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에 짓눌려 기를 펼치지 못하던 문화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문화계가 서로 힘을 합쳐 대기업 중심의 문화계를 바꾸려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작품에 투자하는 분위기도 조성되며 문화인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개미’들이 힘을 모아 불합리한 구조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1일 영화계에서 거대 자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산업구조를 개선해 창의적인 영화제작과 관객들의 영화선택권을 늘리기 위해 배급회사 ‘리틀빅픽쳐스’를 설립했다. 제작자들이 직접 팔을 걷고 힘을 합친 것이다. 한국영화 제작가협회(이하 제작가협회) 주도로 명필름, 영화사 청어람, 영화전문지‘ 씨네21’ 등 10개 회사가 참여했다. 제작가협회 배장수 상임이사는 “제작가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건전한 영화시장을 일궈내는 것이 목표”라며 “관객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면서 참여 주주도 더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인들의 행동에 일반인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 ‘소셜 펀딩’ 중개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다.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투자 자금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소셜펀딩은 이미 문화계에 깊이 자리 잡고있다. <26년>, <천안함 프로젝트>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소셜펀딩을 통해 제작됐다. 소셜펀딩은 프로젝트 진행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홍보도 겸할 수 있어 문화인들에게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영화제작회사 오지필름도 소셜 펀딩으로‘ 오지필름 1+1 프로젝트’ 를 후원받아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오지필름 문창현 대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적은 금액이나마 관심을 보여줘 뿌듯했다”며 “소비자와 소통하며‘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 공정영화협동조합 ‘갈매기극장’이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취재원 제공)

소셜펀딩에 참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중개 사이트에 신청된 프로젝트를 확인한다. 상세 설명을 확인한 후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한다면 원하는 금액만큼 투자할 수 있다. 이후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보상을 받게 된다. 문화계에서의 보상은 보통 작품을 직접 받아보거나 초대권의 형태로 받을 수 있다. 직접적인 자금 투자가 아니더라도 SNS, 공감후원 등 ‘홍보’ 를 통한 투자도 가능하다. 소셜펀딩 중개 사이트‘ 펀딩 21’ 관계자는 “참여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투자자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보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그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해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투자가 꾸준히 이어지기 어렵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이후 창작 활동에 대해서는 꾸준한 투자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주도 4·3사건을 다뤄 12만 관객을 모은 영화 <지슬>은 소셜펀딩을 통해 부족한 제작비 천만 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지슬>을 제작한 오멸 감독의 차기 프로젝트 <하늘의 황금마차>는 펀딩 목표액의 14%를 달성하는데 그쳤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안정적인 조합원을 바탕으로 한 문화협동조합이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문화계에 서도 협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수원의 이웃문화협동조합, 울산문화예술협동조합, 경남문화예술협동조합 등 각 지역마다 다양한 협동조합이 결성됐다. 부산에서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산지회가 ‘잘놀아보세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문화예술협동조합 이은진 연구원은 “문화계에서 협동조합이 결성되면 예술가들이 재정적으로 안정돼 자기 자신이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며 “지역예술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일반인들도 문화의 주체가 돼 거대 자본이 잠식하고 있는 문화계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협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로 결성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웃문화협동조합 이수아 사무국장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고 결성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힘들다”며“ 일반인은 물론 예술인조차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문화계에 협동조합이 정착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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