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부산문화회관 '인문학 마스터 클래스' 개최
-첫 강연자로 천종호 부상지방법원 부장판사 나서
-“대한민국 정의의 모습은 1/4짜리 정의”
-"소년범 처벌은 재비행을 방지할 수 있는 교화에 중점 둬야"

"가해자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천종호 판사가 종종 받는다는 질문이다. '호통판사'로 널리 알려진 법조계 인사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처벌보다는 교화를 강조하는 행보를 수년간 펼쳐 오며 '가해자 옹호'란 오해까지 샀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소년범을 만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정의를 논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지난 4월 22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인문학 마스터 클래스'의 첫 강연자로 나선 천종호 판사. [부산문화회관 제공]
지난 4월 22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인문학 마스터 클래스'의 첫 강연자로 나선 천종호 판사. [부산문화회관 제공]

지난 4월 22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마스터 클래스’의 첫 강연자로 우리 대학 동문이기도 한 천종호 판사가 나섰다. 해당 기획은 국내 각 분야에 저명한 여섯 인사들의 강연형 콘서트로 부산 시민들의 인문학적 성찰을 제고하고자 마련됐다. 이번 강연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총 6회의 강연이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천 판사가 정의하는 정의

천 판사는 강의 초반 “대한민국 정의의 모습은 1/4짜리 정의”라고 표현하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전개해 나갔다. 먼저 그는 완전한 정의의 개념을 구성하는 네 가지 측면을 제시했다. 천 판사에 따르면 정의는 △저마다의 정당한 몫을 나누는 ‘분배’ △몫을 자유롭게 누리는 ‘향유’ △향유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바로잡는 ‘시정’ △분배되는 몫의 격차가 큰 경우에 그 격차를 줄이는 ‘재분배’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네 가지 측면 중 ‘시정’의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경향은 천 판사가 소년범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문제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통계적으로 마주하는 소년범의 70%가 저소득층, 47%가 결손가정이라고 했다. 상당수가 생계형 범죄이기에 비행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적 제도는 시정적 측면에서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에 집중돼 있는 실정이다. 천 판사는 “소년범 문제의 진짜 해결을 위해서는 분배와 재분배를 중점으로 하는 ‘배분적 정의’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자신을 '교정주의자'라 칭하기도 했다. 소년범의 처벌보다 교화에 중점을 두고 문제를 바라보니 교정 시설의 부족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배분적 정의 기반의 소년범 교화 제도를 마련하는 기조 속에서 우리나라는 교정 시설이 미흡한 편”이라며 "소년범의 재사회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예산이 더욱 고루 분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를 위하는 것이 아닌 사회를 위한 판단”

천 판사는 재판 외에도 △공동 주거 설립 △정기적 소통 등을 마련하며 사회에서 고립된 소년범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진행하며 “’가해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황당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교화를 통해 (소년범이) 재비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새로운 피해자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크다”고 답했다.

세계적으로 엄벌주의가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년범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려 한 교도소에 다양한 소년범들이 수용될 경우, 내부에서 더 큰 범죄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년범을 범죄의 유형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의 분리가 미비한 우리나라에서는 처벌에 있어 이러한 문제를 더욱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천 판사는 “교화를 위한 처벌에 대해 사회 전반의 발전을 위한 시각에서 바라봐 달라”고 덧붙였다.

소년법에 대해 널리 알려진 지식의 오류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가장 일반적인 오류로 △’소년법을 폐지하면 촉법소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촉법소년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촉법소년 연령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편이다’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천 판사에 따르면, 소년법을 폐지할 경우 소년범에 대한 처벌이 가중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제한하는 법 자체가 사라져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는 "언론에서도 이러한 오류가 확산되고 있다”며 “국민적 인식의 개선 역시 소년 범죄 감소에 있어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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