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요즘 기본적인 물리 지식 없이 영화조차 보기 힘들다. 게다가 고전 물리학 정도로는 턱없다. 몇 해 전 영화에 상대성 이론이 나오더니 최근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 ’와 ‘어벤져스:인피니티워’에 숨겨진 비밀은 양자역학이다. 당시 팬들은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을 기억한다. 타노스에 의해 우리가 사랑한 영웅을 포함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이 원자로 분해돼 사라졌다. 하지만 실망하기 이르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 양자역학을 연구한 행크 핌 박사의 아내는 수십 년간 양자의 세계에 갇혀 있다가 가족과 재회를 했다. 이게 비밀의 열쇠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예측한 1400만개의 경우의 수 중 하나가 양자역학을 기초한 시간여행으로 충격적 결말을 되돌릴 것이다. 최근 개봉한 ‘엔드 게임’을 보면 된다. 비단 영화뿐일까. 웅장한 자연을 그대로 옮긴 듯한 선명한 TV 영상을 보던 한 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바로 QLED TV 광고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도 ‘양자 (Quantum)’가 들어간다. 양자는 물리학에서 입자의 상호작용과 관련한 근본적 바탕이고 물리적인 최소의 단위로 미시세계를 이해하는 역학의 기본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 그런 양자가 대체 TV와 무슨 관련이란 말인가? 디스플레이 시장을 살펴보면 이해가 좀 쉬울지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OLED를 디스플레이 기술의 최고로 알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퀀텀이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어벤저스급인 국내 제조사가 QLED라는 명칭을 꺼낸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 혼선이 시작됐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QLED는 OLED와 구조가 비슷한 양자점 유기발광다이오드 (Quantum dot Light Emitting Diodes)를 말한다. 둘의 차이점은 발광층이 유기물과 양자점이다. 그런데 현재 QLED-TV는 액정표시장치(LCD)가 탑재된 제품에 퀀텀닷을 균일하게 분산한 양자점 성능향상 필름(QDEF)을 부착한 것이다. 물론 기존의 컬러필터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색을 표현한다.  그러니까 이 기술은 QD-LCD라는 이름이 맞다. 항상 기술보다 마케팅이 앞서다 보니 언어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퀀텀닷은 어떻게 빛을 낼까? 퀀텀닷은 반도체처럼 일종의 밴드갭을 가진  작은 구형의 물질이다. 크기가 작아지면서 양자구속 효과로 에너지 레벨이 양자화되며 밴드갭이 커진다. 전자가 밴드갭을 이동하며 방출하는 에너지가 빛으로 나온다. 퀀텀닷 코어가 작을수록 밴드갭이 크고 진동 에너지가 큰 푸른빛이 나온다. 반대로 코어가 크면 밴드갭이 작으면 진동수가 낮은 붉은 빛이 나온다. 게다가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양자화되어 색의 재현성이 월등하다. 무기물 기반인 퀀텀닷은 유기물 기반인 OLED의 단점인 열화현상이 적고 수명이 길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 디스플레이는 대한민국이 왕좌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그런데 시장에 변화가 왔다. LCD 시장은 이미 중국에 넘어갔고 2013년부터 OLED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중국업체가 기술장벽에 균열을 만들더니 이제는 양산으로 자금 회수에 들어갔다. 조만간 OLED에서 한국의 명성은 전설이 될지도 모르겠다. 더는 OLED 기술력에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래서 해결의 열쇠로 양자 (Quantum)가 선택됐을까? 타노스에 의해 사라진 어벤저스를 양자역학이 살릴지 모른다는 예측처럼 우리는 타노스를 닮은 중국이 우리나라 제조 어벤저스를 사라지게 하려는 시도를 퀀텀닷이 막아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세계적인 디스플레이 학회인 SID Display week에서 BOE는 진정한 EL 방식의 QLED를 최초로 공개했다. 섬뜩하다. QLED에 중국 정부의 지원도 폭격 수준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계 기초연구도 산업계와 연계해 활발히 진행된다. 시장선점을 위해 워딩으로 포장된 설익은 기술을 가지고 왕좌의 명맥을 유지하는 우리와 대조적이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우리의 어벤저스들이 정말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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