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더운 날들이었다. 이 더위를 피하고자 하는 인파들로 극장이나 피서지는 연일 북적였다. 피서지에 갈 시간도 돈도 없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택한 방법은 느와르영화 관람이었을 것이다. 굳이피서지나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급 느와르물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 이름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국정원사태’다. 이름부터 웬만한 느와르물을 방불케 한다.

‘국정원 사태’는‘ 흔한’ 느와르물의 구색을 너무도 잘 갖췄다. 스케일도 크고 캐스팅도 호화롭다. 배우로는 국회의원, 언론인, 중앙정부의 고위공무원 등이 등장한다. 연기 연습을 한 것도 아니지만 악역들의 연기는 연기 대상감이다. 느와르물에서 배후를 캐면 캘수록 위선적인 권력자가 숨어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도 숨은 복병이 존재한다. 특히 국정조사에서 부인으로 점철된 각본을 읽는 장면은 압권이다. 진실을 찾는 것‘ 따위’는 안중에 없고, 오직 대사를 읽는 데 집중할 뿐이다.

관객들은 하루빨리 이‘ 막장’극의 결말을 내고 싶어 하지만 영화의 흐름은 엉뚱하게도 계속 다른 방향으로만 간다. 배우들은 이미 관객들의 기대를 무시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건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던 중 느와르물에 으레 등장하는 악역은 많은 데 반해 악에 맞서는 인물은 보이지 않아 당황했을 것이다. 느와르물에서 악에 맞서는 인물들은 진실을 찾다가 죽임을 당한다. 이들이 고난에 처하고, 어쩌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은 진실을 찾는이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 소수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시민들의 참여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가 바뀌는‘ 시민참여형’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브라운관으로 지켜보면서 시나리오를 배우들의 손에만 맡기는 것을 포기한 듯싶다. 직접 진실을 찾으려 나선 것이다. 서면 쥬디스태화 옆,서울 광화문 광장, 국회 앞에서는 진실을 요구하는 아마추어 시민 배우의 활약이 대단하다. 서면 쥬디스태화 옆 ‘국정원 사태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문화제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전국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시국선언을 통해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현재 시점에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자신의 자리를 되돌아봐야 한다. 곧 어떻게든 결말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국회의원, 언론인, 고위공무원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결국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그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가 시민 참여형으로 이뤄지고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 하다. 하지만 권력자들이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이 아무리 길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많은 시민 배우들의 숫자도 무시할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국정조사에서 각본만 줄줄 읽었지만, 국정조사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시민 배우의 힘이다. 다음 플롯도 시민 배우에게 달려있다. 아마추어 시민배우의 길은 열려있다. 진실을 찾고자 하는 깨어있는 의식이 그 입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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