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캠퍼스 인근 야학 '금정열린배움터'
-교사 3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우리 대학생
-최근 졸업생 손정화 씨, 시집 출간해 '훈훈'
-손 씨 "덕분에 시집 낼 수 있었다" 소감 전해

물도 안 나오는 산자락에 살던 아이는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다. 산 밑에서 등교하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동네 아이들을 따라나섰지만, 책도 보자기도 없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딸의 말에, 아버지는 이웃에게 깨끗이 보겠다고 사정해 낡은 책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 딸은 ‘시근’(‘철’의 경상도 사투리)이 일찍 들어 어려서는 물을 길어 과수원 가꾸느라 국민학교 4학년을 끝으로 교문을 나와야 했다. 커서는 일하며 자식 키우느라 예순이 다 되도록 졸업장 한 장 없던 소녀는 8년 전, 야학을 다닌 뒤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두 달 만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2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따며 글 쓰는 법을 익힌 그가 대학에 진학하고 '시집'을 낸 것이다.

지난 10월 17일 자전적 시집 ‘엄마의 꽁당보리밥’을 출간한 손정화(68) 씨의 이야기다. 손 씨는 우리 대학 부산캠퍼스 인근 부곡시장에 있는 야학인 ‘금정열린배움터’ 졸업생이다. 금정열린배움터는 현재 30여 명의 교사가 무급 교육봉사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우리 대학 재학생이다. 우리 대학 재학생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 역시 야학을 졸업한 후 우리 대학에 지원하기도 한다. 

채널PNU와 인터뷰 중인 손정화 씨. [전형서 기자]
채널PNU와 인터뷰 중인 손정화 씨. [전형서 기자]
바깥에서 바라본 금정열린배움터. [전형서 기자]
바깥에서 바라본 금정열린배움터. [전형서 기자]

손 씨는 11월 1일 채널PNU와의 인터뷰에서 시집을 출간하기까지는 야학 선생님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국어 선생님의 제안으로 나간 시화전에서 교육감상을 받자 주변 사람들은 시집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 손 씨는 “써 보거나 들어 본 적 없는 단어를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시에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어 “선생님들은 열 번 물으면 열 번 대답해 주시고, 스무 번 물으면 스무 번 대답해주신다”며 “그들이 아니었으면 시집 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라 말했다.

대학생이 되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선배의 소개로 이곳에서 영어 교육봉사를 시작했다는 우리 대학 재학생 안채희(사회복지학, 22) 씨는 “(야학의) 아버님, 어머님들은 부모님이 시켜서 학원에 온 아이들에 비해 자기 의지를 갖추고 오신 것이기에 열정이 훨씬 뛰어나시다”며 “수업 시간에 눈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봉사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제 손 씨는 야학을 떠나 대학에 갔지만, 야학은 여전히 매일 밤 수많은 만학도를 위해 불을 밝히고 있다. 금정열린배움터는 1994년 개교한 이래 1,000여 명의 중·장년, 노년층 학생과 봉사자들이 거쳐 갔다. 현재 초·중학교 졸업장을 따기 위한 평일 과정과 영어 수업으로 구성된 주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금정열린배움터 정해용 교장은 “(부산대가) 야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만큼, 더 많은 재학생들이 지원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정열린배움터 내부. 손 씨가 그랬던 것처럼 시화전을 통해 그린 작품이 걸려 있다. [전형서 기자]
금정열린배움터 내부. 손 씨가 그랬던 것처럼 시화전을 통해 그린 작품이 걸려 있다. [전형서 기자]
국어시간, 필사 중인 한 학생. [전형서 기자]
국어시간, 필사 중인 한 학생. [전형서 기자]

금정열린배움터는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어른에게는 학생의 입장을, 20대 학생에게는 어른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안 씨는 “어르신들은 학생이기 이전에 어른이라 그분들께 많이 배우고 있다”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 준다”고 말했다. 

손 씨는 야학을 다니면서 학습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자식을 키울 때는 학비와 점심값만 해결해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학교에 직접 다녀 보니 여러 사정이 많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 씨는 “아무리 부모가 시키더라도 결국은 스스로 마음먹고 해야 하더라”며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실패해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인생 선배인 어르신 학생과 젊은 선생님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배우며 서로의 ‘청춘’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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