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쟁                          (감독 이길보라 ㅣ  2020)
기억의 전쟁                          (감독 이길보라 ㅣ  2020)

 

작년에는 일본 불매운동으로 전국이 들썩였다. 자연스레 소환된 일본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전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해결을 촉구하는 여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또 다른 비극이 있다. 일본군이 자행한 비인간적인 행위와 닮아있으며, 피해자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사건이다. 바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이에 끔찍했던 1968년 1월 13일의 기억을 알리고 사과받기 위해 응우옌 티 탄 씨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응우옌 티 탄 씨는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 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석했다. 모의 법정이기에 법적 효력은 없지만, 그의 진술은 법정에 참석한 이들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줬다. “방공호에서 사람이 나오는 대로 한국 군인이 총을 쐈습니다”라는 눈물 젖은 증언은 보는 이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가족을 전부 잃은 응우옌 티 탄 씨의 진술을 들은 재판부는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피해자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은 베트남 전쟁이지만, 당시 파병을 갔던 이들에게는 자랑거리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한 영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유공자’ 뱃지를 빳빳한 군복에 달고 국가적 예우를 요구한다. 그리고 내뱉는 무책임한 발언. “어느 나라 전쟁이든 간에 소수 양민은 조금 피해를 볼 수 있다”, “내가 살고자 상대방을 죽인거지. 내가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도 아니야”. 응우예 티 탄 씨의 면전에 쏟아지는 말들은 그의 고통을 축소하고 은폐한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외면하는 한국 정부와 사회도 응우옌 티 탄 씨를 힘들게 한다. 매년 1월 13일의 퐁니·퐁넛마을은 한국군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73명을 기리는 향으로 자욱해진다. 그러나 국방부는 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며 학살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 행동이 없어 대중들도 해당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시민 평화법정이 시작되기 전, 법정의 입구에서 진행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알고 계신가요?’라는 설문에 반절의 사람들이 ‘NO’를 답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참 초라한 결과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고통의 역사.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과 한국 정부는 이대로 잊히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옛날이야기가 구전돼 내려오듯,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전해졌다. 눈물로 얼룩진 기억과 진술은 관객의 마음을 울렸으며 한국 사회에 베트남 전쟁 피해자를 가시화시켰다. 기억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작 첫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부끄러운 역사를 온전히 직시할 수 있는 그날까지 고통어린 기억은 전쟁을 지속할 것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