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감독  이태겸| 2020)

소위 ‘3D 직종’이라고 불리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필요하지만, 목숨을 넘나드는 일에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기피 직종의 이야기는,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얼핏 낯설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기피 직종이나 그 밖의 일이 사뭇 다르지 않다며, 기피 업종으로 현대 사회를 설명한다. 목숨을 거는 일이 현대 사회와 어떻게 닮았다는 것일까. 영화는 기피 직종에 근무해 온 충식(오정세 분)과 새롭게 부임한 정은(유다인)을 통해 그 유사성을 설명한다.

송전탑 수리 회사에 근무 중인 충식은 잠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다. 줄줄이 딸린 딸들을 따뜻하고 안전한 곳에서 재우기 위해, 배곯지 않고 키우기 위해 한 시라도 쉴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겁 없이 송전탑을 오를 수 있다. 이처럼 살기 위해 죽으러 간다는 이야기는, 기피 업종에 근무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흔한 문법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은을 등장시켜, 생존을 위해 일을 하는 직종이 기피직종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충식의 일자리로 좌천당한 그녀는, 현장직에 영 적응할 수가 없다. 사실 본사에서 원한 것은 그녀가 훌륭하게 적응하는 모습이 아니다. 결국에는 그녀 스스로가 일을 그만두길 바라고 좌천을 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려 애쓴다. 일을 하지 않는 삶은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되새긴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취업을 목전에 둔 청년들의 생각과 비슷하다. 번듯한 곳에 취직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걱정, 당장 취직하지 않으면 평생 굶을 것만 같은 두려움과 닮아있다. 실제로 취업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자살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은가. 살기 위해 일한다는 기피 직종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살기 위해 취업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정은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기피 직종이 가진 ‘위험성’역시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죽고, 일을 해도 죽는 직종과 단순 사무직이 무엇이 비슷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죽음과 생존을 고민하게 된 정은의 모습을 보여주며, 생각보다 죽음을 가까이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실제로 기피 직종만이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는다. 특히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 직장 내 따돌림과 과로는, 사무직에 근무하는 이들의 목숨도 쉽게 빼앗는다. 일을 했기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기피 직종이나 타 직종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는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 차별적인 기업 내 분위기나, 하청업체의 열악한 환경, 해고를 염두한 부당한 인사이동까지. 현대 사회가 방치하고 있는 노동 문제를 훌륭하게 꼬집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고발도 중요하지만, 은근한 비유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남 같은 이야기, 열악해 보이기만 하던 이야기가 실제로는 당신의 이야기라는 섬뜩함을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대놓고 위험한’직종으로 숨겨진 위험을 드러내며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현대 사회에 은근히 녹아있는 노동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발판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으리라 감히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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