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 /최인훈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립국’이라는 말만 반복하던 이명준. 수능 국어를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소설 <광장>의 이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광장 없는 밀실, 밀실 없는 광장. 광복 후 남한과 북한의 삶에서 좌절을 맛봤던 이명준은 온갖 회유에도 중립국을 택한다. 그러나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그는 바다에 몸을 내던진다.

그가 차디찬 바다로 몸을 내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광장은 사회적 삶의 공간으로 공동의 이념을 추구해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공간이며, 밀실은 개인적 삶의 공간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그는 이데올로기, 정치 구조의 이분법적 대립 속에서 진정한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이명준이 원하는 광장을 찾을 수 없었고, 그의 밀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립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었던 광장과 밀실이 화합된 푸른 광장에 자신을 묻은 것이다. 

광장과 밀실. 두 가지 모두 사회가 기능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작가 최인훈은 1961년 판 서문에서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명준은 자본주의 사회인 남한과 공산주의인 북한의 양분된 사회를 초월해 제3의 방향을 찾아 중립국을 택한다. 실제로 한국전쟁 휴전 후 이명준처럼 ‘중립국’을 외친 전쟁포로는 17만 명 중 88명이었다. 적은 숫자지만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이라는 문제이다. 

이분법적 대립에 갈등하고, 진정한 삶을 고민했던 이명준의 이야기는 비단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최인훈은 1960년 4월이 가져다준 자유를 보고 이 소설을 썼다. 그러나 그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우리 사회는 민주와 독재를 반복했다. 밀실과 광장을 요구하는 평범한 삶과 평화로운 사회는 얻기도 어렵고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책 속 이명준이 세상을 떠난 지 7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서, 광장의 모습이 달라지긴 했다. 적어도 한 국가 안에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경쟁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광장에 대한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가가 아닌 젠더, 인종 등 다양한 사안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광장과 밀실의 조화가 무너진다. 그러한 대립 속에서 갈등하는 개인들이 있기에, 이명준이 했던 삶에 대한 고민과 질문은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밀실은 행복한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광장은 바람직한가. 밀실과 광장이 화합된 푸른 광장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 

수업 교재로 <광장>을 택한 양흥숙(교양교육원) 교수는 한국사 연구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 역사를 담고 있는 광장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고민해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양흥숙 교수는 “책에서 나타난 뼈아픈 과거에 밀실과 광장의 건전한 공존이 없었고, 이것이 무너지는 폭력의 시대를 겪었다”라며 “현재 우리의 밀실과 광장은 무엇인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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