구먼. 마을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어. 그때 우리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던 것이 마을 이름 개명이었다네.”

“그게 조금 효과가 있었나요?”

“있었다마다! 분위기만 바꿨을까. 이름을 바꾸고 나서 오징어가 잡히기 시작했단 말일세.”

어르신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면서 보다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긴 하네만…. ‘남부’라는 이름이 남쪽의 오징어를 데리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허허.”

해류에 유연히 떠밀려 올라온 오징어 배가 만선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했다. 많은 오징어 군체들이 발견되었고,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몇몇 어부들부터 오징어잡이로의 업종 전환에 도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징어 출하량이 어마어마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로 마을은 예전의 규모를 회복해 나가고 있다. 선순환 격으로, 항구의 어선 출항이 급격히 증가하자 다시금 등대를 배치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아직 이 분위기가 어색하다네. 남부마을이라는 이름도 아직 입에 익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저 빨간 등대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구먼.”

“예. 저 등대 색은 저한테도 너무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겠지. 오징어도, 등대도, 사람들도….” 

좌판 쪽에서 누군가가 어르신을 찾는다. 어르신이 그 부름에 응답하면서 대화는 끝이 났다. 어르신은 나에게 ‘천천히 둘러보다가 가시게나’와 같은 말을 건네더니, 인파 속으로 금세 사라졌다.

홀로 남은 나는 좌판 쪽에서 멀찍이 벗어나, 등대가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매일 같이 철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던 곳이다. 여기에 서 있자니 그때의 생각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처음으로 등대를 보고 느꼈던 이상한 감정부터 노인과 나눴던 대화들, 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등대의 마지막 박동과 몸이 얼어붙는 듯했던 느낌까지. 일련의 나날들이 영사기 속 필름들처럼 촤르르르하고 영사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준비해둔 필름 롤이 다 떨어질 무렵, 정면의 빨간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등대의 머리가 하얀빛을 띠고는 일정한 주기로 회전한다. 아직까지는 건재한 노을도 언젠가는 밤에게 잡아먹힐 것을 안다는 듯, 노을을 돕기라도 하는 것처럼 굳세게 빛을 뿜어댄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비단 등대뿐 아니라, 이 마을의 환경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 비린내와 흥정하는 이들의 왁자지껄함. 그 중심에서는 그들 모두를 위해 박동하고 있는 작은 심장이 있다. 나는 그 속에 들어와 있음에 따라, 등대가 뿜어내는 힘의 근원을 전달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등대를 향해 품어왔던 감정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잡아볼 수 있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바라보았을까. 좌판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조용함이 찾아왔다. 등 뒤에서 켜진 가로등이 노을을 대신해 남부마을에 저녁빛을 내리고 있었다. 남색과 흰색, 그리고 주황색으로 물든 방파제 위에서 생각에 잠긴다. 나와 이 마을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등대, 노인, 그리고 총무. 지금은 모두 떠난 것이며 떠난 이들이다. 등대는 부서졌고 노인은 가라앉았다. 총무는…. 총무는 어떻게 되었지? 그때, 나는 방파제 위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이미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고개는 정확히 나에게 향해 있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 느낌이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끈적하면서도 기묘한 눈빛. 그와 눈을 마주쳐 본 이들 중, 그의 시선이 가져다주는 이 기분을 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총무와 나는 어느새 나란히 서 있게 되었다. 내가 다가간 것인지, 그가 나에게로 다가온 것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총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총무가 먼 산을 바라보듯, 등대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인사를 해왔다. 나도 그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인사를 받는다.

“네. 오래간만입니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자연스럽게 총무의 얼굴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데, 근 1년 만에 마주하게 된 그의 얼굴은 예전만 못했다. 도시적인 이미지를 풍기던 얼굴은 살이 빠지며 광대를 드러냈고, 항상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다니던 머리에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자리를 잡았다. 면도한 지 꽤 된 듯 수염들도 제각기 다른 길이로 나 있었다. 이전의 총무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모습에 절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10살은 더 많아 보인다는 게 오늘 마주한 총무의 첫인상 아닌 첫인상 평가였다. 고루한 침묵은 총무의 질문으로 깨어졌다.

“안 물어보십니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총무가 입술 사이로 프흐흐하는 웃음을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그때 왜 사라졌는지 말입니다.”

“(…)”

물론 궁금하긴 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벌여놓은 일에 대해서 왜 책임을 지지 않았는지. 그렇게 사라져 버릴 거였다면, 회의 때 열성적으로 토해내던 계획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하지만 내가 그 이유를 지금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바닷속에 빠진 노인은 다시 돌아올 수 없고, 막 건립된 빨간 등대가 흰색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답하지 않자, 총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네요.”

“사실은 무서웠습니다.”

무서웠다고? 그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총무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큰 심호흡 이후, 총무의 말이 이어졌다.

“등대를 철거하자니… 그 위에 관광코스를 만들자니… 사실 제가 그걸 다 어떻게 관리하고 계획할 수 있겠습니까. 다 허울 좋은 구실들이었죠. 왜냐? 저도 거기에 대해서 잘 모르거든요. “

“그럼 도대체 왜…”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소목적들이라고 해둘까요?”

총무가 다시 예의 프흐흐하는 웃음소리를 낸 뒤 입을 다문다. 그가 입을 다시 여는 데에는 등대가 한 바퀴를 돌기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있잖아요. 저는 사실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이겨본 적이 거의 없거든요? 시험이라면 시험, 운동이라면 운동. 그렇게 살아온 인생, 의미 없이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왔었죠. 그렇게 자리 잡게 된 이 조그마한 마을. 뭔가 요상한 자신감이 절 휩싸는 겁니다. 아, 이곳이다. 여기라면 나는 더 이상 패배자로 살지 않아도 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총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자신도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말인 듯, 묵혀두었을 법한 기억이 좁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걸 막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등대마저 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등대 빛이 우리 둘에게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

“그 당시 여기에 지내던 사람들은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너무 쉬운 문제를 안고 있어 보였어요. 쓸모없어진 옛것을 고집하는 노인들, 그에 따라 자신에게 부과된 귀찮은 의무를 지고 싶지 않던 젊은이들….”

“잠깐, 그러면 총무님이 여기 오기 전부터 등대로 말이 많았다는 말인가요?”

“예? 그렇죠. 제가 한 것이라고는 그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것뿐이에요. 마을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거라구요.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등대 철거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죠. 설마, 이제까지 제가 전부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총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어쩐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좋지 않더라니-.

“…모든 게 제 계획대로 이뤄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등대가 철거됐죠. 안 그래도 일주일씩이나 등대 안에 박혀있기 싫었던 건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뭐 중간에 이장님이 돌아가셨다거나, 당신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했다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 인생에서의 첫 타점을 이 작은 마을에서 따낸 겁니다.”

딱- 하고 말이죠. 총무가 야구 배트를 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로 작은 스윙을 했다. 예의상으로나마 작게 웃어주었어야 했을 내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자. 그는 양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막상 제 바람이 이뤄지고 나니… 무서워지는 것 있죠.”

아마도 그는, 승리자로서의 자신에게 부여되는 막중한 책임과 기대를 버티지 못했던 것임이 분명했다. 마치 한 초짜 연기자처럼, 자신이 무대 아래에서 견뎌내야 할 가십과 스캔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여기 웬일로 오셨습니까?”

“아… 저는 그냥 소식을 듣고 왔어요.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나 뭐라나 해서. 총무님은요?”

총무가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몸이 움찔하고 떨리는 것을 숨기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다음 총무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본다면 정말이지 얼이 빠졌다고 생각하겠지.

“어제 등대 꿈을 꾸어서 말이지요. 아 물론 이 빨간 등대 말고요. 예전에 있던 하얀 등대 말입니다.”

“(…!)”

그는 시선을 등대에 고정한 채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두운 바다에서 빛을 보고는 떠올랐고, 수면에 도착해 바라본 곳에는 하얀 등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빛이 자신을 삼키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고 했다. 내가 꾸었던 꿈과 똑같다. 총무가 말을 이었다.

“등대가 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보이리라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냥 그런 직감이 들었어요. 처음에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런 류의 직감 있죠? 아! 얘가 나를 부르고 있는구나! 그래서… 사과라도 해야 할 듯 싶어 왔습니다.”

“사과요?”

“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저 때문에 부서진 놈이니까.”

총무를 바라본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주황색 가로등 빛을 등에 업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희끗희끗해진 머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흔들거린다. 그가 주머니에 꽂고 있던 양손을 꺼내더니, 자신의 양 볼을 뭉개듯이 문질렀다. 그 모습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멋쩍게 웃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언젠가 나와 총무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등대를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총무가 다가와 말을 걸었었더랬다. 등대를 철거해야 한다며, 쓸모없어진 가치관은 버려야 한다며 열렬하게 주장했던 그가 마지막에 꼭 저런 말을 했었는데.

「그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겠지요? 그렇지요?」

다른 점이라고는 총무의 눈동자가 더는 기묘하게 울렁거리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대화를 마치고 총무는 떠나갔다. 사실 그 모습을 직접 바라보지는 못했으나, 그가 이 마을이 아닌 어디론가로 다시 떠나갔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등대를 바라보는 나의 옆얼굴을 향해, 그는 어쩌면 인사를 건넸을지도 모른다. 묵례를 했을 수도, 혹은 작은 손 인사를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 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분명한 것은 그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저벅거림도 없이.

4초마다 한 바퀴를 돌았던 이전의 등대와 달리, 빨간 등대는 3초를 간격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 빨라진 주기에 적응하는 와중에, 내 속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변화라기보다는 완결에 가까웠다. 등대마을과 나 사이에 남아있던 미완성의 매듭이 다시 엮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총무와의 만남에서 유발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노인의 죽음을 배웅하고, 등대의 마지막을 목도했던 것과는 달리, 애당초 나와 총무 사이의 관계는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총무도 지금 마음 한켠에서 완성되고 있는 매듭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떠나오기 전 품었던 직관이 다시금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등대가 나로 하여금 이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총무의 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의도가 어찌 됐든 간에 나와 총무는 꿈을 통해 등대를 보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마을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우연 아래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강한 논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등대가 명태를 다시 불러올 것이라고 믿었던 노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등대가 부르고 있었던 것은 명태가 아닌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 정리를 하며 항구 안을 걷다가, 나는 항구의 구석에 박혀있는 폐그물 안에서 한 장난감 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마을을 떠날 때 띄워놓은 것인데, 용케도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밀려왔다. 배가 본래 가지고 있던 흰색과 파란색의 구분은 이미 무색하기 만치 바라있었다. 이는 다름 아닌 이끼가 배의 아랫부분을 모두 덮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끼가 배의 상처 또한 가려주었다는 것일까.

배를 다시금 물 위에 올렸다. 중간에 틈이라도 생겨서 물에 뜨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도 잠시, 배는 출렁이는 수면 위에서 자신만의 균형을 잡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껏 바닷바람이 얼굴을 때렸던 것과 달리, 머리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바다를 흙냄새로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물의 방향 또한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아무래도 간조가 시작되려는 듯했다. 항구 밖으로 나가려는 물과 들어오려는 물이 부딪히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방파제의 표면에는 만조 때 차오른 물 만큼의 이끼가 새겨져 있었다.

장난감 배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로는 노을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마을의 전경이, 가로등 위에 앉아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새롭게 항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남았다. 이들 모두를 뒤로하고는, 노인의 이름을 실은 배가 검은 동해를 향해 출항했다.

그리고 그 배의 앞길을, 등대가 하얀 손수건을 세상 곳곳을 향해 흔들며 배웅하고 있었다.

 

- 수상 소감

낚싯대를 매고 오륙도 등대섬에 들어간 적이 있다. 등대 닮은 섬이겠거니 했었는데, 막상 발을 디디자 온 부산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듯한 등대의 위용에 잠시 넋이 나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부대콘텐츠 공모전에 내보인 작품 ‘등대마을’, 그중에서도 특히 작품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장면(간단하게는 물 밑에서 등대 빛을 보고 떠오르는 장면)은 이때의 감상에서 발현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낚시 도중에 ‘물 안에 있는 멸치도 저건 알아보겠다’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으니 말이다. 나를 뚫어져라 굽어보던 등대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때의 강렬한 기억 탓인지,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대가 떠올랐다. 그 뒤로 노인과 총무, 그리고 주인공 ‘나’가 탄생했다. 주제는 ‘세대’이긴 했으나, 처음부터 뚜렷한 상징을 세워놓고 글을 시작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소감문을 작성하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소설 ‘등대마을’은 전적으로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세상살이에 있어서 공식으로 결정되는 것은 어느하나 없으며, 우리를 갈라놓고 있었던 세대라는 단어는 정작 아무 문제가 아니었음을…….

작중의 노인과 총무, 그리고 ‘나’ 사이의 관계에 매듭이 지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주인공의 심경을 받아적고 있던 나 또한 마음 한구석에서 지어지는 완결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이지 따뜻한 순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었던 것 자체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였는데, 이번 수상이 그 매듭 위에 예쁜 나비 한 마리를 앉혀준 것 같아 기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민선(독어독문학, 16)
조민선(독어독문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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