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5월 9일 홍콩, 건강하던 3세 남아가 발열, 인후통, 기침이 시작되었고, 증상이 계속되어 15일 입원 (…) 21일 사망 (…) 인플루엔자 A H5N1에 감염된 것으로 (…)” <주간 질병률 사망률 보고서> 46권 (1997)

“중국 중부 후베이성 우한에서 사스로 의심되는 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에 온라인 이용자들이 걱정 (…) 우한시는 현지 한 수산시장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속출 (…) 성숙한 예방 체계가 있어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 <연합뉴스> (2019년 12월 31일)

세계를 뒤흔든 판데믹

야생동물에서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뛰어넘어 사람에게 전파되고 있다.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들어왔으나 전파력이 그리 높지 않았고, 홍콩 정부가 주룽반도 일대의 가금류를 전량 살처분하여 유행이 종식되었다. 반면, 작년 말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코로나19는 높은 전파력과 무증상 전염으로 사람에게 훨씬 성공적으로 적응하였다. 보통 전파력은 R0 값으로 판단한다. R0는 기초감염재생산수로, 모두가 감수성을 가진 집단에 새로운 전염병이 들어왔을 때 한 명의 감염자가 몇 명에게 전파시킬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이다. 코로나19의 R0 값은 초기 세계보건기구가 추정한 1.4~2.5보다 훨씬 높은 4.7~6.6 정도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처럼 전파 능력이 높은 신종 병원체가 인간 사회에 들어오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경과 대륙을 넘어 빠르게 전파된다. 감염병이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되는 상황을 판데믹(Pandemic)이라고 한다. Pan은 ‘모든’, demic은 ‘사람’에서 나온 말로, 말 자체는 질병의 중증도와는 무관하고 질병의 전파와 분포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대중에게 판데믹은 일종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 인구의 1/3을 희생시킨, 역사상 가장 악명이 높은 판데믹이라고 할 만하다. 1918년 5천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독감과 더불어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은 인플루엔자가 원인인데, 현재 인류의 가장 큰 감염병 위협이 바로 인플루엔자 판데믹이다. 판데믹은 종종 역사의 흐름이나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바꾸었다. 과거의 루이지애나는 북쪽 캐나다부터 남쪽 멕시코만까지 이르는, 오늘날 미국의 15개 주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루이지애나는 17세기 말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18세기 후반 스페인의 지배로 넘어갔다. 1801년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토지 양도가 진행되었고, 미국은 식민지 양도를 막고 싶었다. 프랑스는 북미 대륙의 지배권을 다시 장악하고자 아이티 노예 봉기 진압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황열병으로 프랑스 군 장병 95%가 사망하여 원정을 포기하였고,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단돈 1,500만 달러에 양도하였다. 그 뒤 프랑스는 파나마운하 건설공사에 도전했다가 역시 황열병으로 건설사가 파산하면서 다시 한번 신대륙에서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참조)

신종 감염병 대부분 동물에서 유래해  

  신종 감염병은 과거에는 인간 집단 사이의 새로운 접촉이나 사람의 생활 양식 변화가 유행의 촉발 요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두창이나 매독이 그 예이다. 그러나 지금은 밀림을 파괴하여 서식 동물군이 바뀌거나, 야생동물을 잡아먹거나 하는 등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접촉점에서 주로 발생한다. 야생동물에만 있던 병원체가 사람에게 들어올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병원체는 동물과 사람 모두에 기생하면서 병을 일으킬 수 있다. 20세기 이후 인간에게 발생한 신종 감염병의 75%가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종 병원체는 대개 바이러스인데, 그중에서도 RNA 바이러스가 대부분이다. RNA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잘 일으킨다. 모든 생명체는 안정된 생명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에 대개 돌연변이는 생존에 불리하다. 그러나 워낙 변이가 많이 일어나다 보니 그중 일부는 새로운 숙주에서 살아갈 능력을 획득한다. 그렇게 야생동물에서 살던 바이러스가 가축과 사람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감기의 한 원인으로 정착될 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공식 명칭은 COVID-19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로 부르고 있다. 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는 2002년 사스를 일으킨 바이러스와 유사하여 SARS-CoV-2라는 이름이 붙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RNA 바이러스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포유동물과 조류에서 주로 발견되고, 사람에서도 감기를 일으키는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 229E와 OC43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미 1960년대에 사람의 비강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여러 차례 새로운 종이 사람에게서 발견되었다. 그중 일부는 병원성이 약했고, 일부는 병원성이 강했다. NL63(2004년 발견)과 HKU1(2005년 발견)은 약한 병원성을 보여, 사람에서 감기를 일으키는 수백 종의 바이러스에 포함되어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SARS-CoV(2003년 발견)와 MERS-CoV(2012년 발견)는 각각 10%와 35%의 치명률을 보였다. 독성이 강하면 심한 증상을 가진 환자가 금방 노출되고, 환자의 입원이나 사망으로 전파 고리가 차단된다. 비록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높을지라도 독성이 강하면 전파에 불리한 것이다. 코로나19는 앞으로 감기의 한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는 2009년 유행했던 신종 플루처럼 높은 전파력과 비교적 낮은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인플루엔자에 비해서 잠복기가 길고,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전염력을 보인다. 이것이 유행의 차단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그리고 감염자가 기저 질환이 있거나 병이 중증으로 진행되면 치명률이 높다. 그래서 지금처럼 지역사회에 감염이 퍼진 상황에서는 조기에 환자를 찾아내어 전파 고리를 차단하고,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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