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판결에 대해 아는가. 성서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지혜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다. 솔로몬은 한 아이를 두고 자신의 자식이라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아이를 반으로 가르라’는 명령으로 모성애를 확인한 그의 명철은 흠잡을 곳이 없어 모두를 승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것을 두고 ‘해법(解法)’이 나왔다고 한다.

지난 3월 6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일제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안’이 과연 해법(解法)인지 의문이다. 제3자 변제는 일본 가해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할 배상금을 국내 기업이 대신 배상하는 방식이다. 잘못의 당사자는 빠지고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3자가 통감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한 결과다. 돈만 쥐어 주면 된다는 왜곡된 역사관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외교와 국익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유야무야 일을 처리한 것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난 3월 7일 비상시국선언에서의 “그런 돈은 죽어도 안 받는다”는 양금덕 씨의 말이, “몇십 년을 기죽고 살아왔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겠냐”는 김성주 씨의 호소가 생생하다. 그런데 윤 정부에게는 그러한 외침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정부는 아픈 과거를 겪은 것도 모자라 아직까지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저버렸다. 무의미한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을 자랑스럽게 내걸곤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윤 정부는 이를 두고 ‘미래지향적 결단’이라고 한다. 국익을 위한 것이라며 과거를 스스로 청산해 버렸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후빈 것도 모자라 흉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오지 않는다.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단 건 지극히 당연한 논리다. 누구나 아는 이 ‘당연함’을 대통령만 모른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역사를 부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정부안이 발표되면서 대법원의 권위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문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 15명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결정을 무시한 채 단순 채권·채무 이행의 관점에서 제3자 변제를 밀어붙였다.

일각에선 국익을 우선한 결과라고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먼저 다가가 성의 있는 호응을 기다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떤가. 일본은 보란 듯 강제징용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지난 3월 9일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 “강제동원은 없었다”며 “이미 다 끝난 일”이란 망언까지 내뱉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별도의 항의나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국민은 끝없이 해법안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마치 폭탄 장치 제거하듯 강제징용 문제를 바라보며 졸속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이번 대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지난 3월 27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유권자 92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68%가 이번 해법이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윤 정부가 내세운 그것은 해법(解法)이 아니다. 되레 해법(害法)은 아닌지 묻고 싶다. 피해자와 국민의 여론을 등진 선택은 결코 국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외교라는 포장으로 역사를 팔아먹는 비겁한 짓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게 통탄한다.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임하은 부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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