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성(국어국문학 박사 15)

정문에서 빨간 조끼를 입고 잡지를 팔던 ‘빅판’이 보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그가 팔던 <빅이슈(The Big Issue)>는 홈리스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잡지로 판매원, 소위 ‘빅판’은 모두 홈리스 출신이고 잡지 판매 대금의 절반은 그들에게 주어져 경제적 독립을 위한 기반이 된다. 좋은 취지에 내용도 알차서 자주 사보곤 했는데, 근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던 사이 <빅이슈> 내부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편집부 전원이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편집부가 밝힌 사퇴의 이유는 △사측과의 가치관 차이 △상습적인 임금 체불 △재정 관리의 불투명성 등으로, 사측은 경영난으로 인해 임금 체불은 인정했지만 다른 문제에는 반박했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빅이슈>가 제시하는 지향점과 라이프 스타일에 공감하던 한 사람의 독자로서는 경제적 문제라는 장애물에 의해 그들이 추구한 가치가 좌절되고 그 내부에서는 누군가가 힘겨운 상황을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씁쓸함이 며칠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직면하게 되는 현실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공부로는 먹고 살길이 요원해서, 심지어 공부하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되어버려서 대학원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최근에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아서, 원래 자조와 한탄을 안부 인사 삼던 우리들이지만 근래에는 부쩍 공부를 계속해도 괜찮겠냐는 화제가 자주 오른다. 함께 하소연을 하거나 머리를 맞대보기도 하지만 누구도 답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우리가 배우고 익힌 것이 사회에서 쓸모를 가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지만 그 고민은 언젠가는 생계를 이유로 우리가 배운 것에 반하는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도 이어진다. 당장의 불안함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가진 자의 이야기에 더 귀를 세우고 작은 이윤에도 흔들리는 것은 지금 나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배우고 익힌 것을 진심으로 믿고 추구해나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경제적 토대 그리고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법과 제도는 물론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가지는 입지 등 여러 요소가 얽혀 만들어진 것이기에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을 쏟아낸 터라 대안도 결론도 없기에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빅이슈>의 사태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든 것은 사실이나 다음에 길에서 ‘빅판’을 만나면 또 <빅이슈>를 살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아직은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공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가치만이 아니라 그것을 키우고 나누는 이들의 삶까지도 생각하는 것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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