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최근 파주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양돈농가는 물론 지자체를 포함해 시민들까지 예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부산은 이런 기류를 체감조차 못 할지 모르겠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African swine fever virus)(이하 ASFV)는 23가지 유형이 있고 그중에는 돼지에게 미미한 증상을 일으키는 유형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 온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100%인 고병원성 바이러스다. ASFV는 얼마나 지독할까. 

2009년 신종플루를 기억할 것이다. 흔히 이런 고병원성 바이러스에는 노약자가 취약할 거라는 생각과 달리 면역에 강한 건강한 젊은 사람들이 당시에 꽤 희생됐다. 바이러스는 세포로 들어가 증식하고 세포를 터뜨리고 퍼진다. 그런데 당시 신종플루는 대상 숙주세포가 면역세포였다. 바이러스가 면역세포의 통신 기능을 교란한다. 숙주를 살려야 자신이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이러한 행동이 숙주의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서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라 불렀다. 말 그대로 방어체계가 좋은 숙주가 오히려 불리한 셈이 됐다. 그런데 ASFV도 이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백신을 만들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돼지에게 치명적이었던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는 유전자 염기 서열과 유전자 개수가 적다. 그런데 ASFV는 염기 서열이 20만 개에 가깝고 유전자 개수도 160개가 넘는 큰 바이러스다. 큰 유전체를 가지고 있는 만큼 변종도 많지만 어떤 수용체를 인식해 세포에 붙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달라붙는 걸 방해하는 치료를 할 수가 없는 거다.

이런 난제에도 실마리는 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에 사는 혹멧돼지를 포함한 3개 멧돼지 속은 이 바이러스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미 풍토병이 되어 면역반응에 관여한 단백질 유전자의 서열이 다르다. 결국 면역 세포 간 소통에 관여된 단백질의 아미노산 종류가 달랐다. 단백질이 앞으로 연구의 핵심 방안이 될 것이다.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 방역만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돼지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얼핏 보면 자연과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맥은 승자 독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쟁이 들어왔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찰스 다윈이 언급한 자연 선택 방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자연에서는 협력과 공존이 더 일반적이다. 긴 진화 과정에서 생물의 다양성은 감소하지 않고 증가했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이 승자 독식이었다면 지구에는 소수의 강자만 남을 거다. 지금의 강자는 바로 인류로 보인다. 이 부분이 착시를 만든다. 그래서 진화의 역설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우리가 지구에 있는 8억 마리의 돼지와 협력하고 공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오직 인류를 위해 그들을 생명체가 아닌 식량으로만 대했던 건 아닐까. 좁은 공간에 가두고 공장에서 찍어대듯 생산하고 사육하며 지구 위의 한 종에 불과한 생명체의 영양공급을 위해 식탁에 오르는 운명으로 만들었다. 돼지뿐만 아니라 닭과 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고기 한 근이 귀했다. 결핍의 시대에서 지금은 과잉의 시대가 됐고 그들의 희생에 감사할 줄 모르고 경제 논리인 수요와 공급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동물에 발생한 질병으로 살처분이 있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원인이 궁지에 몰린 생명체가 더 민주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위해 질병을 이용한 죽음으로 뒤틀린 균형을 잡아 보려는 선택은 아닐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자정 활동이란 시나리오가 떠오르기 때문에 불편할 뿐이다. 돼지의 자연수명이 몇 년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돼지가 도축되는 평균 나이는 얼마일까. 돼지 자연수명은 평균 15년이고 길면 20년이다. 그리고 도축 평균 나이는 6개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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