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사이 퍼지는 '콜 포비아' 현상
-"전화 오면 심장 빨리 뛰고 손에 땀난다"
-소통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 필요해

A(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21) 씨는 공적인 통화를 앞두고 극도의 긴장감을 느낀다. 통화를 걸기 위해 길게는 1시간까지 준비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일상이 됐다. A 씨는 “전화를 걸어야 할 때면 너무 긴장된다”며 “반드시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화 통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인 콜 포비아. 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c)김채현 기자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인 콜 포비아. 전화 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c)김채현 기자

전화 소통을 기피하며 문자와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현상은 전화에 어색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콜 포비아(Call phobia)’로 불리며 사회생활의 장애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부담스러운 전화보다 문자가 좋아요”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트모니터’가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통방식 선호도’ 설문 조사 결과, 2~30대에서 전화 소통 선호 정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연락 수단 가운데 전화 소통을 선호하는 경우는 △20대 14.4% △30대 16.0%에 불과했다. 반면 텍스트 소통의 경우 △20대 58.4% △30대 61.6%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텍스트 소통 선호 정도가 높은 4~50대(△40대 47.2% △50대 40.4%)와 대비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결과를 증명하듯 △MBN <오피스빌런>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등 각종 TV프로그램은 업무 전화를 받지 못하는 젊은 신입사원을 단골 소재로 사용한다.

콜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전화 통화 자체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우리 대학에서도 해당 증상을 가진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B(건축공학, 19) 씨는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이 나기도 한다”며 “전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전화가 올까 봐 두려운 마음에 새벽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B 씨는 전화에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두려움 △말실수 우려 △전화 중 정적에 대한 불편감 등을 꼽았다. B 씨는 “전화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면 (전화하기 전에) 메모장에 할 말을 정리해서 시뮬레이션한다”면서도 “이렇게 해도 긴장될 때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공포감에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A 씨는 “부담감이 심해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며 “지인들은 내가 콜 포비아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문자를 먼저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동아리 활동과 대외활동에 참여하며 각종 기관의 담당자와 통화할 일이 잦아져 걱정이 늘었다.

전화에 큰 부담을 느끼는 이들은 대체로 텍스트 소통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텍스트 소통은 답변을 충분히 생각한 후 전송할 수 있고 수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B 씨는 “텍스트는 각자가 시간이 있을 때 답장할 수 있어 긴장이 덜하다”며 “꼭 전화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텍스트로 소통한다”고 밝혔다.

■“타인과의 소통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에서 나타나는 텍스트 소통 선호 현상의 원인으로 디지털 기기에 친숙한 2~30대의 환경적 요인을 꼽는다. 우리 대학에서 ‘대인커뮤니케이션’ 수업을 진행하는 김범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친숙한 세대를 일컫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등장하면서 텍스트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미디어 기능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젊은 세대는 자신의 말 실수를 줄일 수 있고 곧바로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텍스트 중심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김범수 교수는 대인 간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대면 만남까지 꺼리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 간 소통할 수 있는 대학 내 강의와 동아리, 교내·외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며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전화 통화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닌, 단순한 텍스트 소통 선호도 만연한 만큼 '콜 포비아'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아(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겸임교수는 적응을 통한 콜 포비아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친한 지인과의 통화에서부터 적응 훈련을 시작해 전화 상대를 확장하라는 것이다. 김정아 교수는 “전화 통화를 포함해 ‘말하기’는 인생에서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라며 “상대와 대화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의 ‘스피치론’ 수업과 교양 과목인 ‘발표와 표현능력’ 수업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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