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슬 음악비평가

최근 <SBS>가 유튜브에서 ‘그때 그 감성을 가진 인기가요를 만나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1990년대 후반의 인기가요 방송분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밀레니엄 시대의 콘텐츠가 요즘의 레트로 열풍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함께 열려있는 채팅창에서는 시청자들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쏟아내며 방송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한편 유튜브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또 다른 라이브 스트리밍은 ‘로-파이 힙합 라디오’(lo-fi hip hop radio)라는 이름의 링크다.‘로-파이’는 음악의 세부 장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본래는 녹음이 잘 안 되어 음질이 좋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말로, LP나 테이프 등 아날로그 음반에 끼어있던 잡음들이 그러한 실례로 꼽힌다. 유튜브라는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온 ‘로-파이 힙합 라디오’ 링크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대체로 느긋한 분위기의 힙합 비트지만, 그 모든 소리 위에는 아날로그 음반의 잡음들이 먼지처럼 뒤덮여있다. 이 둘은 내가 최근에 즐겨 듣는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모두 ‘레트로’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는다. 2014년에 번역·출간된 사이먼 레이놀즈의 책 <레트로마니아>는 철저한 현장 조사를 통해 과거의 흔적들이 동시대 음악 문화 곳곳에 침투해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이 책이 주로 영미권의 사례를 다루는 만큼, 출간 당시 나는 그 논의를 ‘지금-여기의 것’이라기보다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수입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레트로라는 이름 아래 묶일 만한 서양의 음악들을 처음 들었을 땐 그것이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향수라고 오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그것을 결코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음반의 소리처럼 내가 직접 경험한 ‘매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생겨났고, <SBS> 인기가요의 90년대 방송분 스트리밍처럼 국내에서도 레트로 열풍이 다각적으로 전개되며 내가 부분적으로나마 추억회상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례가 하나둘씩 등장했다.
 

그러자 레트로에 대한 나의 청취 경험이 사뭇 달라졌다. 이전에는 시공간의 분명한 차이와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입장 때문인지 현재와 과거, 여기와 저기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과거들이 하나둘씩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오자 시간에 대한 감각이 미묘하게 엉키기 시작했다.‘향수’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어쩐지 현재와 과거의 그 시차가 이전처럼 분명히 구분되지 않았다. 공간의 차이가 없기 때문인지, 그 과거와 현재가 결국 연속적 시간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문화 전반에 과거의 것과 과거인 것들이 만연해졌기 때문인지, 과거와 현재와 너무 가까이에서 뒤엉킨 탓인지, 그 정확한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되돌아온 그 과거를 어쩌면 넓은 의미의 현재로 포섭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레트로 열풍을 지켜보며 새로운 것이 더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혹자는‘새로움’이라는 가치가 너무 낡은 것은 아니냐고 반문했다. 지금-여기의 레트로를 접하고 많은 물음을 마주한 나는 음악이 아니라 그 판단의 근거가 되었던 사고방식을 점검해봐야 한다는 그 반문에 공감하며, 또 다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과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우리가 현재와 과거라는 두 시간 축을 감각하고, 구분하고, 범주화하는 방식이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레트로 문화를 마주할 때마다 계속해서 누적되고 갱신되는 여러 질문은 결국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기준,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감각을 곰곰이 되돌아보게 만든다.
 

<SBS> 인기가요는 지금까지도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스트리밍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방송분을 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정주행’이 현재의 방송분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면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기준점은 과연 어디쯤이 될까. 지금-여기로 되돌아온 과거의 소리를 듣는 경험은 내게 이런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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