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헌(디자인학) 교수

필자가 대학 다닐 때 유일무이 가장 기억에 남는 교양과목은 ‘부모와 자녀’란 수업이다. 수업은 재미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별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수업 중에 졸거나 딴짓을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30년 후 학부 교양수업을 7, 8년간 했다. 그런데 매 학기 첫 시간마다 학생에게 성적에 대해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뺀다. 서로 대중문화를 재미있게 공유하는 편한 수업인데 상대평가로 가혹하게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교양’이란 적어도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취지도 좋고 훌륭한 교양과목 시스템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학본부와 교수들이 학생에게 ‘너는 이걸 들어야 교양이 쌓인다’고 강제하며 선택을 강요한다. 더구나 취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런 슈퍼 교양과목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교토대학. 노벨상 수상자가 도쿄대보다 많은 명문대학이다. 그곳에서 실시하는 ‘포켓교양’이 인기다. 매 학기 희망하는 교수에 한해 10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주고 소수의 학부생이 수강신청하게 해서 세미나 식으로 수업을 하게 한다. ‘어류심리학 입문’, ‘추모시설과 교육’ 같은 왠지 매니악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정해 학생 10명 이내를 모으게 한다. 실외에서 연구실에서 가끔 모여 세밀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같이 탐구한다. 결과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영국은 기상천외하고 알쓸신잡류의 연구에 나라에서 연구비를 준다. 도둑들의 발자국을 분석해 가장 빈번히 등장한 운동화 상표 종류를 찾고 그 근거를 따져 본다. 이런 연구가 가능한 것은 그런 노력이 창의적 연구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학생 시절 교양이 너무 재미없었듯 지금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학교의 교양과정을 통째로 뒤집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대안을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교양선택 과목 10% 정도는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학생들이 트렌드에 맞게 듣고 싶은 수업을 개설하는 것이다. 둘째, 편하게 일반 학생이 듣는 수업들은 담당 교수가 패스나 절대평가로 바꿀 수 있도록 선택하게 했으면 좋겠다. 셋째, 교양필수 한 과목 정도는 각 단과대학에서도 만들게 하자. 예술대학이면 자율적으로 △철학 △미학 △저작권법△건축 등등을 묶어 한 과목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전공을 모두 닫고 교양만 듣는 날을 만들면 어떨까? 새벽부터 밤까지 교양만 듣게 해서 그날만큼은 교양을 쌓게 하고, 전공과 겹치거나 하는 스케줄 잡기에도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유익한 교양은 꼭 책에만 있지도 않다. 가벼운 자동차 경정비를 1학기 동안 정비사에게 배울 수도 있고 부산 시내 관광지 투어, SF 판타지 소설작법도 필요하다. 우리가 연구계획서에 천편일률적으로 적는 4차 산업혁명, 융합과 통섭, 그리고 미래세대의 역할은 어쩌면 ‘재미’있는 수업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래서 적어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전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교양수업을 듣는다는 자부심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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