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선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 교수

두 그룹의 늑대가 있다. 한 그룹은 남의 것을 빼앗아 사는 습성이 있다. 이 그룹을 나쁜 늑대라 하자. 반면 다른 그룹은 자신의 몫으로 살아간다. 이 그룹을 착한 늑대라 하자. 이 두 그룹의 늑대가 같은 공간에서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첫째, 착한 늑대들이 자기 먹잇감을 나쁜 늑대에게 전부 빼앗기는 경우이다. 착한 늑대들은 서서히 굶어 죽으면서 도태될 것이다. 빼앗을 대상이 사라진 상황에서 나쁜 늑대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아니다. 자신들의 약탈적 습성 때문에 서로 빼앗기 위해 싸울 것이고, 나쁜 늑대도 멸종된다. 결국 모든 늑대는 도태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둘째, 착한 늑대가 자신들의 먹잇감을 지켜내는 경우다. 나쁜 늑대들은 착한 늑대의 먹잇감을 빼앗지 못하게 되니까 자신들 무리를 서로 공격하면서 도태된다. 결국 착한 늑대만 살아남아 이 늑대 사회는 지속된다. 
 

이 단순한 ‘늑대 모형’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착한 늑대들이 자신의 것을 지켜내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는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 또는 인간사회에 나쁜 늑대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착한 늑대들이 자신의 몫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대부분 나쁜 늑대는 약탈한 권력이나 금력을 기반으로 폭력 형태의 힘을 휘두르는 강자로, 착한 늑대는 대부분 이러한 힘이 없는 약자로 나타난다. 그래서 착한 늑대들의 싸움은 끈질기고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때론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삶의 전부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한 장구한 한국의 독립전쟁사, 군사독재에 저항한 한국의 민주화 투쟁사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근대 시민 혁명사가 얼마나 많은 약자의 피의 산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약소국에 대한 식민지 쟁탈전이 끝나고 난 이후 벌인 제국주의 국가 간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 즉 강자 간의 전쟁은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지 않았는가?정의는 이처럼 자기 몫을 지키려는 약자들의 그늘에서 피어났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착한 늑대가 되어야 하고, 이들이 싸움으로 내몰릴 때 어떤 형태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면 일부 사람들과 언론은 먼저 싸움 당사자들의 태도나 수단을 가지고 비난하면서 싸움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어 감추는 데 앞장선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싸움의 성격을 직시해야 한다. 즉 누가 빼앗는 자이고 누가 지키려는 자인가를 구별할 수 있는 선구안을 길러야 한다. 착한 늑대의 자기 몫 지키기 싸움에 때론 바빠서 때론 두려워서, 동참하거나 지원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도 없는 담벼락에 대고 나쁜 늑대를 욕할 정도의 공감력은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싸우는 자는 둘 다 문제가 있다는‘중립적 시각’이나 침묵과 무관심을 경계해야 한다. 그 사람은 결국 강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 목사의 경구가 마음에 와닿는다.‘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를 체포할 때, 나는 침묵했다.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할 때도, 침묵했다.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도, 침묵했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국제경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였다. 중국도 보복관세와 미국 농산물 수입금지로 대응함으로써 미중 간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영국은 EU의 탈퇴 수순을 밟으며 유럽의 한 축에서 벗어나고 있다. 일본은 과거 역사문제와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자의적 판단으로 전략물자에 대해 2차에 걸쳐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하였다. 한국은 시민들의 일본상품 불매와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ISOMIA) 종결로 대응하고 있다. 누가 빼앗는 자이고 누가 지키는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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