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아

<아이즈> 기자

처음에 KBS <거리의 만찬>에 쏟아진 관심은 연출자인 이승문 PD가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의 감독을 맡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일 때부터 과감하게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젊은 층에서부터 주목을 받은 이 프로그램은 단 1회 만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물론 MBC <PD수첩>과 같은 다른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지만, 공교롭게도 <거리의 만찬>이 첫 방송된 이후에 승무원들이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10여 년 만에 맞이한 승리의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 승리가 <거리의 만찬>의 영향을 받아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제작진이 이 사안을 아주 적절한 시기에 다뤘다는 뜻이 될 것이다. 

<거리의 만찬>의 형식은 일반적인 시사 프로그램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경직된 분위기와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은 진행자가 모두 여성이다. 또한 그동안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인권이라는 소재에 집중한다. KTX 부당해고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아동 학교 인권, 학생 인권, 여성 인권, 노숙인 인권 등 ‘인권’이라는 키워드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카테고리들 안에서 발생한 일들을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듣는다. 

중립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에게 “꽃뱀 아니냐”는 말이 먼저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던 한국 사회에는 대중이 피해자의 말을 듣는 데에 익숙하지가 않다. <거리의 만찬>은 이런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정면에서 비판한다. 미혼모나 교내 미투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 고 장자연 사건에 관해 증언하는 윤지오 씨 등을 만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한 진행자들은 이들이 보다 쉽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명백히 가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가해자들에 대해 시청자가 판단할 여지를 남긴다. 임신중단 경험 여성들에게 무책임하게 행동한 남성들에 대해서조차 진행자들은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발언권을 준다는 이유로 중립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뉴미디어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상파, 넓게는 방송의 역할은 <거리의 만찬>을 통해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거리의 만찬>은 지상파 방송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삶의 조건, 노동의 조건, 정치의 조건과 같이 특정 주제를 정해서 전문가, 현장 당사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말한다. 그러다 보면 한 자리에서 의미 있는 다짐과 약속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교육감은 학생들의 말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고 약속하고, 학생들은 앞으로 더 열심히 학교의 비리를 알리겠다고 다짐한다. 모두가 자신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며, 국회의원이든 교육감이든 간에 제도적으로 사회 질서를 만드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국민에게 한 약속에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 이 당연한 절차에서 수많은 당사자들을 한 자리에 초대할 수 없기 때문에, <거리의 만찬>이 불러 모은 사람들이 내놓는 각자의 입장은 공동체를 구성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담아야 할 질서를 보여주는 축소된 세계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거리의 만찬>의 미덕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것도 지상파의 영향력을 활용해서 ‘다양성’을 품위 있게 풀어놓는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품위란,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취해야 할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이만한 품위를 지키는 프로그램은 결코 흔치 않으며, 진심으로 따뜻한 프로그램도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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