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심각해지면서 많은 재난 관련 안내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재난 대응에 대한 취약성이 드러났다. 장애인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의 재난 대응에 대한 취약성과 대책을 알아봤다.

장애인은 재난취약계층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하고 있다. △지체장애인 1,238,532명 △청각·언어장애인 363,326명 △자폐성 장애인 253,083명 △시각장애인 252,957명 순으로 가장 많았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도 2019년 기준으로 약 18만 명의 장애인이 등록돼 있다. 장애인은 재난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데, 재난 발생 시 장애인들은 이동 대피, 재난 인지 등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립재활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화재 사고 사상자 중 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은 비장애인에 비교해 4.7배 더 많았다. 이렇게 장애인들이 재난 대피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관련 제도 및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재난 관련 정보 없어 발만 동동

장애인은 재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다. 현재 운영되는 재난 방송과 알림 방식이 장애인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 방송의 경우, 수어 통역 지원이나 자막 등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송식(사회복지학) 교수는 “청각, 시각 장애를 앓고 있거나 인지 능력이 결여돼있는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 중심의 방송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복지법> 제22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정보에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송시설 등을 개선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제69조에 따라 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원활한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방송을 해야 한다. 즉, 재난과 같은 국가적 주요 사항의 방송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수어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등이 동반돼야 한다. 그러나 작년 4월 국가적 재난 수준으로 확대된 강원도 화재의 경우, 공중파 3사 뉴스특보 모두 초기에는 수어 통역이 지원되지 않았고, 뒤늦게서야 수어 통역이 이뤄졌다.

문자 형식의 재난 정보 알림도 장애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재 재난 정보 전달은 문자 메시지·알림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에게 이러한 알림은 무용지물이다. 이들은 문자 형태의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어난 코로나19 사태는 장애인의 재난 대처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에 관한 정부 발표는 초기에 수어 통역이 동반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정보는 얻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아직까지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관련 정보 제공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라이프라인 장애인 자립진흥회 정대근 사무국장은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재난 관련 정보의 제공이 미흡했다”라며 “안내 부족으로 중증장애인들은 마스크 구매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사건 발생 2주가 지난 2월 11일이 돼서야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어 방송을 확대 실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코로나19 사태에 장애인들은 한발 늦은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장애인만 가능한 재난대피

재난대피 행동요령이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돼 있는 것도 문제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은 재난 발생 시 국민행동요령을 알려주는 정부 사이트다. 하지만 해당 사이트에서는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재난 대피 행동요령을 찾기 어려웠다. 공공기관 및 복지단체가 장애인 전용 재난대책 설명서를 제작했으나 수록된 정보가 부실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 등이 장애인 전용 재난대책 설명서를 제작했지만, 장애인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시설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고 장애 유형의 일부만 다루었기 때문이다. 정대근 사무국장은 “비장애인에 맞춘 행동요령은 장애인들이 따라 할 수 없어 별도의 행동요령이 필요하다”라며 “대부분의 장애인 전용 재난 대책 설명서에는 장애 유형에 따른 대피 방안이 다소 부실하게 기록돼있다”라고 말했다. 부산광역시청(이하 부산시청) 홈페이지에도 장애인을 위한 대피 요령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부산시청 시민안전실 재난대응과 관계자는 “재난 유형이 많기 때문에 장애인만 따로 구분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이용 가능한 재난 대피소를 찾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재난이 발생하면 국민재난안전포털이나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재난 대피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피소는 출입구가 좁거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진입하기 어렵다. 이외에도 안전유도블록이 설치되지 않은 경우에도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러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재난 대피소에 대한 정보는 어느 곳도 안내하고 있지 않다. 작년 2월 행정안전부는 장애인편의시설실태조사를 안전디딤돌과 연계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여전히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부산시 재난대피소의 경우에도 장애인의 접근성이 낮다. 부산시는 해안선 인근으로 도심이 형성된 지역이기 때문에 지진해일의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지진해일 대피소의 대부분이 고지대 야산에 있어 사실상 장애인이 시간 내에 대피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기장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성대 센터장은 “야산의 경우 걸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어 이동 약자는 대피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재난에 대응하는 담당 부처도 분산돼 있어 관련 계획이나 정책 수립이 어려운 편이다. 장애인 정책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고 있지만 재난 관련 정책은 행정안전부에서 총괄한다. 또한 재난 발생 시에는 지역 구청장이 재난 관련 책임기관장을 맡는다. 이외에도 <장애인복지법>, <편의증진법> 등 개별 법률에 따라 장애인 지원에 대한 근거가 분산돼 있다.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려면

전문가들은 장애인들을 위한 재난 대피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정대근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을 고려한 세부적인 매뉴얼과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라며 “재난에 대한 문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장애인 재난 대피 요령 설명서를 이용한 지속적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한 이동 보조기기 지원과 비상 미끄럼틀과 같은 대피 시설 마련이 필요하다.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대피 시설 마련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신속한 재난 안내도 이뤄져야 한다. 올해부터 일부 지자체가 문자 재난 알림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을 위해 긴급재난 시 수어 영상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광역시는 10월부터 긴급재난문자를 수어 영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재난 정보와 대처요령 수어 영상을 타 지자체에도 보급할 예정이다. 정대근 사무국장은 “청각장애인용 수어영상 경보를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빠른 도입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또한 장애인 실태 조사가 이뤄지는 간격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책 수립이나 계획을 할 때 정확한 최근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성대 센터장은 “실태조사가 정확히 돼야 장애인 재난 대응과 관련한 계획을 효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라며 “현재는 장애인 관련 통계가 많이 없고, 조사가 진행되는 간격이 3~5년 정도로 길다”라고 지적했다.

재난 취약자인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요구된다. 장애인들은 재난에 자립적으로 대피하기 힘들어 주변의 조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송식 교수는 “장애인들은 스스로 대피할 능력이 부족하다”라며 “공공단체, 지역 주민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 함께 재난 대비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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