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새긴 오월의 열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묻어난 장소를 찾아봤다. 광주광역시와 부산광역시의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장소의 사건을 짚어본다.

* 당시 사진이 없는 경우, 현재의 모습으로 대체했다.

 

전남도청 앞 분수대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전남도청 앞 분수대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1980년 5월 14일부터 3일간 전남도청 앞에서 민족민주화 대성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계엄으로 인해 언론이 전하지 못하는 시국사항을 전해 들으며 현 시국이 군사 독재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전남대 정문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전남대 정문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남대 정문 앞에 모여든 학생 300여 명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최초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날 군인들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광주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금남로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금남로 (촬영:나경택, 제공:5·18 기념재단)

1980년 5월 18일의 무자비한 계엄군 폭력에 시민들이 분노하며 시위에 불이 붙었다. 20일 금남로에 10만의 시위대가 몰렸고, 21일 일부 시위대가 연좌 농성을 벌였다. 신군부는 일제 사격으로 답했으며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광주역 (촬영:이창성, 제공:5·18 기념재단)
광주역 (촬영:이창성, 제공:5·18 기념재단)

1980년 5월 20일 밤, 계엄군은 광주역에서 유혈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이로 인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고 두 명이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광복동 거리
광복동 거리

계엄사의 일방적 왜곡 발표에 대항해 5·18의 진실을 알리고자 부산에서도 투쟁이 일어났다. 1980년 5월 19일 7시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남포동, 광복동 거리에 살포했다.

 

부산극장
부산극장

우리 학교 학생들은 유인물 배포와 함께 시위하려고 했으나 유인물 살포에 그쳤다. 당시 부산극장 앞 큰 도로에 늘어선 수십 대의 군용트럭과 착검한 군인들 때문에 시위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부산 미국문화원 (사진 부산일보DB 제공)
부산 미국문화원 (사진 부산일보DB 제공)

1982년 3월 18일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부산 미국문화원에 방화한 후 도주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강경 진압에 대해 묵인한 미국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