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춘추전국시대, 교차되는 기대와 우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지고 있다. 정부도 이에 가담해 지방자치단체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하고 있다. 우후죽순 발행되고 있는 지역화폐. 정말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것일까. 지역화폐의 득과 실에 대해 짚어봤다.

올해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정부가 지역화폐를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지방자치단체 226곳에 지역화폐를 위한 6조 원의 예산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각 구군 단위마다 지역화폐가 마련되면서 지역화폐 수가 늘어났지만 대부분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지역화폐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일회용이 되어버린 지역화폐

최근 지역화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역화폐의 발행이 급증했다. 당장 부산광역시만 해도 시 차원에서 발행한 동백전 외에 각 구군별로 지역화폐를 만들면서 총 17개의 지역화폐가 생겨났다. 하지만 각 구군에서 발행한 선불카드 형태의 지역화폐의 경우, 충전된 금액을 모두 소진하거나 사용기한이 지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발행한 지역화폐는 대부분 올해 안에 사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전체 지자체의 93%가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는 통계는 코로나19 위기에서 빚어진 일시적인 착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취지는 오리무중
소비 대체 수단으로 전락해

 

설사 지역화폐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된다 하더라도,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기존의 결제수단을 대체하는 수준에서 그쳐 지역 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분석한 동백전 업종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4,540억 원이 사용 금액으로 나타났으며 그 사용처는 △식생활 35.5% △의료·보건 19.4% △쇼핑·유통 13.9% △교육 8.7% 등이었다. 특히 의료·보건에 사용된 금액 882억 원 중 242억이 치과나 피부과 등에 사용됐다. 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이처럼 기존 소비자들이 카드를 사용해 결제하던 것을 동백전으로 대신한 것”이라며 “동백전이 새로운 결제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소비결제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됐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역화폐를 통한 소위 ‘카드깡’과 불법 현금화 등의 부작용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카드깡이란 모바일상품권이나 선불카드의 형태로 받은 지역화폐를 이용하여 불법으로 현금을 만들고 유통하는 행위를 말한다. 김경원(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카드깡은 익명성이 보장돼 막을 수가 없다”라며 “지역화폐를 현금으로 바꿔 돈세탁의 악용수단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화폐와 재난지원금 등을 기존의 금액보다 10~20% 할인해 현금 거래를 하는 불법 현금화 현상도 있다. 이근재(경제학) 교수는 “지역화폐와 현금을 교환하는 거래는 매수인과 매도인 모두 이익이 되고 있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활성화, 단언할 수 없어

지역화폐가 지역경제 활성화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역 내에서만 돈이 순환하는 구조가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산연구원 황영순 연구위원은 “지역화폐 사용처에 해당되지 않는 지역과 해당되는 지역 간의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라며 “이 때문에 배타적인 지역 정책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실질적으로 지역화폐가 지역 내에서만 순환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 예시로 소비자가 동백전으로 소비를 할 경우 현금의 형태로 소상공인에게 대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소상공인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도소매업 간 중간 거래가 반드시 지역 내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소상공인이 그 돈을 다시 타지역의 도매업자나 본사에 유통함으로써 지역 내 순환은 사실상 불가능해 지는 것이다. 즉 지역 내에서만 지역화폐가 유통된다는 취지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셈이다.

지역화폐만으로는 골목 상권 등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역화폐의 경우, 지역화폐로 바꾼 금액에서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혜택만큼 이득을 보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혜택을 받은 금액만큼 추가적인 소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경제 활성화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조혜경 연구위원은 “5~10%의 할인에 따른 추가적인 소비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으나 할인된 추가적 금액을 전부 소비한다는 보장이 없다”라며 “추가 소비 효과 자체도 미미해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부분도 한계점 중 하나다. 지역화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상인 △소비자 △전문가 등 각 집단의 의견이 담겨야 한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김영석 사무처장은 “지역화폐 제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 보니 지역화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역화폐의 실효성이 낮아 세금 낭비라는 평가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상당한 금액을 투자해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울산광역시 지역화폐인 울산페이는 지난 3월부터 지난달 29일까지 10%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으나, 정부가 지원한 예산의 소진되자 할인율을 5%로 낮췄다. 부산의 지역화폐인 동백전도 재정 부족으로 캐시백 비율을 10%에서 6%로 낮추고 월간 충전 한도도 조정했다. 또한 예산이 다 떨어질 경우, 혜택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공지했다. 도한영 사무처장은 “동백전은 재정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못해 기존의 캐시백 비율을 10%에서 6%로 인하했다”라며 “본격적인 운영에 앞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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