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축전’에서 ‘대동제’까지

우리학교 대동제,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부대신문에서 시대별로 나눠 대동제의 변화 과정을 살펴봤다.

50~60년대: 개교기념 ‘축전’의 시기

50~60년대의 우리학교 축제는 개교기념의 의미로 ‘효원축전’이라는 이름 아래 치러졌다. 학술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축제기간에 각종 발표회나 전시회가 함께 진행됐다. 단과대별 특별경연대회, 무용, 촌극 등이 주요 행사였으며, 오늘날 대학축제의 기본 틀이 마련됐다. 1964년부터 ‘효원⋅온⋅파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퍼포먼스, 공연에 해당하는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또한 손수 만든 음식을 판매하고 서로의 물건을 내다 파는 바자회가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낭만’과 ‘전통계승’의 혼재

70년대부터 우리학교 축제는 ‘효원축제’ 또는 ‘효원제전’이라고 불렸다. 이 시대에는 새로운 문화의 도입으로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축제 모습이 나타난다. 포크댄스 행사나 민속춤 경연이 그 예다. 한편으로는 학술행사의 수준이 높아져 총학생회와 행정대학원의 주최로 초청학술강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양(수학교육 75, 졸업) 교수는 “축제 기간에 학생들끼리 모여 관심 있는 학문에 대해 토의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며 “지금 대동제는 외향적으로 화려해졌으나, 학문적인 탐구가 부족한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또한 당시 총장이 축제 기념사에서 ‘지역사회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당부했을 정도로 대학 축제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 시위와 투쟁 속 대동제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혼란의 80년대. 당시 우리학교는 학생운동의 중심지로서, 단대축제 형태로 축소되기도 했다. 정옥상(화학 80, 졸업) 교수는 “80년대 대동제의 많은 행사는 ‘민주화’가 주제였다”며 “당시축제는 ‘즐긴다’는 개념보다는 ‘참여한다’는 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파트너를 데리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축제 전날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미팅을 통해 파트너를 구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모두 하나 되는 축제라는 뜻으로 ‘대동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축제 때 보인 학생들의 소비행태가 불량하고, 무관심 때문에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비판받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대학 문화

1990년대 이후에는 ‘대동제’라는 용어가 축제의 공식용어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이전의 엘리트의식에서 벗어나 ‘재미’ 위주의 행사를 계획하고 즐겼다. 이은경(수학교육 91, 졸업) 교수는 “당시 서클이나 학과에서 여는 이벤트성 행사가 많았다”며 “자신이 주도하지 않아도 지나다니다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최근의 대학축제는 대중문화를 의식하는 경향이 강해 연예인 초청 공연, 클럽 파티 등을 진행하는 대학이 많다. 대학이 문화 자체를 주도했던 이전과는 달리, 대학문화가 대중문화와 일원화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학생들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재해(안동대 민속) 교수는 “대학 축제는 지성인이자 사회인인 대학생들의 축제이므로, 현실 사회 문제를 대학 축제에서 드러내야 한다”며 “풍자와 비판이 깃든 대학축제를 통해 사회는 물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 축제가 학생들만의 축제라는 생각은 버리고 대학구성원과 지역시민들과 함께 즐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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