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교양수업을 강의하던 임승수 씨가 국가정보원에 신고당했다. 맑스의 <자본론> 내용을 소개하는 그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민주노동당에서 간부로 활동했다는 이유에서다. 신고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수업을 듣던 새내기 학생이었다. 이후 학생은 그 사실을 대학본부에 자랑스럽게 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2011년 11월, 미국에서도 유사해 ‘보이는 일’이 있었다.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이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로 유명한 경제학자 존 그레고리 맨큐의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학생들은 그의 수업 도중에 집단으로 강의실을 빠져나오면서 남긴 편지를 통해 거부 의사를 밝혔다. 맨큐의 수업이 편향되어 있으며 불평등한 경제적 시스템을 영속화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후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월가에서 벌어진 ‘점령 시위’에 참가했다. 한국과 미국의 대학생이 각각 ‘자본론’과‘ 맨큐’를 고발하고, 거부했다. 비슷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른 두 ‘사건’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자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줄만 알았던 매카시즘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반공을 국시로’하던 정권이 위기의 순간마다 묘수로 활용하던 ‘빨갱이 낙인찍기’다. ‘붉은 낙인’은 시민과 지식인의 사고를 경직시키고 자기검열을 조장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최근의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논란도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과서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 헤게모니를 차지하려 시도하는 그들이다. 물론 그 학생의 고발이 투철한 반공의식의 발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본론>과 ‘반공’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릇된 사고는 그릇된 사회 풍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학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해프닝처럼 끝났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어느 곳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대학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쉽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맨큐와 그의 교과서를 의심하고, 거부했던 대학생들의 행보가 2년이 지난 지금도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들의 모습에서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 온 ‘선배’들의 모습과 닮아서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기성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통일을 외쳤다. ‘대학 정신’은 먹고 싶을 때 빼먹는 ‘곶감’이 아니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때 써먹을 수 있는 전가의 보도는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옳고 정의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어렵사리 지켜온 대학 정신이다.

2013년 한국의 대학생은 1987년 6월에서 얼마나 진보했을까. 5월 광주와 10월 부마항쟁의 선배들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상실했는가. 학생사회가 와해되고, 대학생이 취업준비생으로, 학생운동이 단순한 복지사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봐서는 안된다. 겨우 뿌리를 내린 줄알았던 대학 정신이 아무도 모르게 뽑혀가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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