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고양이
 

나는 고장 난 고양이
수많은 사람을 그리는
길거리의 화가

석고상처럼 굳어지고 
똑같아진 얼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예술가

지하철 기둥 사이 
줄 끊어진 기타를 치는 할아버지
길 걸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심리를 알고 싶어 하는 청년들
외면하는 사람들에 한숨을 쉬는 
팻말을 목에 걸며 집을 찾는 아저씨

복잡하게 얽혀들어 가는
도화지 속 여러 가지 색깔과 크기의 발자국들.
그 발자국들의 바깥에서
고양이처럼 맴도는 사람들.
그 자리에는 언제나 그들이 있다.

멈춰버린 시계 초침처럼
전자레인지 앞에서 음식을 데우는 기다림처럼
이상하게 엇나갔지만,
알약처럼 몸에 녹아들었다.

많은 사람 발자국으로 얽힌 곳에
작은 나의 발가락 8개.
부자연스럽게 다닥다닥 붙은 발걸음.
나의 작품을 감상하며 웃는 조금은 고장 난 사람들.

세상의 얼음 바다에 내던져진
그들을 그물로 낚아 올려 선사하는
고장 난 고양이의 따뜻한 생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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