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피란수도였던 부산은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장소가 곳곳에 존재한다. 부산광역시는 올해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피란수도의 역사를 담은 장소와 건축물의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를 재추진 중이다.

1950년 피란길 중심에는 부산이 있었다

한국전쟁 동안 대부분의 기간에 부산은 대한민국의 수도였다. 전쟁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개시 며칠 만에 국토 절반을 내주고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긴박한 전쟁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기능 △국민안전유지 △군사방어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산을 임시수도로 결정했다. 국토 최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정부기능 유지와 피란민을 보호할 수 있었고, 부산항이 있어 군수물자 입항 및 하역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부산은 1,129일의 전쟁 기간 중 1,023일 동안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기본 삼권인 △행정 △입법 △사법의 활동 외에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약 100만 명의 피란민을 보호했다. 또한 부산은 유엔(UN) 결성 후 최초로 유엔의 대규모 구호 활동이 이뤄졌던 역사적인 현장이라고도 평가된다. 이처럼 부산은 정부를 유지함과 동시에 전쟁 극복을 위한 피란 생활의 구호 지원기능과 유엔과의 상호협력을 통한 국제구호의 기능이 공존했던 지역이다.

부산이 피란수도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부터다. 이전까지는 임시수도로 불렸으나, 2015년 부산연구원이 ‘피란수도 부산유산’을 유네스코세계유산(이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제안하면서 피란수도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임시수도는 서울 중심적 사고와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피란시절의 온전한 수도를 뜻하는 피란수도라는 명칭이 더욱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란수도 부산의 주거환경> 연구총서의 연구책임을 맡았던 유재우(건축학) 교수는 “부산광역시와 연구원들이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보편적인 임시수도가 아닌 세계적으로 희귀한 피란수도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라며 “피란수도에는 피란 시기 전재민 보호와 정부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대 중심도시 기능을 갖게 됐다는 묵시적 가치도 포함돼있다”라고 말했다.

시동 거는 세계유산 등재

현재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는 피란수도 부산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쟁 시기 피란수도였던 부산에는 전쟁의 아픔과 국난극복의 역사가 곳곳에 남아있다. 2015년 6월 부산연구원이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급속한 도시화와 개발 압력 등으로부터 보존·관리하고자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등재된 세계유산은 모두 조선시대 이전의 유산으로, 근대유산이 세계유산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은 부산시가 유일하다. 유재우 교수는 “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6·25전쟁의 역사 △항구도시 등 부산이 갖는 도시이미지 △도시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는 절반에 이르지도 못했다. 총 11단계의 세계유산 등재 절차 중 이제 4단계를 넘겼기 때문이다. 5단계는 잠정목록 등재이지만 아직 이를 넘기지 못하고 세계유산 등재 신청 목록을 계속 보완해나가고 있다. 2016년에 전수조사 및 전문가의 심층 토론을 통해 잠정목록 대상유산 86개소를 선정했다. 이후 잠정목록 등재조건인 △공간 보존성 △기능 관계성 △시설 목적성에 따라 2017년 4월 14개소를 선정해 세계유산 잠정등재 목록으로 신청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피란민 관련 유산 추가와 종합보존관리계획 마련을 보완하라며 재심의를 결정했다. 피란수도 부산만의 특수성과 차별성이 모호하고, 피란수도 부산의 의미와 상징의 구체성이 결여된 점 등이 재심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2월 신청서 내용을 재검토해 선정된 8개소의 유산이 ‘조건부’ 잠정목록으로 등재됐다. 조건부 등재의 경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재신청해야 한다. 조건부를 해소하기 위해 최근에 우암동 소막마을과 아미동 비석마을이 목록에 추가됐다. 부산연구원 오재환 연구위원은 “피란수도의 행정적, 정치적 모습을 담은 유산뿐 아니라 생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유산을 추가하라는 권고가 있었다”라며 “이에 피란민의 생활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거주지를 추가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기존 8개 잠정등재 신청목록 중 피란유산의 근거가 미약한 유엔지상군사령부(현 워커하우스)를 제외했다. 건물이 일부 훼손됐고, 당시 군작전지휘본부로 사용됐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9개소의 유산이 잠정등재 신청 목록에 포함돼 관리되고 있다. 9개소는 △임시수도 대통령관저(현 임시수도 기념관) △임시수도 정부청사(현 동아대 석당박물관) △국립중앙관상대(현 부산기상관측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현 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 1부두 △하야리아 기지(현 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현 유엔기념공원) △우암동 소막마을 △아미동 비석마을이다.

부산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세계유산 등재 마스터플랜수립’ 과업을 추진 중이다. 이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 유산에 대한 입증 자료를 마련해 최종 등재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제시하고자 마련됐다.

역사가치 되새겨야

부산시는 2025년까지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먼저 해당 유산 관리와 보존이 잘 이뤄져야 한다. 북항 재개발사업 추진으로 잠정목록 신청유산 중 하나인 부산항 제1부두의 보존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일고 있다. 북항 재개발 과정에서의 훼손 여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도로 건설과 바다 매립으로 진행되는 북항 재개발 사업으로 부산항 제1부두의 세계문화유산 지정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 또한 시민공원의 경우 전시된 석불과 표시석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돼 있다. 이처럼 피란수도 부산유산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부산시의 고민이 필요하다. 유재우 교수는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유물이 △내구성 부족 △도시계획·도로개설 △재개발·재건축으로 거의 소멸됐다”라며 “특히 최근 주변 지역의 개발 압력 등으로 존재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장들이 있어 △종합적인 계획 △대책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피란수도에 대한 역사적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 2017년 부산연구원이 지역시민 200명을 대상으로 피란수도 부산의 건축·문화자산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시민의식을 조사했다. 설문조사 결과 피란수도 명칭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8%) △알고 있다(43.5%) △잘 모른다(29.5%) △전혀 모른다(19%)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또한 추진 중인 세계유산 잠정목록 자산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0.5%) △알고 있다(42.5%) △잘 모른다(47.5%) △전혀 모른다(9.5%)는 응답 결과가 나왔다.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추진에 대해 시민 절반 이상이 잘 모르고 있었다. 오재환 연구위원은 “유네스코가 지속발전가능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지역 시민들에게 유산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라며 “그러기 위해 유산 가치에 대한 부산시의 교육 및 홍보 등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피란수도와 관련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란수도 부산과 관련된 콘텐츠 발굴 및 스토리텔링 작업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피란수도 시리즈(Ⅳ) 피란수도 부산의 문학풍경> 연구총서를 발간한 이순욱(국어교육) 교수는 “단순히 특정 건축물, 장소만으로 피란수도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라며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별로 심화된 연구를 통해 피란수도 역사 가치를 실질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도 피란수도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이어져야한다. 세계유산 등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란수도라는 지역의 가치를 지속해서 창출해 나가기 위해서다. 이순욱 교수는 “피란수도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발굴해 지역 정체성과 어떻게 연동해나갈 것인지에 관한 중장기적 연구 및 사업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위해 피란수도 관련 연구센터나 박물관을 설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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