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 부산대학교는 빛났다. 그 중심에 마흔이 되어서야 날아오른 10.16부마민주항쟁이 있었다. 국가 기념일 지정과 함께 “오늘 마침내 모두의 역사로 되살아나 우리 곁에 와 있는 부마항쟁의 정신이 국민 모두에게 굳건한 힘과 용기가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라는 대통령의 축사도 날아왔다. 우리 대학은 “부마민주항쟁의 정신과 의미를 공유하고 민주화 전통을 계승하며 민주시민 육성을 위한 대학의 책무도 다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10.16 부마민주항쟁의 시발점이었던 대학 곳곳에서 그때를 기억하고 기념했다. 40주년 표석 제막식, 전시회, 부마항쟁 증언집, 다큐멘터리, 걷기대회, KBS 음악회 등등 행사는 다양했고, 내·외빈들의 발걸음은 바빴다. 

10.16부마민주항쟁이 ‘그때’ 과거 완료형으로 그칠 역사가 아니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공과를 따지는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이구동성으로 주창하는 부마항쟁 정신의 현현으로서 진행형이자, 우리의 미래이다. 그 현재성이 박제당하고 신화화되는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래서 시월의 행사는 완료되었지만, 문제는 무대가 끝나고 난 뒤이다. 시월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면 정작 시월이 있어야 할 자리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 밖 우리의 일상이다. 부마항쟁의 시발지라는 자존심을 확인해야 할 자리는 강의실에서, 우리 대학의 현안이 의결되는 교무회의장에서, 학생회에서, 교내 신문고에서,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우리 대학의 구석구석 모든 장소이다. 

10.16부마민주항쟁이 유신독재에 맞서 싸운 승자의 기록 이전에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학생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학교 담장을 넘었고, 왜 생사의 위협 속에서도 거리로 나가 함성을 질렀는가. 여기에는 유신독재의 폭압에 신음하는 이웃들의 고통 앞에서 몰려오는 부끄러움과 분노와 책무를 차마 등질 수 없었던 윤리적 감응이 배태되어 있었음을 기억하자. 비통한 자들의 고통에 응답하는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맞잡은 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그들의 절규는 철옹성이던 유신독재를 넘었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자의 부름에 맨몸으로 달려 나갔던 이들을 만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나누었던 고통을 시대를 넘어 나누어야 하고, 그 고통에 감응하는 실천적 주체로 나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대학은 ‘본교 73년의 전통을 민주화와 동행한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찾고, ‘민주화 전통을 계승하며 민주시민 육성을 위한 대학의 책무를 다할 것’을 천명했다. 이러한 교육의 이념이 개교 이래 달라진 것은 없다. 문제는 민주적 시민 교육의 장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다. 표구된 액자로 전시할 것인가, 교육 실천의 장으로 만들 것인가.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되살아난 시월이 무색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하는 일이 급선무일 것이다. 대학의 의결기구에서부터 강의실에 이르기까지. 하여, 시월이 일상화된 곳, 이곳에서 10.16부마민주항쟁의 함성을 만날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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