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코미디언으로 활약하다 자신의 각본으로 연출까지 하며 데뷔전을 치른 조던 필 감독은 흥행 대성공 이후 각종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잭팟을 터뜨렸다. 인종차별 문제를 호러 장르의 문법과 독창적으로 결합한 <겟 아웃>(2017)은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포함해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140개가 넘는 상을 휩쓸었고, 조던 필은 최근 가장 기대되는 신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문라이트> △<노예12년> △<히든 피겨스> △<블랙팬서> △<겟 아웃> 등, 흑인 대통령 오바마 시대에서 백인우월주의를 전면에 선포하며 등장한 트럼프 시대가 되었음에도 2010년대 들어 뉴 블랙 시네마의 위력이 만만찮다. 뉴 블랙 시네마의 선봉에 서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자가 조던 필인 터라 그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은 치솟고 있었다. 새로운 수퍼히어로 영화의 연출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조던 필은 거대 예산이 자신의 창작성을 해칠 것이라는 슬기로운 코멘트를 덧붙이며 중예산 호러를 다시 한번 시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랙 시네마 팬, 호러영화 팬이 환호성을 부른 것은 당연지사.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오락적 요소로 가져오되, 상징과 은유로 숨겨 놓아 관객으로 하여금 두뇌게임을 통해 비이성의 역사적 순간들을 하나씩 파헤치는 즐거움을 향유케 한 ‘겟 아웃 어게인’을 외친 팬은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선보인 조던 필의 두 번째 연출작 <어스>는 나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자아인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다.
 

때와 공간은 1986년 미국 산타크루즈 해변이다. 이때는 이른바 ‘레이거니즘’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로, 강한 미국으로 승부수를 거는 보수주의 정권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다. 어린 소녀 애들레이드는 가족과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아빠가 두더지 게임에 정신이 팔린 사이 홀로 방황하다가 ‘영혼의 여행, 당신을 찾으세요’라는 간판에 이끌려 공포의 집에 들어간다. 방을 거울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시야가 흐트러지는 이곳에서 애들레이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마주하고 놀란다.
 

이 영화는 많은 낚싯밥과 속이 텅 빈 것 같은 의미화 만들기, 그리고 결말부 반전의 비논리성으로 인해 꽤 많은 관객이 전작의 훌륭함과 비교하며 영화적 위치를 깎아 내리고 있다. 어쩌면 ‘두 번째 작품 징크스’를 제대로 겪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필자도 예측가능한 반전, 복선으로 숨겨놓았다고 하는 요소들의 인위성, 인종문제라는 특정성을 피해가는 보편성으로 인해 당장은 판단유보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며 이 영화는 좋은 호러영화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1986년에는 ‘미국을 가로지르는 손’이라는 지상최대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이는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기금 모금 독려 캠페인으로 사람들이 해변을 쭉 둘러서는 것이다. 이 행사는 미국식 낙관주의와 희망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행복한 이 이미지는 챌린저호 참사와 같은 레이건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만들어주었다.‘미국을 가로지르는 손’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영화는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요란스러웠던 그 시대가 드리운 잔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라는 것’ 그 자체를 비튼다.
 

한 화목한 중산층 가정이 행복을 누리는 사이, 지하세계에서 악과 고통의 찌꺼기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어두운 거울 쌍의 가족은 공격성을 키워 지상의 행복한 이미지를 박살 내고자 한다. 영화는 피비린내 나는 대량학살을 은폐한 채 밝은 현재를 이어가는 미국의 특권이 무엇인지 자각하고자 한다. 사운드와 이미지의 현란함에 감각을 맞추지 않았다면 ‘우리들(us)의 미국(U.S.)’의 정체가 숨겨진 죄의식으로 인해 표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을 발견하고는 무릎을 '탁' 칠 것이다. 과연 정치와 영화의 훌륭한 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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