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정치외교학 17)

총학생회장이 학생회비 부당징수 사건에 관하여 입장을 밝힌 지 어느덧 70여 일이 흘렀다. 그동안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회의가 수차례 있었다. 그러나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학생들은 논의 과정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작년 하반기 대의원총회에서 회칙이 개정되면서부터 이미 사건사고의 발생은 예견된 일이었다. 전체 대의원 139명 가운데 고작 41명이 출석한 이 회의는 몇 마디의 자질구레한 의견교환도 없이 신속하게 회칙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회칙상 대의원총회의 의결정족수는 재적인원 과반수의 출석이었지만, 신속과 효율 그리고 관행 앞에서 절차적 정의는 무시당했다.

그때 개정된 회칙 제73조 제1항은 학생회비를 ‘학생회의 전반적인 운영과 자치활동을 위하여 회원이 납부한 회비’라고 정의하고 있다. 올해 3월 초, 거의 모든 학생회는 새내기배움터나 개강총회와 같은 자치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로부터 참가비용을 명목으로 회비를 걷었다. ‘회비의 자체 징수는 금지사항’이라는 위원회의 주장을 인용한다면 이들 학생회는 회칙을 위반한 셈이 된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몇몇 위원들은 ‘참가비는 학생회비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다면 학생회가 1년 동안 치를 행사에 지출할 비용을 미리 산정하여 학생들에게 1년 치 ‘참가비’를 걷을 경우 문제될 것이 없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이번에는 회칙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정말 그런가?

실은 회칙 그 어디에도 ‘단위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직접 회비를 걷어서는 안 된다’라는 금지규정은 없다. 작년 하반기에 해당 조문을 개정한 이유도 문서상으로는 ‘학생회비에 대한 구체적 정의 필요’라고 적혀있다. 이처럼 회칙의 취지라는 것은 불명확한 개념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뚜렷한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시작부터 꼬여버린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학생회비는 재정문제와 연결되고, 재정문제는 각 학생회의 자치권(自治權)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당장 학생회비 논의에 관한 쟁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단위 학생회만 100여 개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장단을 포함하여 단과대학 학생회장 20명 내외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에서만 이 문제를 3개월 가까이 다루고 있다.

이제라도 위법하게 정의된 ‘학생회비’에 대해서 그 정당성을 검토해야 할 판국에 총학생회가 중앙에서 좌지우지하는 의사결정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그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나온 결과를 구성원들이 흔쾌히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학생회비와 관련된 문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학과(부)·전공 학생회와 같은 하위 단위에서의 학생자치를 위축시킬 것이다. 중앙집권주의와 다수결주의를 좇는 의사결정 체제는 각 단위가 처한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할뿐더러,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각급 학생회에게는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치(自治)이다. 중앙운영위원회나 대의원총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각 단위에 하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 제재를 가하는 방법으로는 참된 학생자치를 달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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